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부자가 '1조 원 상당의 글로비스 지분 사회환원 계획'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현대·기아차 측은 19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현대·기아차, 1조원 사회환원 계획에 되레 역풍**
먼저 최근 취임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의 비판이 날카롭다. 권 위원장은 19일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돈을 내서 여론을 무마하는 것은 전근대적 해결방법이고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도 이날 논평을 통해 "법치주의를 돈으로 흥정하려는 것으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현대·기아차 그룹의 1조 원 사회환원 계획 발표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게다가 '시가 1조 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이라는 현대·기아차의 표현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도 많다. 주식이란 늘 변동하기 마련인데, '시가 1조 원 상당'이란 식으로 가격을 매기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기아차의 비자금 형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이번 현대·기아차 측의 발표에 대해 '정몽구 회장 부자 소유 글로비스 지분 환원'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반응들을 볼 때 현대·기아차가 '글로비스 지분 사회환원 계획'을 통해 악화된 여론을 뒤집어보려고 한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만 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란 뭔가?**
한편 현대·기아차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내놓았다는 '사회환원 계획'은 영국, 스웨덴, 미국 등 선진국들에서 논의되고 실천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과 견줘보면 그 허구성이 더 잘 드러난다.
영국, 미국, 스웨덴 등 국가에서는 이미 1900년대 중반부터 CSR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일기 시작해 현재 이들 국가의 주요 기업들은 CSR과 관련한 구체적 사업방침을 내놓고 있다.
나아가 일부 국가에서는 법·제도적으로 CSR 활동을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영국은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CSR 장관을 임명해 기업들이 '기본적인 법적 의무 이상의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정책의 이행을 국가가 감독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또한 개별 국가나 기업을 넘어 CSR의 내용에 대해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CSR은 처음에는 기업의 자선행위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나 수많은 논쟁과 기업들의 실천적 활동이 누적되면서 국제적 규범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
한 예로 1999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안된 '국제연합 국제협정(UN Grobal Compact)'을 살펴보면, CSR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권보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사업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유린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업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충분히 인정해야 하고 성별, 인종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없는 일터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나아가 이를 위해 기업들은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 성장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이밖에도 신중한 경영 의사결정을 통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해야 하고, 환경보호를 진작시키는 경영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친환경적 기술개발과 확산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할 의무도 기업에게 부여된다.
요컨대 국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CSR 사업은 인권을 존중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업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큰 틀을 설명할 수 있겠다.
CSR에 대한 이같은 국제적 인식에 비춰보면, 현대·기아차가 내놓은 '사회환원 계획'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이기가 매우 궁색하다.
***"기업들, 자기 사업장부터 되돌아봐야"**
한편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거나 실천되고 있는 CSR을 국내에 바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 CSR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커녕 학문적 차원에서의 검토도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CSR을 언급하는 것은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선진국 수준의 CSR 사업을 계획하기보다는 자기 사업장부터 돌아볼 것을 주문한다. 즉 자기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부당한 일에 대해 모른 체하거나 조장하면서 거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벌들이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고 중소 하청업체에 단가 인하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한다면서 거액을 내놓는 행태는 이중적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현대·기아차의 1조 원 사회환원 계획이 발표된 날 현대하이스코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공장 안에 설치된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것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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