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보수성향의 정서를 대변하는 책들이 책방에 즐비하다. 얼마 전에 나온 <성공경제학>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다.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보수 성향 신문에 격찬하는 서평이 실렸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성공한 기업가들을 존중하고 본받아야 하며 국가도 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이 흥하게 된 데에는 이웃에 산업혁명으로 흥한 영국이 있었기 때문이요, 일본이 흥하게 된 것은 서구 선진국을 모방하였기 때문이고.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 데에는 흥한 일본을 이웃으로 두었기 때문이며, 중국은 이웃 한국을 모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망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는 말을 연상케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전쟁은 우리나라를 초토화시켰지만, 2차대전 후 폐허가 된 일본에게 도약의 기회를 주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사회와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우리나라에게는 경제성장의 좋은 발판이 되어 주었다. 물론, 기회가 왔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와 일본은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 덕분에 그런 결정적 계기를 잘 이용할 수 있었다.
▲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일했던 존 리치 전 NBC방송사 부사장이 촬영한 사진. 한국 전쟁 당시 첫 겨울을 맞은 한 소년이 추위에 떨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일본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일은,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라는 논리를 반박하는 사례다. ⓒ뉴시스 |
이 책이 주장하듯이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면,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미국과 서구를 이웃으로 두고 있는데도 왜 흥하지 않았는지, 필리핀은 호주와 한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데도 왜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아마도 이런 나라들은 흥하는 이웃을 본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 책은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흥하는 이웃을 본받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흥하는 이웃을 본받아 자신들도 흥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흥하는 이웃을 본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여력이 있어야 한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이제까지 극심한 빈부격차로 내부 진통을 호되게 겪다보니 흥하는 이웃을 본받을 여유조차 없었다.
빈부격차가 심하면 아무리 '흥한 이웃'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런 나라들은 잘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흥하는 이웃'을 본받기 위해서는 어떤 선결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지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책은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는 논리를 개인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일류학교를 선호하고 일류기업을 선호하며 일류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훌륭한 이웃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흥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든 그렇다고 치자.
이 책에는 '흥하는 이웃'이라는 말이 수없이 반복되는데, 정작 그 '흥하는 이웃'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웃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다. '흥하는 이웃'이라고 하면 언뜻 정치나 관계(官界) 쪽에서 출세한 사람 혹은 돈을 잘 벌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이 책은 주로 경제성장이나 기업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책이 의미하는 '흥하는 이웃'은 정관계에서 출세한 이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된 이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의 핵심주장은 성공한 기업가를 존중하고 본받아야 하며, 또한 국가가 이들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주장은 시장의 원리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주로 시장을 통해서 돈을 버는데, 시장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유능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더욱 더 자신의 재능을 잘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싸고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시장에서 큰 돈을 벌게 되어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시장에서 상을 받는다는 뜻이다. 시장은 돈으로 상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성공한 기업가들은 이미 시장을 통해서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달리 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흥하는 이웃'은 이미 시장을 통해서 충분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미 충분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과연 왜 그래야 하는지, 이 책은 분명히 얘기해주고 있지 않다. 교과서에는 분명히 시장이 성공한 기업가들에게 충분한 상을 준다고 되어 있는데, 혹시 현실의 시장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시장에서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라도 있는 것일까?
최근 선진국의 경제학자들은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이 성공한 기업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상을 주고 있어서 문제라고 걱정한다. 사실,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도 '흥한 이웃'들의 지나친 탐욕이었다고 말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우리 현실의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자유경쟁시장(완전경쟁시장)과 거리가 멀다. 현실의 시장은 각종 불공정 거래와 독과점의 횡포로 얼룩진 시장이다. 이른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이다. 이런 시장은 강자(强者)에게 과도하게 많은 돈을 상으로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경영학자들은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시대라는 말을 쓴다. 실제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영진, 특히 고위 경영진의 임금수준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급속히 높아졌다. 최고경영자에게 한 번에 수억 원내지 수십억 원의 보너스를 집어주는 대기업이 적지 않다.
보수의 고액화 현상은 미국의 경우 특히 두드러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최고경영자의 평균보수가 1976년에는 일반직원 평균보수의 36배였지만, 1993년에는 131배로 늘어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고경영자들의 이런 보수 급상승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일부 경제학자들도 여기에 가세하자 최고경영자 보수인상을 자제시킨다는 뜻에서 이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2007년 최고경영자의 평균보수는 일반직원 평균보수의 369배로 치솟았다. 심리학자들은 왜 이런 역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즉, 보수가 공개되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더 뚜렷해지면서 보수를 인상해달라는 요구가 더욱 더 거세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고액 보수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 우리의 우려를 더 한다. 심지어 경영에 실패한 고위 경영진도 높은 보수를 챙긴다. 예를 들면, 2009년 미국에서는 회사들이 줄줄이 망했는데도 이 회사 고위 경영진은 엄청난 봉급에다가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겼다고 해서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드디어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사정도 미국과 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잘 산다는 말이 나올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흥한 이웃'은 불공정 거래와 독과점으로 큰 재미를 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반기업 정서나 기업가를 불신하는 태도는 바로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시장주의자들이나 보수성향 인사들은 자꾸 외면한다. 불공정 거래와 독과점이 판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흥한 이웃'이 많아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그런 '흥한 이웃'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 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길인지부터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실의 시장은 교과서의 시장과 사뭇 다른데도 계속 '흥하는 이웃'을 존중하고 거국적으로 도와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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