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시도의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표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선거의 정당성이 사라지니, 선관위는 시민에게 투표를 권유할 뿐 아니라 상품권이나 컴퓨터 등을 경품으로 주는 변칙적인 방법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편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고, 이런 편법은 선거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더욱더 왜곡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선관위의 편법은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찾는다. 허나 사람들이 투표장을 찾지 않는 건 투표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용인시만 하더라도 세 명의 시장 후보가 있는데, 세 명 모두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의 후보는 국회의원이 공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다른 한 명의 후보인 현직 시장은 인사 비리로 이미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세 명 모두에게 께름칙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운데, 이 세 명을 놓고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하고 싶을까?
더구나 시장만이 아니라 도의원, 시의원, 교육의원을 놓고 봐도 비슷한 마음이다. 홍보물을 보면 이런저런 경력을 써놓았지만 선뜻 지지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선거 끝나고 나서 정당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비례대표도 께름칙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 용인시만의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사람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뽑아야 하는 선거를 민주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렇게 뽑을 사람이 없는데도 투표하고픈 마음이 생길까?
따라서 정말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기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진정 시민이 주권자라고 여긴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 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 이런 선거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표 용지에 기권란을 만들자.
시민들 다수가 기권란에 기표하면 선거를 다시 치르도록 해야 한다. 주권은 정치 공동체의 틀을 만들 권리이다. 한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응당 시민들의 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선거는 시민이 일꾼을 고르는 자리이지 일꾼이 시민들에게 뭘 해주겠다며 유혹하는 장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이 쓰는 예산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지 그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예산을 제대로 써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
이미 2008년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선거가 끝나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치인들이 이런 주장을 반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마음대로 권력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제도개선을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없다면 우리가 지금 만들면 되고, 민주주의란 특정한 모델이 아니라 민중이 지배하는 방식이니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선거를 다시 치를 비용이 문제라면 그런 후보자들을 공천한 정당이 그 비용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보다 국고보조금으로 정당을 운영하면서도(2008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정당의 당원들 중 당비를 내는 사람은 7.1퍼센트에 불과하다) 선거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정당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정당도 더욱더 신중하게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을까?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 선거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직접 뜻을 밝히자. 기표소에서 기권란을 그리고 그곳에 기표를 하자. 그렇게 기표하면 잘못 찍어서 생긴 무효표와 구분되니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면 투표율을 높이면서도 수동적으로 지금의 선거판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정치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 또한 그렇게 감시하는 시민들의 눈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당선된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