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중앙 정치 차원의 '북풍'과 '노풍' 바람에 묻혀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현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비판한 인사들과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들을 해임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 주도의 이벤트를 여러 차례 벌였다. 한마디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행정력을 노골적으로 동원한 것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작태들을 벌였다. 이 정도면 행정부처가 국민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미 정권을 잃고도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하기보다는 이미 고인이 된 전임 대통령에 기대 지방선거에 임한 민주당의 태도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권자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게 하는 선거에서 이미 선거에서 심판 받은 과거 정권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실정과 시대착오적인 온갖 패악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현실에서 현재의 선거는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고르는 선택이며, 그도 안 된다면 최악을 징벌하기 위해 차악이라도 골라야 하는 고민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같은 선택이 조금이라도 이 땅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유권자로서는 선뜻 내키지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판단 기준을 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그 판단기준 중 하나가 '삽질경제 패러다임' 극복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필자는 세금과 예산, 교육과 보육, 일자리, 경쟁구조, 언론 문제 등 많은 사회경제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글을 써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부동산 문제가 지금 한국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이나 현재 미국 등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부동산 버블 붕괴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동산 문제는 한 나라의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또한 부동산 문제는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낡은 패러다임과 기득권 위주의 게임 규칙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제이다. 현 정부는 사실상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고, 이를 철저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또한 삽질경제학에 근거한 기득권 중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정책 대응으로 일반 가계의 고통이 누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 등 막대한 건설토목 사업에 소중한 자원들을 탕진함으로써 미래세대의 부담 또한 늘리고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계속 부동산과 대규모 토건사업에 기반한 경제성장을 지속해왔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들이 모두 건설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건설업은 한국 재벌들의 모태였다. 거기에서 각종 부패와 담합, 사기와 불공정 거래가 만연했다. 각종 부패사건의 절반 이상이 건설사업을 매개로 일어났다. 재벌기업들의 비자금과 정치권 검은 돈의 젖줄이었다. 또한 민간 부문에서는 고분양가로 일반 가계들의 주름살을 늘리고, 공공 부문에서는 뇌물 거래와 음성적 로비 공세에 따라 잔뜩 부풀려진 공사 발주로 예산을 탕진하는 주범이었다. 정치인들은 개발공약을 내세우고 유권자들은 개발공약이 집값을 올려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개발붐에 편승한다. 또한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한국 언론의 왜곡보도가 가장 만연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동산과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한 삽질경제는 한국의 산업구조가 그동안 노동집약 → 자본집약 →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이행하는 동안 줄기차게 지속돼온 패러다임이다. 정권의 좌우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이었다. 또한 일반 서민들의 부동산 재테크에서부터 최고위 경제관료들의 경제 정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와 경제를 좌우해온 패러다임이었다. 이렇게 해서 삽질경제는 한국의 사회경제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끈질긴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 같은 삽질경제 패러다임은 이것을 극복해야 할 시점에 가장 극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바로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건설족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본의 규모를 키우며 삶의 질을 일정하게 높이는 등 삽질경제의 긍정적 효과 또한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삽질경제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한국경제가 여전히 개발연대의 삽질경제에 묶여 있는 가운데 발생하는 폐해가 너무나 크다.
삽질경제를 폐기해야 할 시점에 부동산 버블에 편승해 더욱 기승을 부린 삽질경제는 자산양극화와 국토의 황폐화, 민간 부담 증가와 국가 자원 낭비를 낳는 주범이다. 지식정보화 창의경제시대로 도약해야 할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 걸림돌이다. 부패와 반칙, 사기, 불공정 거래로 상징되는 삽질경제로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삽질경제가 아니라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전환을 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삽질경제학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삽질경제로 한국경제가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는 사이 수면 아래에서 한국경제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서민중산층과 20~40대 젊은 세대의 피해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줄기차게 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삽질경제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국경제에 앞날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동안 계속 연재해온 지방재정 분석 시리즈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국 지자체의 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복지와 문화, 교육 분야의 사회적 투자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각 지자체들이 각종 개발사업에 무분별하게 나서며 예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 의식도 없이 온갖 막가파식 개발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을 이번 선거에서 보고 있다. 이미 '토건국가'라 불리던 일본을 훨씬 능가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건설업 비중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개발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토건사업 위주의 개발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재정이 투입되면서 지식정보화와 첨단기술 개발, 교육 및 사회복지 등 소프트 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을 소진시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필자가 지방재정 분석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왜 지금 한국이 삽질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설명한 부분을 인용한다.
"토건사업과 지식서비스업, 두 가지 산업에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경제에서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자원 배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 두 산업에 배분할 수 있는 자원은 100이라고 가정하자. 먼저 토건사업에 75, 지식서비스업에 2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의 효용, 즉 후생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건사업에 25, 지식서비스업에 75를 쓸 때 경제 발전에도 가장 효과적이면서 국민들의 후생 수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우가 현대의 첨단지식정보화시대의 자원배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경제는 후자와 같은 자원 배분을 해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발연대 시절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각종 토건사업에 여전히 60, 지식서비스업에 40 정도의 자원이 배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연대 시절에 비해서는 25에서 40으로 지식서비스업에 자원이 좀더 배분되고는 있으나 자원의 최적배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토건사업에는 과도하게, 지식서비스업에는 과소하게 자원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원 배분은 국민경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탕진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후생 수준도 시간이 갈수록 떨어뜨린다."
이처럼 삽질경제의 결과가 너무나 뻔한데도 개발연대 시절의 자원배분 방식이 강력히 남아 있는 것은 개발연대 시절의 정부주도 정책 및 제도 등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대가 변하고 경제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및 제도의 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및 제도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크게 정부 관료들과 선출직 공직자들이다. 정부 관료들은 국민이 직접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선출직 공직자들은 얼마든지 국민이 바꿀 수 있다.
오늘 투표장에 가실 분들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삽질경제, 토건경제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열 패러다임인지 지식창의 경제가 새로운 미래패러다임이 돼야 하는지 말이다. 개발연대의 낡고 칙칙한 개발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우리 부모들의 노후와 우리 세대의 삶의 질을 이야기하지 않는 후보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여기에는 말로는 지식창의경제를 외치면서도 실제로 예산은 각종 토건개발사업에 퍼붓는 겉포장 후보도 포함된다. 말보다 행동이 그 사람의 본질을 훨씬 더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의 뒷무대로 퇴장해야 하는 낡은 세력이며 이 땅의 미래를 후퇴시키는 사람들이다. 각종 개발 공약으로 부동산 거품을 더욱 띄우겠다는 후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가장 철저히 짓밟고 가뜩이나 부족한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가장 확실히 없애는 후보다. 가장 반서민적인 후보다. 오늘 투표에 임하는 분들은 여야를 떠나 '삽질경제 패러다임'을 끝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후보가 누군인가를 심사숙고해줄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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