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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금융 연환계, 적벽에 피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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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식 금융 연환계, 적벽에 피바람 분다"

[전망] '금융의 삼성전자' 비전, 은행원에겐 '지독한 악몽' 될 수도…

"국내 은행권은 국제 경쟁력 면에서 미흡한 면이 있어 세계 50위권 은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의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이 나와야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5일 KB금융그룹 신임 회장에 내정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의 한 마디가 국내 금융 산업의 대형화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의 합병설이 급부상했고, 론스타 파동을 겪은 외환은행까지 논란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이보다 먼저 우리금융에 눈독을 들여왔던 하나금융의 반발 역시 거세다.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 역시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몹시 친한 사이다. 금융기관 수장들끼리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경쟁하는 모양새까지 나타났다.

"동네 축구 탈출, 월드컵 진출덩치만으로 될까?"

하지만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겠다는 어 내정자의 발언은, 금융의 독자산업화·대형화·겸업화·규제 완화라는 전제 하에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며 지난 2월 정부가 내놓은 비전과 떼놓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간단히 넘길 수 없다.

'금융의 삼성전자' 발언에 담긴 의미 하나는 이른바 '선진화' 지향이다. 한국 금융과 서비스업의 수준이 제조업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한미FTA 역시 이런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삼성전자나 현재중공업 등 대형 제조업체가 만들어내는 제품,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월드컵 본선 수준이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의 실력은 동네 축구 수준이다.

이런 차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욱 도드라졌다. 키코(KIKO) 상품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품을 팔아서 국내 기업에 치명타를 입힌 은행들이 좋은 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방향을 잘 따르면 금융 분야 역시 삼성전자와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게 쉽지 않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기술 축적 과정을 거친 결과다. 그런데 어 내정자, 그리고 정부는 '도약'을 이야기한다. 한꺼번에 여러 계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다. 방법은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제조업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면, 지루한 기술 축적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또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합병하면 시너지 효과를 통해 비약적 성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 분야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시너지 효과, 기대해도 될까.

맥쿼리 증권의 분석은 명료하다. "비록 KB금융은 소매 쪽에, 우리금융은 기업금융 쪽에 강점을 두고 있어 업무영역이 다르기는 하지만 수입 면에서 시너지를 내기는 쉽지 않다." 한 마디로, 대형 부실은행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막걸리 고대'를 '와인 고대'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융의 삼성전자' 발언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글로벌' 지향이다. 삼성전자는 내수 기업이 아니다. 매출의 80% 가까이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 통신업 등이 내수에만 치중하는 것과 비교되는 측면이다.

그렇다면, 한국 금융의 글로벌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어 내정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고려대 총장 시절, '막걸리'로 대표되는 대학 이미지를 '와인'으로 바꿔낸 경험 때문일까. 그러나 나라 밖 소식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판단이 흔들린다. '대세'를 거스르는 시도라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금융회사의 대형화로 인한 '대마불사(too-big-to-fail)' 현상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 및 대형화를 제한하는 금융개혁 방안을 마련했고, 금융자본의 통제에 관한 의제는 올 11월에 예정된 G20 정상회의에서도 심도 있게 다뤄질 예정이다. (☞관련 기사: MB 특명 '메가뱅크', 오바마가 최대 훼방꾼?)

그리고 한국은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이런 위치에서 세계 금융의 '대세'를 거스르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로는, 명분을 얻기 힘들다.

'일단 몸집을 불리는 게 먼저다. 그러면, 세계 시장에서 저절로 인정받는다'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을 보면, 이런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메가뱅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국 국내용에 그쳤다. 자산규모의 증가가 글로벌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메가뱅크, 성공은 개연적이지만 부담은 필연적이다"

인수·합병을 통한 은행 대형화 시도가 정부 예상대로의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는, 이처럼 불투명하다. 모든 새로운 시도가 그렇듯, 성공도 실패도 그저 개연성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성공이 개연적인 반면, 부담은 필연적이다. 은행 대형화, 이른바 '메가뱅크' 만들기를 지지하는 전문가들 역시 인정하는 대목이다. 첫 번째 부담은 리스크 증가다. 규모가 커지면, 파산에 따른 부담도 더 커진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목인 적벽대전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조조의 선단은, 기동의 편리성을 쫓느라 배를 서로 묶는 연환계를 따랐다. 그러나 이런 편리에는 더 큰 위험이 따랐다. 배에 불이 붙을 경우, 더 쉽게 번진다는 게다.

다른 부담은 독점의 폐해다. 독과점을 통해 시장 지배적 위치를 갖게 된 은행이 '쉬운 장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은행 입장에서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 대출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서민과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는다. 결국 이들은 사채 등 질이 나쁜 대출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더욱 복잡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세 번째 부담은 실업이다. 은행 인수·합병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전혀 없으리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다만 그 폭과 규모를 놓고 이견이 있을 뿐이다. '메가뱅크' 탄생의 이점으로 꼽히는 게 구조조정을 통한 효율 증대라는 점을 떠올리면, 당연한 일이다.

"'금융의 삼성전자' 비전, '노사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악몽"

문제는, 대표적인 사무직인 은행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어 내정자 선임과 정부의 은행 대형화 방침에 대해 금융산업노조가 격렬히 반발하는 배경이다. 올해 상반기 금융산업노동조합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합병할 경우 이들 은행 직원 3명 가운데 1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만 명 이상의 은행원이 거리에 나앉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합병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은행 짝짓기'가 이뤄질 경우에는 구조조정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도 5000~8000명 선이다.

이렇게 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불분명한 시도를 위해 은행원들이 희생된다는 비판 여론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금융의 삼성전자' 발언에 담긴 '진짜 의미'가 '삼성 식 노사관계'를 배우겠다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원들이 일터에서 병에 걸려 죽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금융의 삼성전자'로, 은행권이 성큼 다가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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