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함정이 뜬금없이 침몰해서 군인 46명이 죽고, 구조하던 군인이 한 명 또 죽고, 구조를 돕고자 했던 어민 9명이 죽다. 그런데도 사고 원인은 모르고, 일반적으로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고 따져서 확인하는 시민이 늘어나야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주의 어떤 샌님이 술자리에서 "지금 이거 '미궁'으로 흘러가는 것 아냐?"라고 의심을 드러낸 지 며칠 후에 국방장관이 "영구미제"가 될 가능성을 흘리다. 하지만 그 곁에는 여전히 "북한의 소행"이라는 듯이 은근슬쩍 바람을 잡는 인간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볼 증거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러는 자들이 또한 있고, 그런 자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현재로서는 헛소리밖에 아님을 잘 알면서도 뻔뻔하게 헛소문이 퍼져나가는 꼴을 즐기는 사악한 심성의 소유자들이 정치인 중에 상당히 많으며, 그런 사람 축에 끼는 것으로 분류될까봐 어떤 (스스로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우겨대면서 파란 기와집에 사는) 정객은 북풍을 이용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북한 소행으로 몰아갔을 터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다.
일들이 돌아가는 품새가 도무지 문명국가답지가 않다. 헛소리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중론이 형성되지 않는 모양은 이리떼나 새떼가 내는 소음에 비해 별로 나을 것이 없다.
▲ ⓒ연합뉴스 |
2. 암울하다:
전라북도 도의회 비례대표 의원후보를 추천하는 민주당 도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장애인을 모두 탈락시키다. 장애인은 15% 가산점을 받도록 되어 있었으니, 가산점을 받더라도 3위 안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점수차를 크게 준 심사위원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수도권에서 "개혁"과 "MB정권심판"을 부르짖는 정당의 "텃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곳에서는 개혁의 기역자와조차 상관이 없이 마냥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으니, 젓갈 썩는 냄새에 우르르 몰려드는 파리떼가 왠지 모르게 연상되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보이는 행태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다. 예를 들어, 김민석은 유시민 때문에 경기도지사 연합공천이 결렬되었다고 핑계를 대지만, 민주당이 반영 비율 몇 퍼센트 가지고 그렇게 뻣뻣하게 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내 맘 속에 일어나다. 사실 유시민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경선방식에서 크게 양보를 해서 막상 경기도지사 연합후보가 되어 버린다면 부담이 적지 않을 터. 대구를 버리고 경기도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만약 당선을 못한다면 재기가 쉽지 않을 터. 물론 2012년에 또 뭘 해보겠다고 나서기는 할 것이고 "뻔뻔하다"는 비난에 개의치 않는 열성 지지파도 꽤나 있겠지만, 탈당을 불사하고 국회의원 자리를 챙겼다가 지지자들을 많이 잃어버린 정동영과 동병상련할 항목이 꽤나 많을 터. 그렇다면 만약 당선이 된다면? 이런 소동을 벌이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다면, 아무리 유시민이라도 2012년에 대통령 자리를 노리지는 못할 터. 그러니까 민주당이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아주 귀찮게 굴 골칫거리 하나가 지금 처리되는 셈. 이런 정도의 계산능력을 가진 사람조차 민주당에는 없는 듯하여 더욱 암울하다.
3. 답답하다:
조전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전교조 회원 명단을 공개하다. 법원이 공개를 금했는데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은 지겠다"면서 공개를 강행하다.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진다는 것일까? 법정모독죄를 스스로 자인하고 한 2년 징역을 자청하겠다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검찰이 법정모독죄로 기소하면 법정공방을 포기하고 구형된 형량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소리도 아닐 것이다. 법적 책임은 지겠다는 소리는 결국 법정에서 다퉈보겠다는 뜻이고, 그 뒤에는 물론 법원의 명령 따위는 언론 플레이와 다수당의 힘으로 충분히 덮고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이 정도 계산이야 초등학교 한 4학년이라도 조금만 영악한 놈이면 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이 때문에 특별히 답답한 것은 아니다. 법원이 조전혁의 저런 행태를 법정모독죄로 다스릴 것 같지가 않고, 그런 법원의 직무유기에 대해 분개하는 시민의 숫자도 별로 많을 것 같지가 않아서 답답하다. 조전혁의 범법 행위에 맞장구를 치느라 검찰은 전교조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로 바람을 잡고 있는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지경이 벌어지는데도 민주개혁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자처하는 정치꾼들은 사법개혁이라는 중대한 의제를 시민들에게 체계적으로 제시할 생각은 없이 그저 눈앞의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니 답답한 것이다.
4.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명박과 그 부하들의 무지막지한 행태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아니라고 했듯이 설마 천안함 사고를 기화로 북풍을 기획할 생각이야 하지 않았겠지만, 조중동이 연일 피워 올리는 연막은 북풍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파트 값 내릴까봐 행정수도에 반대하고 이명박을 찍어 준 서울 시민 중에 이것을 북풍으로 인지하는 눈을 가진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맘속에 일어난다는 데 우선 희망의 실마리 하나가 있다.
하지만 이 희망은 대가 약하다. 억압이 시작되면 저항했다가도, 막무가내로 억압이 계속되면 저항보다 순응을 택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경향이 한국인들에게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우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실 그런 순응주의는 한국인들에게서 아주 자주 나타나는 일이다. 정신 나간 일부 지식인들의 찬양과는 달리, 말초적 감성만으로 불타오르는 듯했던 2008년의 촛불이야말로 체계적 사유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느낌만으로 발동한 행동이 어떻게 순응주의로 흘러가는지를 잘 보여줬다. 그래서 막연한 희망은 악랄한 현실 앞에서 쉽게 꺾이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소수밖에 아니며, 그런 소수가 계속 그런 수준의 희망만을 부르짖어서는 그래서 영원히 소수 노릇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뭔가 나은 세상을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모든 목적보다 연대가 우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일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가장 깊고 질긴 희망의 원천이 있다. 아직도 선거연합을 바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는 데에 희망의 뿌리가 있다. 제발 주구로 써먹어 달라고 정권에게 애걸복걸 충성 경쟁을 벌이는 검찰의 행태에 대한 반감이나, 뭔가 짜맞추기를 하고는 싶은데 잘 안 돼서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비치는 국방부의 행태에 대한 반감을 모든 시민이 직접적으로 지방선거투표로 연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황장엽을 암살하라고 북한에서 자객까지 보냈다는 소식만 듣고 라면 사재기를 위해 달려가는 시민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일맥 상통한다. 한국의 유권자 상당수가 일면 억압에 순응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에 비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 것이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조차 때로는 주체적인 판단력과 분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모든 희망의 거점이 있다. 지금 지방선거의 국면에서 이런 희망의 거점을 잘 찾아 엮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2012년을 노려볼 자격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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