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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없는 교육감' 되겠다"

[민주진보교육감 예비후보 연속 인터뷰]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

교육감 선거에 나선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학벌 철폐', '노동 천시와 인문 숭상 혁파', '수업 현장 중시'. 기자와 만나자마자 꺼낸 말도 "학벌 기득권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검정고시 출신으로 교사가 됐다. 교육운동에 눈을 뜬 계기 역시 '책'이 아니라 '현장'이었다. 실업고, 산업체 야간특별학급에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고, 그때부터 승진에서 관심을 끊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을 하면서도, 정책을 다루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자리보다는 조합원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가 눈에 띄는 자리에 오른 것은 지난 2003년 제4대 서울시 교육위원이 되면서다. 5대 교육위원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9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만났다.

"서울시 교육청 비리, 떠들썩하기 전부터 고발해 왔다"

- '서울 교육 포청천'이라는 별명이 인상적이다.

교육위원 임기를 마치면, 농사를 짓고 싶었다. 그런데 후배들, 해직 교사들이 자꾸만 등을 떠밀었다. 이번에는 진보 교육감이 나와야 하고, 진보 교육감은 학벌 없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게다. 교육위원이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후배들이 밀어붙였다. 내가 먼저 나선 일이라면, 쉽게 접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배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맡긴 일이라면, 함부로 접을 수 없다. 그래서 교육위원 일에 매달리다 보니, 교육청 비리를 여러 차례 발견하게 됐다. '서울 교육 포청천'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한번 이런 별명이 붙으니까, 제보가 쏟아졌다. 서울시 교육청 인사 비리가 공론화되기 전부터 인사 비리와 교육청 내 파벌 문제를 고발했는데, 모두 이런 제보 덕분이었다. 내가 잘나서 이룬 게 아니다. 강당 등 학교 시설 건설 과정에서 공사 업체와 유착한 비리, 방과 후 학교 문제를 지적한 일 역시 마찬가지다.

"학벌 기득권자들, '본전 생각' 때문에 '진짜 개혁' 못한다"

- '학벌' 문제를 유난히 강조한다.

▲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 ⓒ최홍이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바로 학벌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다. 학벌 없는 사람이 겪는 설움을 내가 그대로 겪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입시 경쟁으로 질식하는 이유,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의 등이 휘는 이유, 교육 개혁을 시도하는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 모두 학벌 체제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저당 잡혀서라도 명문대 학벌을 얻으면, 평생 기득권을 누리는 사회에서 너도나도 학벌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막기 힘들다.

물론, 이런 문제 제기가 아주 새롭지는 않다. 진보적인 이들 사이에서는 학벌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꽤 마련돼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학벌 철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다른 자리에서는 학벌 기득권 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을 종종 봤다.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은 대개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학벌 기득권을 얻기 위해 쏟은 노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본전' 생각 때문에라도 기득권을 완전히 놓기는 어려울 게다.

나는 '본전'이랄 게 아예 없다. 정규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1960년대에는 교사 자격 검정고시를 통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다. 그러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학벌 기득권과 싸울 수 있다. 교육감이 되면, 학벌 철폐 운동에 전력 투구하겠다.

"학교 현장 잘 아는 사람 있는데, 왜 교수에게 맡기나"

- 교육위원 활동을 통해 다양한 교육 비리를 고발했다.

그게 내 자부심의 밑천이다. 학교 창호 공사 비리를 고발해서 검찰 기소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구속됐다. 방과 후 학교 비리를 고발했는데, 그 결과 교장 5명이 기소됐다. 장학사 시험에 부정 합격한 사례를 고발해서 합격을 취소시킨 일도 있다. 내가 평교사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게다. 학교 현장에 깊숙이 몸 담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교수 출신이 교육감이 됐을 때, 우려스런 대목도 이 지점이다. 학교 현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복잡한 교육 행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행정과 법규의 허점을 뚫고 나오는 비리를 막기 힘들리라는 점 역시 당연하다. 물론, 교수 출신 교육감이 행정을 잘한 사례도 있다.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등이 이런 사례다. 그러나 이들 역시 교육 행정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교육감 임기를 고려하면, 이런 시간 낭비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이 있는데, 굳이 교수 출신에게 행정을 맡겨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노동 천시, 인문 숭상'이 교육 망쳤는데, 대학 교수만 쫓아다녀서야"

- 대학 교수 출신이 교육감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불만이 많아 보인다.

불만이 아주 많다. 교수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에서 지낸다. 예컨대 교사들이 시국 선언을 하면 해직되지만, 교수들은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도 거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들의 실천과 교수의 실천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교조 합법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탄압받고, 해직되고, 투옥됐나. 전교조가 지금 여론의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로 이런 역사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당시 주경복 후보는 자신이 전교조 후보가 아니라고 했다. 주 후보를 지지했던 전교조 교사들의 마음에 못이 박혔다. 전교조가 부끄러운 이름인가? 왜 전교조를 숨겨야 하나. 전교조 없이 교육 개혁이 가능하다고 보나. 교육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할 때 누구와 함께 싸우겠다는 건가.

'전교조 출신은 안 되니까 명망 있는 교수를 후보로 모셔오자'라는 논리가 교육운동 진영에서 통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뭔가. 노동을 천시하고 인문을 지나치게 숭상하는데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왜 현장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건가. 교수 출신이라고 해서 행정을 더 잘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대학 교수가 초·중등 교육까지 잘 안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믿음은 그저 지식사대주의일 뿐이다.

물론 대학 교수라고 해서 초·중등 교육에 대해 애정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교사보다 더 깊은 진정성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교육감이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행정 수장이 되지 않고서도 초·중등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교육감이 되겠다는 교수들은 많은데, 교사가 돼서 아이들과 직접 만나겠다는 교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게 답답하다.

"'수업 잘하는 교사가 대우받는 학교' 만들겠다"

- 교육감이 돼서 하고 싶은 일이 '학벌 철폐 운동'만은 아닐 게다.

그렇다. '수업 잘하는 교사가 대우받는 학교'를 만드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바람이었다. 교육 행정은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교사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돼서 이익을 보는 이들은 교육 관료뿐이다. 인사 제도를 손질해서 수업 현장에서 뛰어난 교사가 대우받는 구조를 만들겠다.

아울러 학업 성취가 뒤처지는 학생을 위한 정책에 특히 힘을 쏟겠다. 앞서가는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챙기는 '책임 교육'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건강한 인성은 차별 없는 성장 환경에서만 길러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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