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 역시 '반칙'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부유한 집 아이들이나 적어도 출발선에서는 같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런데 힘을 가진 이들이 이런 조건을 조직적으로 허물고 있다면? 그게 바로 반칙이다. 규율을 다루는 법학자가 교육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이런 반칙을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곽 교수를 지난 9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만났다.
"학교 안에 이미 '20 대 80 구조'가 견고하다"
- 교육감은 초·중등 교육을 다루는 자리다.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던 입장에선 낯선 역할일 듯하다.
초·중등 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 초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과 함께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작업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게 교육계와의 첫 인연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 교육부 규제완화위원을 맡아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하는 작업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된 뒤에는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을 맡았었다. 학교 행정 및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작업을 하며, 학교 현장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받은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학교 안에서는 이미 '20 대 80'이라는 양극화 구조가 견고했다. 아이들 가운데 20퍼센트 이하에게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80퍼센트 이상에게는 근거 없는 열패감을 심는 구조다. 학교에 '20 대 80' 구조가 뿌리 박혀 있는데, 사회에서 이런 구조가 바뀔 리 있겠는가. 그럴 리 없다.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체험 학습장이 돼야 한다"
내 평생 화두였던 인권과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시민이 성장기를 보내는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면, 답은 뻔하다. 성인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우는 터전이 돼야 한다. 학생 인권 조례 제정을 위해 쏟았던 노력은, 결국 우리 사회에 인권과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는 걸림돌을 치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런 깨달음이 나를 교육감 선거 출마로 이끌었다.
출마를 결심한 뒤 교육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학습을 했지만, 초·중등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분명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교육감이 되려는 것은, 지금 서울시 교육에 더욱 절실한 요소를 내가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를 체험하는 장이 돼야 한다는 신념, 아이들이 학교에서 경쟁과 차별이 아니라 우정과 환대를 경험해야 한다는 믿음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본다. 또 혁신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 원칙에 충실한 추진력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 서울시 교육에 필요한 것은 이런 요소라고 본다.
"모든 부패는 '강자의 부패'다. 따라서 약한 아이들의 적이다"
-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관련 비리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다음 교육감에게는 이런 부패 구조를 깨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듯하다.
▲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곽노현 |
부패가 약자의 적인 이유도 그래서다. 교육 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계 부패는 결국 한계 상황에 부딪힌 학생,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의 적이다. 또 수업을 열심히 하는 교사와 가난한 학부모의 적이기도 하다.
일회성 조치로는 부패를 없앨 수 없다. 부패 구조에 햇볕을 비추겠다. 투명성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감사를 통해 부패를 씻어내겠다.
"교육 혁명은 아이폰 혁명처럼"
- 지방 교육 행정은 '복마전'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다. 특히 인사 분야는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비리가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드러난 비리 역시 이런 구조와 관계가 깊다. 초·중등 교육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이런 구조를 개혁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인권, 사회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팔 할은 현장, 그것도 고통 받는 현장이었다. '복마전'으로 뛰어드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가 이끈 아이폰 혁명을 보라. 먼저 혁신을 하고, 이를 제도적 표준으로 만들어서 정보기술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꿔냈다. 내가 하려는 개혁도 이런 방식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교육계에서 의미 있는 혁신이 이뤄진 사례는 이미 다양하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널리 퍼지고 제도화되는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 혁명은 정보기술 혁명처럼'. 이게 내가 하려는 개혁이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일 게다. 일단 제대로 된 공치(共治∙governance) 구조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투명하게 보장되는 구조다. 이와 함께 교사들이 행정 능력이 아니라 수업 능력으로 평가받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내면, 인사 비리 역시 해소된다.
"친환경 무상 급식…학교는 보편적 복지의 최후 보루다"
- 친환경 무상 급식을 주장하고 있다. 무상 급식은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 사례다. 보편적 복지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약자를 골라내는 선별적 복지에 대비되는 개념이 보편적 복지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사이의 논쟁은 복잡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선별적 복지가 적절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학교에 대해서는 입장이 분명하다. 학교는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보편적 복지가 적용돼야 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마지막까지 보편적 복지가 유지돼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선별적 복지를 적용하자는 주장, 예컨대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상 급식을 하자는 주장은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른바 낙인 효과다.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친환경 무상 급식인가, 눈칫밥 급식인가'가 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학부모들, 연대로 뛰어넘자"
-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공정택 후보에 대한 '강남 몰표'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사교육 열풍의 진앙으로도 꼽히는 서울 강남 지역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교육의 문제를 특정 지역 주민에게 돌리는 짓은 잘못이다. 강남 지역 학부모들 역시 피해자 아닌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써가면서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에 잡아두는 그들 가운데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이가 얼마나 있나? 그들은 현재의 구조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 '죄수의 딜레마'를 넘어서 개인과 전체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길은 개인과 개인이 협력하는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강남 학부모들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지역 학부모들 역시 속으로는 강남 학부모를 부러워하고, 그들을 닮으려 애쓰지 않는가. 다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온전히 닮지 못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이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이번 선거가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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