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책 작업을 하면서 50년대 이후로의 한국 주거정책과 산업정책 그리고 이자율 등의 제도와 관계들을 되짚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세한 결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가 발견한 변화는 딱 두 가지이다 ('부동산 버블'에 대한 얘기들은 워낙 기준점을 잡고, 세밀한 분석을 하는 것들이 무리라서 빼기로 하자.)
첫번째, 한국에서 '종부세'로 대변되는 부동산 관련 세금은 부동산 투기 억제에 생각만큼 효과가 있지는 않고, DTI라고 부르는 부동산 대출 규제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노무현 중기부터 지금까지 극단적일 정도로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면서 토건형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게 토건 경제에 마약과 같은 것이 되어서 내릴 때에는 효과가 별로 없는데, 올리면 토건 경제의 몰락에 확실한 신호가 되기 때문에, 일종의 비대칭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저금리 중독 현상' 같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은, 한국에서 아파트 구매는 여전히 "사고 나면 오를 것이다"는 투기적 요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지방 아파트를 출발점으로 하는 미분양 사태 등 아파트 가격 하락 현상에 대해서 골몰하는데, 조언하자면 DTI를 폐지 혹은 축소하면 아파트 가격은 바로 급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후반기에 했던 정책들의 지금까지의 연결효과를 잘 분석해보면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될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해서 인위적으로 부동산 진작을 시킨다면, 그게 바로 폭등으로 가서 건설사들은 좋아지겠지만, 노무현 정권도 그런 폭등 현상으로 결국 정권을 넘기게 되었다. 아마 지금의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숙고해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경제당국이 "DTI를 축소하겠다"라고 발표하면, 그건 그들이 눈앞의 짧은 이익을 위해서 정권을 포기했다고 나는 이해할 것 같다.
두번째는, 한국이 1962년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 아파트를 한국 주택공사가 지은 이후, 48년 만에 전혀 다른 경제적 흐름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당시로서는 초호화 아파트였던 이 마포 아파트는 처음에는 입주율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었다. 이 48년 동안 우리는 경제계획은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러한 인구의 평균소득은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가설 위에 서 있었다. 여기에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시를 시작으로, 인구는 정체해도 집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세대 분할'이라는 변수 하나를 보조 변수로 추가하였다. 그래서 주택보급률 100%가 넘어도 "집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토건주의자들은 절대 명제로 신봉하였다.
▲ <아파트공화국> 표지. |
이 두 가지는 장기적 시각에서 작동하는 힘이다. 반면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는 또다른 힘이 있기는 하다. 하나가 전술한 저이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4대강이라는 삽질경제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전격적으로 강화시킨 재정정책이다. 요즘 와서 '4대강 사업'이 친환경 녹색, 그런 얘기들 하는데, 이 사업은 급격한 경제위기에서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한다"고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강행한 것이다. 출구 정책을 쓴다면, 극단적인 저금리 해소, 그리고 당시에 투입한 재정정책에 대한 단계적 축소 혹은 완화인데, 그런 것은 별로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지방경제에서 풀려나간 '토건의 돈'이 서울로 빨려들어가는 '블랙홀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참고로 역시 토건이었던 노무현 시절, 온갖 특구와 경제도시들로 지방에서 풀렸던 돈이 버블 세븐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폭등의 진원지가 되었던 전례를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상반기에 집행된 5~6조 원 정도의 돈 그리고 '작은 4대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강 르네상스 등 각종 지역의 토건 사업들, 그것들 역시 새로운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 수도권으로 진입하기 위한 모색 중이다. 그런 버텨주는 힘 역시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머니 속에서 만지막 만지작거리고 있는 경제당국의 부동산 부양 카드들, 즉 공적 자금 투입을 비롯해서 어쨌든 자신들의 튼실한 지지자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아파트 거주민들, 대체적으로 35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자들을 위해서 꺼내게 될 카드가 또 다른 반등의 힘이다.
이러한 단기적 힘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장기적 힘들이 2010년 하반기에는 힘 겨루기를 할 것인데, 어느 쪽 힘이 더 클 것인가, 어느 쪽 힘이 더 본질적인 것인가에 따라서 2011년의 한국 경제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 아파트 공사 현장. ⓒ뉴시스 |
자, 좀 위험한 얘기이지만,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나도 가설을 하나 만들어보는 중이다.
1번 시나리오, 경제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경우.
이 경우에 지금의 부동산 버블이 장기적인 조정 국면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균형 국면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와 주택은 본래 주거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그런 정상적인 경제로 가기 위해서 10여 년 이상 누적된 토건경제의 부담이 크지만, 그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투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유신의 잔재로 남아있던 토건경제를 드디어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2번 시나리오, 급격한 아파트 가격 지지 정책을 펴는 경우.
일본의 토건경제가 붕괴하던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도 90년대 지금과 마찬가지로 동경도와 나머지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발생했고, 세계화와 함께 지역에 있던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탈지역화' 현상이 생겼다. 외형만으로 보면 지금의 이명박 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리조트법' 등을 통해서 지역에서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게 하고, 중앙정부도 이러한 토건으로 지역경제를 부양하려고 하였다. 결과,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일본의 악명높은 '잃어버린 10년' 혹은 당시 천황 연호를 딴 '헤이세이 공황'이라는 것이 벌어지게 된다.
2번 시나리오는, 한국형 공황의 발발에 대해서 구체적인 작동 메카니즘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 보고 싶은 충동을 들게 만든다. 나는 정부가 현재까지의 추세대로라면 2번 시나리오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결국 별 선거도 없는 내년 중반까지 폭발의 에너지를 축적한다면, 2011년 하반기, 대체적으로 내년 7월부터 12월 사이, 즉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1년여 남아있는 사이에 진짜 'IMF급'의 부동산발 경제 폭락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원래 실물경제와 달리, 투기 대금으로 움직이는 투기 경제는 '롤러코스터 국면'을 만들게 되고, 폭발의 힘을 키우면 키울수록, 폭발의 파급력과 시기는 높아지는 편이다.
물론 연착륙을 유도하고, 이 기회에 토건경제에 대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탈토건 종합대책'은 지금도 가능할 것이지만, 아마 그렇게 하지 않고 '아파트 경기부양을 위한 종합대책'을 대신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지금은 상당수 일반인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무서워서 새로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30대 중산층, 사고 싶어도 살 돈과 갚을 여력이 없는 20대 비정규직들, 이 사람들이 주력 경제주체가 되는 상황에서 더는 지금까지의 '아파트 공화국' 현상이 작동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경제당국이 신중하게 잘 생각해야 하는 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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