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주최국인 독일을 '인신매매 성행국가'로 분류한 미 국무부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가 나와 주목 받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독일을 "성매매 여성의 근원지, 경유지, 그리고 종착지"라고 말하며 강한 비난을 쏟아 부었다. 독일에 대한 이 같은 비난은 미국이 그간 우방을 대하는 태도로 보았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 국무부가 발간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보고서에 포함된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에게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들은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의 '진짜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보고서에서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최악의 국가(Tier 3)'로 낙인찍힌 14개 국에는 이란, 북한, 미얀마, 수단, 베네수엘라, 시리아, 쿠바, 그리고 짐바브웨가 포함돼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낙인 찍힌 14개 국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벨리즈뿐이다. 독일은 그나마 낮은 등급인 1단계 국가(Tier 1)로 분류됐으며 인도, 멕시코, 중국은 2년째 '관찰할 필요가 있는' 2단계 국가(Tier 2)로 분류됐다.
미국의 일방적 판단,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의 보고서 내용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비판과 함께 해당 국가들에서는 이 보고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국제여성인권단체인 '이퀄리티 나우(Equality Now)'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이 이 보고서와 관련 법안을 어떤 정치적 의도 없이 실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비판의 집중목표가 된 독일 정부는 성매매 합법화 정책은 잘못되지 않았으며 인신매매를 허용한 적이 없고 소탕을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펴 왔다고 반박했다.
인도 외무부 장관 또한 성명을 발표하고 "외국의 일방적인 판단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세계적 문제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들은 미국만의 관점과 선입견에 기초해 만들어지고 있다"며 미 정부를 비판했다.
쿠바와 시리아 역시 미국이 만든 보고서에 자신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거절 의사를 표했다.
시리아 외무부 차관 파잘 멕다드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또한 인신매매를 반대한다"며 "미국은 너무 많은 주제에 관한 국가별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미국 대외 정책의 실패를 덮으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멕다드 차관은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의 정부 관계자 또한 미국이 인신매매 문제를 테러와 함께 다른 국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를 '거만함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90일 이내 조치 취하지 않으면 경제·안보적 제재 가능
2000년 미 상원이 '인신매매 희생자 보호법'을 통과시킨 이후 미 국무부는 매년 전세계 인신매매 실태를 조사해 보고서로 만들어 발표해 왔다. 이 법안은 인신매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 경제적, 군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고서 발간 후 90일 이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가들은 미국 대통령의 판단 하에 일정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미 국무부는 5일 발표한 이 보고서가 150개의 해당 국가들이 인신매매를 줄이는 데에 대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관찰한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보고서는 60만~80만에 이르는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이 국제적으로 인신매매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은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인신매매 금지는 이 시대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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