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공식 일정 기간 동안 한국 정부가 비협조로 일관한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라 뤼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 보호 현황을 파악하고자 지난 6일부터 17일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국 사회 내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국내외 인권단체의 지적에 따른 방문이었다.
하지만 특별보고관은 공식 일정인 12일간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총리,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를 만나지 못했다.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인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의 협조에 감사하지만 상당히 실망했다"고 불만을 표현했다.
라 뤼 보고관은 국가정보원 사찰, 미행과 관련해 "내가 공식 방문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그런 사실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이와 관련된 내용은 외교부에 말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라며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프랑크 라 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
"공식 초청이었지만 대통령, 총리 등 만나지 못했다"
라 뤼 보고관은 "공식 초청이었지만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국정원장, 검찰총장 등과의 만남도 성사되지 못했다"며 "유엔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문제를 조사하고자 면담을 신청했으나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라뤼 보고관은 이번 방문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행전안전자치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라 뤼 보고관은 "관심 받는 사안의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면담을 하고 싶었으나 면담이 전혀 성사되지 않았다"며 "결국 일정이 끝날 즈음에서야 면담이 불발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다른 보고관의 경우,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 즉시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을 존중했고, 인권 전문가들과의 면담도 중요했기 때문에 12일간의 공식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 관료를 만나는 건 면담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며 "이번 면담이 불발된 것을 통해 한국의 인권 개선 의지가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라 뤼 보고관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들과 면담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 "위원장과 더불어 합동 면담을 하지 못한 게 매우 실망스럽다"며 "몇 차례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라 뤼 보고관은 위원들과의 면담이 불발 된 뒤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과 함께 하기로 한 오찬을 취소했다.
"지난 2년간 한국에서의 표현 자유는 위축됐다"
라 뤼 특별보고관은 "지난 2년간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상당히 위축됐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기존 법 규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결과,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
라 뤼 특별보고관은 "국제 인권 법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그 책임은 특정한 경우로 제한된다"며 "하지만 촛불 집회 이후 많은 형사상 기소가 발생하고 있다. 기소가 늘어난다는 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걸 의미한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한국을 공식 방문한 목적은 인권 상황이 과거에 비해 진전 됐는지 후퇴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며 "한국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인권은 상당 부분 진전됐지만 지난 촛불 집회 이후 인권이 많이 위축되고 제한된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라 뤼 보고관은 국정원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고소, 미네르바 사건, 인터넷 실명제, 명예훼손죄, 집회 및 시위의 자유, 경찰의 과잉진압, 국가보안법, 공직선거법 등에 관한 부당함과 개선점을 함께 발표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의 검열 기구로서의 활동을 두고 라 뤼 보고관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라 뤼 보고관은 "사생활 침해, 명예 훼손이라는 이유로 투명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게시물이 삭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 기관도 아닌 방통위가 인터넷 상 콘텐츠를 규율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또 방통위 위원장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운영 예산은 방송사의 광고수입에서 강제로 각출해서 만들어 진다"며 "민간 독립 기구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라 뤼 보고관은 "앞으로 한국 정부와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이런 현상을 되돌리고 싶다"며 "유엔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통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사한 결과와 분석 내용은 2011년 공식 보고서로 작성돼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될 예정이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17일 해명자료를 내고 "통상적인 특별보고관들의 국가방문 경우에 비춰 대통령, 국무총리 등과의 면담 요구는 과도한 것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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