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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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싸움, 져도 지는 게 아니다"
[고잔동에서 온 편지<18>] 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 인터뷰
그때, 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는 운전 중이었다. 보수 성향 원로 한분과 함께 차를 탔다. 다들 그랬던 것처럼,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전원 구조' 뉴스를 들었다. 잠시 마음을 놓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청나게 죽었겠구나.' "박근혜한테 전화해서 진도에 내려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동승한 원로에게 말했다. "에이, 박근혜가 내 말을 들어야
성현석 기자(=안산)
"아들이 조립한 컴퓨터도 그날, 작동을 멈췄다"
[고잔동에서 온 편지⑨] 단원고 2학년8반 김재영 학생 이야기
"우리는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하고 보았다. 순진하고 천박한 구경꾼으로 TV 앞에 앉아 있었다." 단원고 2학년 8반 재영이 엄마, 아빠가 고잔동 거리에 걸어둔 노란 현수막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1년 전 그날, 재영이 엄마는 일터에서 친척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인터넷을 봐."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이야기했지요
"월요일 점심 카레라이스 기다리던 소녀는 왜…"
[고잔동에서 온 편지 ②] 단원고 2학년 10반 이단비 학생 이야기
이제는 종영된 SBS 심장이 뛴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단비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입니다. 단비 엄마 전영옥 씨는 "연예인들이 소방관 복장 하고 나오는 프로"라고 기억합니다. 지난해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단비는 배 안에서도 친구들과 이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말했습니다. 단비의 꿈은 응급구조사였습니다.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세월호 1주기, 아빠는 잇몸이 주저앉았다"
[고잔동에서 온 편지 ① ] 누가 세월호를 잊으라 하는가
고잔동, '곶(串)의 안쪽에 있는 마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일대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삼면이 개펄로 둘러싸여 있었다더군요. 동네 이름을 듣고, 몇몇 친구들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었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1년 세월,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잊었던 겁니다. 미안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취재 잘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