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두고 노·사·정 간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당초 비정규직 법안 입법 이후에 로드맵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비정규직 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하자 후순위로 밀려있던 로드맵이 노사정 관계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노동부, 비정규직 입법 상관없이 '로드맵' 입법 추진
시동은 노동부가 걸었다. 노동부는 최근 비정규직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로드맵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중 노동부 차관은 지난 3일 "4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해서 로드맵 입법을 더 미룰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노동부는 로드맵 처리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노동부에 따르면, 로드맵을 9월 정기국회 초반부에 입법하는 것을 목표로 6월까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를 완료한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로드맵 입법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유는 입법 이후 시행령 마련 등을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복수노조 허용 등의 사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돼야 하기 때문에 논의의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로드맵 입법, 넘어야 할 산 많아
그러나 노동부의 의지대로 로드맵 입법 추진이 순탄한 과정을 거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선 로드맵에서 다루고 있는 33개 의제에 대해 노·사·정 간 공감대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인력 투입 문제 △직권중재 폐지 △직장폐쇄 요건 완화 등의 로드맵 사안은 노사 간 이견이 커 합의가 매우 어려운 사안들이다.
또한 이견이 큰 의제를 논의할 '기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로드맵 입법 추진에 걸림돌로 지적된다. 로드맵 의제가 노·사 모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사의 의견 수렴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의견 수렴을 위한 '틀'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현재 노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식적인 기구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유일하다. 하지만 제1노총인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회의도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의 '대표성'이 심각히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즉 노동부의 기대대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로드맵 의제에 대해 진통 끝에 합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반발로 인해 '노사정 간 합의 정신' 상당부분이 훼손될 여지가 많다.
민노총, 대표자회의 복귀 가능성 커
따라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대한 민주노총의 복귀 의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현재까지 대표자회의 복귀나 로드맵 개입 전략 등을 내놓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민주노총은 9일부터 임원 및 사무총국 실장급으로 구성된 상임집행위원회 수련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대표자회의 복귀를 포함한 로드맵 개입 전략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된다는 것이 민주노총 측 설명이다.
민주노총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련회에서) 로드맵 개입 전략 등 전반적인 기조를 놓고 깊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동계 안팎에서는 민주노총이 대표자회의 복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표자회의 복귀 없이는 로드맵 입법에 민주노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낳고 있다. 대표자회의에 복귀하지 않는 것이 로드맵을 외면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자회의 복귀는 물론 사회적 대화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총 내의 일부 세력 역시 사안별 논의를 위한 사회적 대화 재개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입장은 취하지 않고 있는 점도 고려해볼 대목이다.
따라서 조만간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하고 이 '틀' 속에서 로드맵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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