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양극화, 늘어나는 복지 수요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경제사회적 약자가 더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되며, 중산층도 하강 분해되는 데 비해, 부자들은 오히려 더 부유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적용된 이후에 벌어진 한국의 상황이 그랬다. 한편,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상황보다 더욱 나쁜 경과를 밟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는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던 데 비해, 이번 경제위기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불안정 고용상태에 처한 노동시장의 약자들이 주로 일자리를 잃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2009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정부 집계로 34.9%, 노동계 집계로 51.9%로 OECD 최고 수준)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노동시장 내부의 임금격차와 배제도 심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 귀결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배제는 '고용 없는 성장',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보다 근원적으로는 '과잉금융과 주주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적 특성으로 인한 필연적 현상이다. 이렇게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비정규 노동자와 영세업체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시장소득이 상대적으로 축소됨에 따라 '워킹푸어(근로빈곤)'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사회임금으로 이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내수경제도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가 근로소득자들 간 시장소득의 격차를 넓혀 놓았으므로, 사회임금으로 이 격차를 일정하게 메워줄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복지재정과 더 적극적인 분배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노동자들. 불투명한 미래에 떨고 있었다. 이 회사는 노동자 1000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갈수록 불안해지는데, 사회안전망은 오히려 더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레시안(여정민) |
부자감세, 복지 수요 자연증가분도 못 채워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감세정책, 그것도 부자감세를 단행함으로써 이러한 분배정책의 가능성, 즉 국가의 적극적 재정 능력을 스스로 축소시켜 버렸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닥치자, 이를 수습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나라 빚을 내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2008년 308조 3000억 원이던 국가채무 규모가 2010년에는 407조 원으로 크게 증가하였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30.1%에서 36.1%로 급증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채무가 급증하고 있는 재정 상황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심화되는 사회양극화의 결과로 발생하는 대규모의 복지수요를 충당할 방법이 없게 된다. 부자감세로 인해 심각하게 제약된 현재의 정부 재정능력 하에서는 기존의 '저출산, 고령화'의 확대라는 인구학적 조건의 변화로 인한 복지수요의 자연증가분을 따라가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의 도입은커녕, 기존의 잔여적 복지마저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종부세 등의 감세로 인해 올해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되고 있고, 이에 따른 복지의 축소가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등 필수적인 복지비용마저 다 마련하지 못한 채 올해 예산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에 의한 복지수요의 자연증가, 기존의 사회보험 등 복지제도의 성숙에 따른 복지수요의 자연증가,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요구되는 복지수요의 증가 등 대규모로 늘어나는 복지재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현재의 정책기조 하에서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능력으로는 이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박한 '보편적 복지', MB 정부의 역주행
결국,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잔여주의 복지정책'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정책 패키지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미국이 아닌, 유럽 복지국가들의 조정경제와 보편주의 복지의 경험을 참고하여 우리 실정에 맞도록 적용하려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이 길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시장국가 정책 노선을 급진적으로 강행하려 하는 바, 집권 3년 차 이후로도 국민들에게 희망보다는 고통과 불안을 안겨다 줄 가능성이 더 크다. 보편적 복지는커녕, 저출산·고령화와 더불어 구조적인 사회양극화로 인해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할 예산이 부족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을 포함한 기존의 잔여적 복지마저 축소되고, 이를 시장과 자선에 떠맡기려는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더 크다 하겠다.
이 글에서 필자는 복지의 양대 축을 이루는 공적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를 각각 살펴봄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복지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공적 소득보장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 모든 사회구성원을 포괄한다. 그래서 보편주의다. 한국은 주요 소득보장을 보편적 사회보험 방식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모든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상병급여 제도가 없으므로, 여기서는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실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불안정 노동의 시대, '전국민고용보험'은 언제쯤?
첫째, 고용보험이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소득불안을 해소해주는 보편주의 제도다. 근로능력이 있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취업상태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용보험의 급여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은 국가의 재정 지원이 거의 없는, 즉 '내 돈 내고 내 돈 받아가는' 방식이어서, 보편주의 복지제도로서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67%, 비정규직은 43%에 불과하고, 미취업자나 까다로운 수급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혜택을 볼 수 없고, 급여의 수준도 매우 낮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위기까지 겹쳤으므로 고용보험의 보장범위와 보장수준의 확대가 민생에서 매우 절실한 과제이지만,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낮은 소득대체율을 가진 '반의 반'쪽짜리 고용보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보편주의 고용보험인 실질적인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할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다.
왜나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부담 증가와 함께 정부의 재정 투입이 크게 요구되는데, 이는 친기업과 감세정책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기존 논리와 완전하게 배치되기 때문이다.
노인빈곤율 45%, 기초연금 공약 잊어버린 정부
둘째, 국민연금이다. 2009년 현재 노인인구가 벌써 10.7%이고 머지않아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2008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국민연금 수급자의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7.6%와 다른 공적연금 수급율 3%를 모두 합해도 33%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45%나 되어 OECD 평균(13.3%)의 3배 이상에 이른다. 기초노령연금이 2008년 1월부터 시행되었으며, 2009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70%에게 소득수준에 따라 최대 8만 8000원까지, 2010년 4월부터는 기초노령연금 수령액이 최대 9만 1000원까지로 상향 지급된다. 그러나 실수령 금액이 너무 적어서 노후소득보장제도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금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
집권 3년 차에서도 이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의 절반이 국민연금 납부예외자이고, 징수율은 75%에 불과하므로 사각지대가 광범위하다. 그럼에도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고 현행 연금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노후 불안을 더욱 구조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리병원, 좋은 제도 버리고 나쁜 제도 들여온다?
다음으로 이명박 정부의 사회서비스의 현황을 살펴보자. 첫째, 의료서비스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가 달성하여 2000년 출범한 통합의료보험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보편주의 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전체 병원의 93%가 민간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병원의 70%가 민간병원인 미국의 '식코'형 의료제도보다 탁월하게 성적이 우수한 의료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보다 민간병원의 비중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료제도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나은 이유는 전 국민을 포괄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존재 때문이다. 한국에는 있고 미국에는 없는 제도다.
반면, 영리법인 병원은 한국에는 없는데 미국에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의료서비스의 민영화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고, 의원급 의료기관도 누구나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지출을 줄여 재정의 안정화를 기하면서 대신에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공적 영역인 의료를 의료공급과 재정의 양면에서 완전하게 금융자본과 시장의 주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의료선진화다. 국민의료보장에 들어가는 정부의 재정지원 부담을 줄이고, 금융자본과 자본시장의 역할을 키우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다.
4월 국회에서, 제주도에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조항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이 처리되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것이 허용되면, 이후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도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될 것인데, 이것이 정부와 보험자본의 기획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 바닥 기는 보육교사 처우
둘째, 보육서비스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에서 무상보육을 공약하였으나 지키지 않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2009년 현재 1.15명으로 프랑스 2.0명이나 스웨덴의 1.88명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세계 최저다.
해법은 일과 양육이 양립할 수 있는 보편주의 보육 및 육아지원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정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획기적으로 더 투입해야 하겠으나, 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올해 보육예산이 전년에 비해 22%나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의 대부분은 0~4세 아동 차등보육료 지원에 사용된다. 아직까지 선별주의에 머무는 것이다.
국공립보육시설의 설치와 증개축 등을 위한 보육시설 기능보강 예산은 전년대비 55%나 삭감된 94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공공성 수준은 국공립보육시설의 수 기준으로 5.5%, 아동 수 기준으로는 10.9%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없다. 그런데도 보육 공급체계의 공공성 확충 예산을 반토막낸 것이다. 역시 시장주의다.
게다가 시장주의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여 불필요한 경쟁만 격화되면서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가 악화되고, 이는 보육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이는 곧바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질 저하로 이어져, 우리 경제사회 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보육과 교육은 재정분야에서 사실상 무상에 근접한 개념으로 가야 한다.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고등학교까지는 완전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대학 등록금은 완전 후불제를 실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 재원조달을 위한 사회정치적 합의와 과감한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노인요양서비스, 저질 불안정 일자리만 쏟아냈다
셋째, 노인요양서비스다. 우리나라는 2008년 7월부터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함으로써 장기요양 비용의 사회화(탈상품화)와 보호제공의 공식화(탈가족화) 양 측면에서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수급자격을 중증으로 제한하고 급여수준을 최소한으로 설정하여 가족 돌봄의 부담을 사회화, 공식화하는 데 부분적으로만 기여하고 있다. 2009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총재정은 겨우 2조 1000억 원에 불과하며, 이는 GDP의 0.2%에 해당한다. 스웨덴 2.74%, 노르웨이 1.85%, 네덜란드 1.31%, 캐나다 0.99%, 독일 0.95%, 영국 0.89%, 일본 0.76% 등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며, 미국의 0.74%에도 크게 뒤지는 수치다. 우리의 과제는 장기요양 수급자의 비율을 조속히 10%대로 끌어 올림으로써 외형상의 보편주의를 완성하고, 급여 수준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내실화하여 질적인 보편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간 2조 원대에 불과한 장기요양 재정규모를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이는 노인요양 사회서비스 욕구의 사회적 충족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대대적 확충으로 귀결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책이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사회서비스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월 40~80만 원짜리의 저질 불안정 일자리로 만들어버렸다. 장기요양서비스 공급체계를 시장에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제도는 '재정규모가 작은' 보편주의 사회보험 방식을 취하고, 서비스의 제공은 민간에 맡겨버린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 제도를 제대로 된 보편주의로 개선하는 일은 다른 사회서비스 제도에 비해 공적으로 정부가 직접 부담해야 할 재정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조적 집착만 버리면 말이다. 이명박 정부 3년 차에 이 제도의 공적 확충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부유층만 배 불린 감세정책
당면한 경제위기의 극복과 국가복지의 확충을 동시에 이루는 올바른 길은 국가의 강력한 재분배정책이다. 재분배정책이란 조세를 거둘 때 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욱 많이 걷어서 이를 복지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이전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가 불평등 심화로 인해 파멸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이다. 이러한 재분배기능의 정도는 나라마다 다른데, 일반적으로 국가의 재정규모가 클수록, 복지프로그램 규모가 클수록 재분배기능이 강하다.
프랑스의 재정 규모는 2009년에 GDP의 55.6%에 이르는데, 이는 EU의 27개 국가 중에서 스웨덴(56.6%)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EU평균은 50.1%). 한국은 약 31%다. 감세를 하면 정부재정의 규모는 더 작아지므로 복지국가의 길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야당과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세를 단행하였다. 애초 감세 규모는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약 98조 원에 달하였는데, 사회적 비판과 늘어나는 국채 때문에 일부 조정되어 최종 감세규모는 약 72조 원이다. 소득 재분배의 측면에서, 현 정부 들어 시행된 대규모 감세정책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조승수 의원실(2009)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평균소득의 150% 이상 계층에서 감세효과의 75% 이상의 혜택을 받으며, 상위 2%와 하위 98%를 기준으로 할 때 경우 50% 대 50%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2008년의 감세를 통해 고소득계층이 대부분의 혜택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서민·중산층을 위한 감세를 앞세워 정책을 추진했지만, 그 결과는 고소득층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것이다
무모한 토목사업, 늘어나는 재정 적자
감세에 따라 정부재정이 크게 줄어들고, 이마저도 4대강 사업 등의 각종 토목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복지의 확충에 반하는 요인들이다. 사람에게 공적으로 투자돼야 할 소중한 정부 재원을 토목공사에 투입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정책이 복지의 제도적 확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부자감세가 아니라, 반대로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누진적 직접세(가칭, 사회복지세)의 설치를 통한 국가재정의 대대적 확대가 요구되고, 이렇게 늘어난 정부예산의 지출에서 복지예산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2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였다.
감세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것의 하나는 재정적자의 증가인데, 2000년 이후 지난 9년간 흑자였던 통합재정수지가 2009년 대규모의 적자로 돌아섰다. 그래서 국가채무가 2010년 407조 원에서 2013년에는 493조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재정적자는 대규모 복지개발 투자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주로 부자감세와 토목공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현 정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러한 재정적자는 장차 복지투자를 제약하는 재정적 요인이 된다는 점인데,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에서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의 복지투자 확대에도 큰 걸림돌인 것이다.
'친서민' 구호와 함께 줄어든 복지 지출
다음으로, 이명박 정부의 복지재정 비중을 알아보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다음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 정부가 친서민중도실용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부각시킨 이후 작성한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복지지출(총지출 대비)은 2010년 81.0조 원(27.8%), 2011년 85.3조 원(27.8%)이다. 이는 정권 출범 당해연도의 계획인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비해서도 하향 조정된 것일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말기의 계획인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비해서도 절대금액이나 총지출 모두에서 더 낮은 것이다.
게다가 복지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2007~2011년 계획'은 9.7%, '2008~2012년 계획'은 8.7% 이었던 반면, '2009~2013년 계획'은 6.8%로 오히려 더 낮아졌다. 2011년부터는 작은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밝혔던 '2008~2012년 계획'보다 친서민의 의지를 밝힌 '2009~2013년 계획'의 복지지출이 절대금액이나 총지출 대비 모두에서 더 낮게 책정된 것이다.
(표 1)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의 총지출과 보건복지지출 비용
이명박 정부의 감세는 중앙정부의 복지 확대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지방정부의 복지도 직격탄을 날렸다. 내국세 감세액의 19.24%에 해당하는 지방교부세 세수가 감소되고, 내국세 감세액의 20%에 해당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감소된다.
또, 종합부동산세 관련 세법의 개정에 따라 2010년 연간 약 2조 5억 원 규모의 부동산교부금이 감소되며,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에 따라 이것의 10%인 주민세가 그만큼 감소된다. 이러한 감세로 지방재정의 감소액은 50조 원에 이른다. 이런 조건에서 지역복지를 관할하는 지방정부는 지역의 사정에 맞게 세심하게 복지를 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잔여적 복지마저 축소할 개연성이 높다. 이에 대한 즉각적 대응은 감세의 철회와 지방재원의 제도적 확충이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복지욕구의 증대 등을 고려해보면, 복지재정의 필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기존의 잔여주의 복지를 넘어 무상학교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최소한의 부분에서라도 사실상의 보편주의 복지를 도입하고, 소득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복지예산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복지재정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발전이 어렵다.
잔여주의 복지마저 축소, '최악의 시장국가'
결국, 이명박 정부는 감세를 취소하고, 조세정의의 구현과 최소한의 증세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보편주의 복지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잔여주의 복지조차도 이전보다 축소되는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는 '최악의 시장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이미 2009년 발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보건복지 분야 기능별 투자계획을 보면, 잔여주의 복지의 핵심적 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이 크게 축소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의 경우, '2008~2012년 계획'에서 연평균 증가율이 10.2%였었는데, '2009~2013년 계획'에서는 2.6%의 연평균 증가율로 노동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증가율이었다. 이는 평균적인 물가상승률보다도 더 낮은 수치이다.
그 결과, 기초생활보장 지출액은 2013년 7조 9000억 원에 그치며, 이는 '2008~2012년 계획'의 2012년 기초생활보장 지출액 목표치인 10조 1000억 원보다 무려 2조 원 이상 낮은 것이다(표 2). 이는 정부채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감세를 취소하기 보다는 절대빈곤층의 구빈비용을 압착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표 2)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의 보건복지 분야 기능별 투자계획
(단위: 조 원, %)
무엇보다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회정책의 영역인 의료, 보육, 교육, 노인요양 등에서 자본과 시장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본격적으로 이들 공적 분야를 금융자본의 투자처로 삼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시장국가 기획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재앙이자 민생의 엄청난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떤 선진국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사회권적 시민권을 공공적 방식으로 완전하게 보장하고 있는 유럽 선진복지국가들에서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일부 도입한 시장 기전은 금융자본 주도의 영리화 또는 자본에 의한 복지의 상품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지금 제주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기의 징조를 보고 있다. 제주의 영리법인 병원 허용을 막아내지 못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만의 재앙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 중산층 등의 모든 국민들에게 영화 '식코'의 고통과 불안이 제도화되는 것이다. 한번 잘못된 길로 접어든 사회제도가 어떻게 자본과 시장에 포획되어 사회공공성을 파괴하는지, 이를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반면교사의 교훈을 충분히 얻고 있다.
기존에 달성된, 부족하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복지제도 중에서 가장 보편주의 수준이 높은 국민건강보험을 잘 지켜내고, 이를 더 유능한 보편주의제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신자유주의 극복 전략이자 복지국가 전략이다.
(이 글은 필자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싱크탱크들과 한겨레신문사가 지난 2월 16일 공동 개최한 이명박 정부 2년 평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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