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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앉아 있으니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닌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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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앉아 있으니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닌 듯 해요."

[현장] 폭염 속 한 달 가까이 노숙 농성 벌이는 상지대 사람들

저마다의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었다. 힘껏 부채질을 해보지만 송골송골 맺는 땀방울을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휴대용 소형 선풍기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무더위에는 모든 게 소용이 없었다.

연일 기록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햇볕을 피해 그늘에 있어도 무더위를 피해기란 쉽지 않다. 벌써 한 달 가까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지대학교 구성원들에겐 무더위가 곤욕일수 밖에 없다.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를 반대하며 지난 7월 12일부터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그들이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곳에 나앉아 있어 보니 자살 충동이 생길 지경에 이르렀어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상지대 학생 조장호(25) 씨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지난 12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그였다. 반팔 소매를 어깨까지 올리자 그의 팔에는 햇볕에 그을린 자국이 생겨 있었다. 얼마 전에는 잠깐 수원에 있는 집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바다에 놀러 갔다 왔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 농성장에서 상지대 총학생회장이 피켓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더위 때문에 하루 종일 찬 음료를 먹고 있다. 그렇다보니 배탈이 난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그는 "온종일 농성장에 앉아 있다 보니 다들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다"며 "더위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에 햇빛이 농성장을 비출 때는, 조 씨의 말에 따르면 딱 죽고 싶을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가 찾아온다. 그 시간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햇빛 가리기에 바쁘다.

이승현(25) 씨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겨울이었으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름방학 때는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 가기로 했는데, 지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아무래도 올해 여름은 이곳에서 온종일 보낼 거 같다"고 했다. 작년 여름방학에 이승현 씨는 해변에서 해상구조대 일을 했다.

이승현 씨는 "화장실 갈 때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곳에 있는다"며 "이렇게 앉아 있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힘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김문기 씨가 우리 학교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분명 돈 받고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미안하죠"

이승현 씨는 4학년이다. 작년까지는 학교에 대해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구 재단 인사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구성원들을 보면서 "분명 돈을 받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친구인 현 상지대 총학생회장 이병석 씨가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작년에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그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알게 뒤로부터는 인식이 180도 달라졌다. 이승현 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라며 "지금 총학생회장에겐 특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각종 집회, 1인 시위, 항의방문 등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구 재단 쪽에게 소위 말하는 '찍'힌 인사가 됐다. 회유도 들어왔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때 은사를 통해 상지여고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상지여고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이사로 있는 학교다.

현재 태권도학과에 재학 중이 이승현 씨에게 상지여고 선생님은 "졸업하고 뭘 할 거냐"며 장래를 생각해주는 척 하며 우회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프레시안(허환주)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듯 해요"

이승현 씨의 여자 친구는 늘 투쟁 현장에만 있는 남자친구에게 "내가 좋으냐, 김문기가 좋으냐"며 노골적으로 투정을 부린다. 이승현 씨는 "요즘은 여자 친구 보기가 무섭다"며 "만나면 지문이 없어질 때까지 싹싹 빌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승현 씨는 "어서 지금의 문제가 해결돼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며 "도대체 학교 구성원들이 싫다는데도 굳이 비리 인사를 복귀시키려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생각을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장호 씨도 "이렇게 거리에 앉아보니 내가 알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수백 번을 말해도 정부와 사분위에서는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게 민주주의가 맞는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장호 씨는 "결국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말만 들어주는 게 우리 사회라는 걸 새삼 느꼈다"며 "어서 문제가 해결되어, 적어도 우리 후배들만은 이렇게 거리에 앉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시급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현재 사분위에서는 9일 최종결정을 예고하고 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이사에서 배제되는 안을 교과부에서는 중재안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김문기 전 이사장 쪽 인사 5명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에는 변화가 없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임시 이사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뜨거운 뙤약볕에 길거리에 내몰린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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