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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쉬면 엄마가 싫어해'…'빨간날' 막는 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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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쉬면 엄마가 싫어해'…'빨간날' 막는 건 누구?

대체 휴일제 4월 국회서 논의…"삶의 질 높이기 위해 필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찬수(가명·33) 씨. 그가 2010년 달력을 보고 한숨이 나오는 건 주중 휴일 수가 겨우 8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 CF 광고에서 '빨간'날이 없어 '뿔'난 모델의 모습이 자신과 겹쳤다.

2010년도 2009년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동료와 보내야 하는 시간이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을 듯하다. 그러지 않으려면 연차, 월차를 써야 하는데, 누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흉흉한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마음 편히 사용하기 어렵다.

매일 밤 야근을 하고 밤 10시나 돼야 집에 돌아 올수 있는 게 그의 현실이다. 주 5일제가 도입됐지만 그림에 떡이다. 일손이 부족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주말 일당 6만 원이 지급되지만 차라리 그 돈을 받지 않고 가족과 여행을 가는 게 소원이다.

이제 5월 5일 어린이날(수), 5월 21일(석가탄신일)이 지나면, 추석 연휴만이 유일한 평일 공휴일이다. 이렇게 된 데는 최근 법정 공휴일이었던 식목일, 제헌절, 한글날 등이 차례로 쉬지 못하게 된 탓도 크다. 그는 달력을 보고 다시 한숨을 내쉰다.


▲ 2005년 7월 1일부터 주40시간 노동제 적용 범위가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 기관·학교'로 확대됐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 노동자들은 토요일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노동 시간 연평균 2316시간, '세계 최장 근로시간 국가'

휴식은 삶의 활력소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가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단순한 공휴일 수로만 따진다면 한국은 국제적인 수준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사업장을 염두에 두면, 토요일, 일요일, 국경일, 신정 설날, 구정 설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현충일, 추석, 성탄절 등 연간 120일 정도를 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쉴 수 없는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과 겹치는 공휴일을 빼면 애초 노동자가 쉬어야 할 휴일의 절반이 사라진다. 실제로 2010년 제대로 쉴 수 있는 전체 공휴일은 62일이다.

올해 석가탄신일 등 법이 정한 공휴일은 14일이다. 하지만 이 중 6일이 일요일과 토요일에 겹친다. 실제 올해 설날 연휴 중 이틀이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일요일, 크리스마스는 토요일과 겹친다. 직장인이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 영국은 공휴일을 날짜가 아닌 요일로 지정해 토, 일요일과 겹치는 것을 막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9월 첫 번째 월요일을 '노동자의 날'로,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기념일' 등으로 정해 안정적인 공휴일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 대만, 홍콩, 러시아 등은 아예 대체 휴일제를 도입해 법정 휴일을 보장한다. 특히 일본은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칠 경우 다음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물론 대체 휴일인 월요일도 공휴일이면 화요일을 쉬게 한다. 샌드위치 휴일일 경우 사이에 끼워진 평일도 공휴일로 지정해 연휴를 만든다.

당연히 이런 장치가 없는 한국의 노동 시간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조사한 결과(2007년 기준), 연평균 2316시간으로 '세계 최장 시간'이다. 2위 헝가리와도 400시간 가까이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 시간 1768시간보다 500여 시간이나 더 많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일수는 일본보다 37일, 미국보다 42일 많다. 프랑스와는 무려 84일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생산성은 선진국의 65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나타나는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OECD 주요국 고용률 및 연평균 근로시간(2007년 기준) ⓒ창조한국당

경총, 대체휴일제 놓고 "지금은 곤란하다"

이런 와중에 4월 임시국회에서 대체 휴일제 도입이 논의될 예정이라 주목을 끌고 있다. 대체 휴일제는 법정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는 경우 다른 평일을 휴일로 지정해 주는 제도다. 한 마디로 공휴일 정률제가 적용되는 것.

대체휴일제는 지난 2008년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 등 7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 7건을 국회에 제출, 심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 24일 관련 법안을 두고 공청회도 개최됐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당장 연 평균 2.2일의 공휴일이 늘어날 전망이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또 내수 시장이 진작돼 상당한 생산 유발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체휴일제 도입을 두고 반발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기업인의 모임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반발이 거세다.

경총은 "세계 경제 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 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법률은 기업투자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일자리 창출마저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대책 없이 그냥 휴일 수만 늘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대체 휴일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의 직접 손실 합계는 11조953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대체 휴일제가 도입되면 휴일근로수당 3조4107억 원, 퇴직금 추가 부담 1조8169억 원, 2.2일 생산 차질액 6조7254억 원이 직접 손실로 추산된다는 것.

▲OECD 주요국 노동 생산성 : 취업자 1인당 부가 가치(2008년 기준). ⓒ창조한국당

"대체 휴일제는 사회적 가치로 바라보아야 한다"

정반대 연구 결과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연구를 보면, 대체휴일제 시행 시 경제적 편익 등을 예측한 결과, 생산 유발 효과가 4조9178억 원에 달하고 고용 유발효과도 8만5282명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0년 법정공휴일 14일 중 일요일과 겹치는 현충일, 광복절 등 4일에 대체 휴일제를 적용하면 이 중 1.5일이 관광 활동에 사용된다고 분석했다. 늘어난 관광 활동으로 2조8239억 원을 추가 지출하게 되고 그 결과 생산과 신규 고용 등이 유발될 수 있다.

직장인도 대체 휴일제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체 휴일제 도입 필요성을 76.7퍼센트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한국 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너무 길다"며 "한국의 노동자는 쉬는 데 익숙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강충호 대변인은 경총 주장을 놓고도 "눈앞의 이익만 따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물론 대체 휴일제가 도입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나서 "하지만 이 문제는 사회적 가치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충호 대변인은 "대체 휴일제 도입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 관광 수입 효과 등이 생겨난다"며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충분한 휴식은 기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충호 대변인은 "그럼에도 경총에서는 '가장이 쉬는 걸 부인은 싫어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면서 대체 휴일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며 "이런 인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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