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2월 24일 오후 4시, 우리 사회는 그런 초보적 수준의 상식도 지키지 못했다. 난데없는 이상 한파로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었던 세밑, 갑자기 철거 전문 용역들이 들이닥치면서 상식을 지키기 위한 '꼬마 용산' 두리반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두리반은 여럿이 둘러 앉아 밥을 먹는 상이란 뜻으로 '두레반'이라는 충청도 사투리에서 나온 말이다. 12첩의 진미들로 차려진 수라상처럼 귀족적인 밥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두리반은 모두가 정겹게 한데 어울리는 전래의 식탁 문화이다. 과연 그 이름 그대로 두리반은 넉넉한 인정과 맛으로 '두리반 폐인'들을 양산하면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나가고 있는 참이었다.
정갈한 국물맛과 쫄깃한 면발은 가히 전국구의 솜씨라는 모 시인의 외교적 발언도 강한 설득력을 지닐 만큼 두리반은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준수한 맛집이었다. 당연하게도 두리반 폐인들에게 이 사태는 서민 밥상의 위기이며, 이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추악한 욕망(辱望)의 폭거로 받아들여졌다.
▲ 홍대 두리반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물이 철거돼 공터만이 남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래서였을까? 거대한 건설 자본에 두리반이 접수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비보를 접한 분노한 글쟁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가까운 이웃은 신기의 솜씨를 발휘하여 전기가 끊긴 두리반의 어둠을 밝혀주었다. 뿐만 아니라 용역들의 기습 철거로부터 작은 용산 두리반을 지키자며 인디밴드들이 기타와 드럼을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고, '쥔장'의 지기들은 김치와 간식을 공수해왔으며, 그리고 어느 독지가는 강추위가 지나고 봄이 오기까지 넉 달째 장기 농성을 이어가는 쥔장의 건강이 염려스럽다며 고성능 러닝머신을 놓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 1일 62개의 인디(전국자립음악가)들이 모여 세계노동절 120주년 기념 음악회 겸 두리반을 지키기 위한 '뉴타운 칼쳐 파티' <51+두리반>을 열었다. 욕망(辱望)을 예술과 문화로 정화하기 위한 한마당이 펼쳐졌으니, 3000여 명이 모여 이루어낸 감동적인 축제였다.
이 '두리반 페인들'이 매일같이 삼삼오오 모여 두리반을 지키고 힘겨운 예술적인 투쟁으로 두리반을 밝히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완강하다. 물론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수많은 서민 세입자들에게 그것은 없느니만 못한 기대 난망의,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 쥔장과 폐인들의 사전에 절망과 중단이란 단어는 없다. 두리반은 강제 철거에 눈물짓는 좌절과 분노의 공간이 아니라 추악한 욕망들에 맞서는 저항의 사관학교이며, 철거민들의 밤을 밝히는 시대의 촛불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두리반 폐인들에게 희망과 은혜의 거대한 축복이 있기를! 두리반 폐인의 일원으로 유치원 때 배운 왕초보 상식을 조용히 외쳐본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그리하여 이 땅에서, 기어코
"강제 철거를 철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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