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팔뚝질과 함께 구호가 뒤따랐다. 26일 오후 4시. 30여 명의 여성 노동자가 "우리도 한양 가족입니다"란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신본관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학생은 "뭐야? 노조야?", "돈 올려달라고 저러는 거 아니야?" 이렇게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양대 사랑의 실질 지수는 65점, 총장님, 저희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주세요' 등의 피켓을 들고 1시간 넘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 속에 이명숙(40) 씨도 있었다. 이날은 한양대학교 학사 지원 직원 노동조합원 67명이 파업을 선언한 날이다. 이들이 파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도, 회식도 제외…함께 일은 하지만 모든 게 차별
이명숙 씨가 처음 한양대에 온 것은 1999년이다. 1994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규모가 큰 건설 업체에 공채로 들어갔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정리하고 학교 조교로 취업했다. 그가 한양대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모교였기 때문이다.
▲ 한양대 신 본관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학사 지원 노동조합원들. ⓒ프레시안(허환주) |
당시 이 씨는 회계사를 준비했었다. 학교 조교 업무가 여유가 있다고 해서 들어왔지만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가 처음 맡은 일은 교육대학원 교학과. 학과 시간표를 만드는 일부터 강의실 관리, 학생 학적 관리 등 잡다한 일을 도맡아 했다.
해가 지날수록 일은 많아졌다. 회계사 준비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업무가 과도해 코피가 나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 달 꼬박 일해 그가 쥐는 돈은 고작 50여만 원. 그나마 2000년에 80여만 원으로 겨우 올랐다. 노천극장에서 며칠 동안 농성을 벌인 결과였다.
휴가는커녕 연차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한양대 안산 캠퍼스로 발령이 나면 일반 직원은 한 달 교통비로 3만 원이 나오지만 이 씨는 1만 원만 받았다. 시간외 수당도 일반 직원의 65퍼센트. 점심값도 65퍼센트. 포상도 열외. 일부 부서에서는 회식에서도 제외됐다.
그래도 이 씨는 모교에서 일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시키는 일이 아닌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도 있었다. 학교가 변해가는 게 즐거웠다.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그들과 우리가 다른 게 뭔가"
그나마 학교가 2003년에 이명숙 씨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호봉제를 도입하고 정년을 50세까지 보장했다. 하지만 그간 일해 온 연차는 50퍼센트만 인정했다. 정년도 일반 직원에 비해 8년이나 짧았다. 임금도 일반 직원의 50퍼센트 수준이었다.
정규직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무기 계약직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냐며 감사했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2005년부터 3년 동안 임금을 인상해, 일반 직원의 65퍼센트 수준으로 올렸다.
주목할 점은 같은 시기 학교와 협상을 진행한 또 다른 직군인 계약직 노동자의 경우, 2007년부터 3년간 임금을 인상해 일반 직원의 80퍼센트 수준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애초 이들은 일반 직원 임금의 65퍼센트를 받았었다.
한양대 교직원은 행정을 담당하는 일반 직원과 기능직·사서 등으로 구성된 직원(계약직 노동자), 단과대·대학원에서 사무를 보는 학사 지원 직원(행정 조교) 등 3개 직군으로 나뉜다. 행정 조교 명칭은 2003년 '고용 안정 조교'를 거쳐 2006년 '학사 지원 직원'으로 바뀌었다.
계약직 직원과 행정 조교가 하는 업무는 똑같다. 채용 전형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제 와서 직군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대우를 한다"고 이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같은 과에서 책상을 마주보고 일을 하는데 저쪽은 직원이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받는다"며 "그들과 우리가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을 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요구"냐고 덧붙였다.
▲ 이들은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모교이기에 애정이 큰 만큼 상처도 크다"
학사 지원 직원 노동조합은 지난해 10월부터 4차례에 걸쳐 학교와 협상을 진행했으나 서로 입장을 좁히지 못했다.
노동조합은 지난 6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안이 최종 결렬되고 나서, 26일 파업을 선포했다. 노동조합은 일반 직원의 65퍼센트 임금을 80퍼센트 수준으로 올리고 정년은 50세에서 58세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명숙 씨는 '파업은 끝까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모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게 걱정이었다. 다른 학사 지원 직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67명의 직원 중 한양대 출신이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학교 측에 여러번 수모를 겪은 그들이었다. 이 씨는 "학교 측은 '애초 정규직화를 시켜준 게 행정 잘못이었다'고 말했다"며 "학교와의 대화를 통해 배운 점은 학교는 오로지 돈 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학교는 우리에게 '원래 조교였으면서 이제 와서 계약직 직원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우리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 하는 건 똑같은데 어느 소속이냐를 따지며 가르는 모습이 현대판 노예 제도"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예산이 한정돼 있기에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명숙 씨는 "모교이기에 애정이 큰 만큼 상처도 크다. 모교가 부끄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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