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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영화제2010]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지금은 '여행'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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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영화제2010]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지금은 '여행'중이니까

[Film Festival] 배창호 감독 <여행> 프리뷰

2004년작 <길>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배창호 감독의 신작은 놀랍게도 디지털영화다. 에피소드 세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여유롭고도 웃음 넘치는 필름 화면에 담아냈던 그의 최근작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이기도 하다.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이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첫 프리미어 상영을 갖는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월례 정기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을 겸해서다. 영화제 기간 동안 단 한 번, 1월 23일 저녁에 상영되며 영화 상영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돼 있다. 임권택 감독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영화를 찍으며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배창호 감독의 신작, 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으랴. - 편집자 주




▲ <여행> 중 두 번째 에피소드 <방학>의 한 장면.

제주는 언제나 육지에 사는 이들의 철저한 편견과 대상화의 공간이었다. 바다 너머에 있는, 말도 풍습도 다른 신비로운 곳, 제주. 그곳을 배경으로 한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에서 그려지는 제주 역시 그렇게 '여행지'로서의 공간이다. 하지만 <여행>이 단순히 육지인들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으로서의 피상적인 제주를 그리거나, 그저 표피적인 낭만적 도피로서의 여행을 그리는 건 아니다.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는 <여행>의 세 에피소드는 오히려 사람의 마음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은 마음의 풍경 뒤를 받쳐줄 뿐이다.

흔히 여행을 '너른 세상과의 대면'이라 한다. 뒤집어보면 그 말은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타자의 위치에 놓는 경험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친근하고 낯익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통해 다른 맥락에 속한 자신의 위치를 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대상화하여 또 다른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는 것.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이란, 결국 타자로서의 자신을 보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배창호 감독의 <여행>이 보여주는 것 역시 바로 그런 것들이다. 세 에피소드 모두 제주에서의 여행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마음의 풍경을 그린다. 심지어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두 번째 에피소드마저 그렇다. 다만 다른 두 개의 에피소드가 밖에서 제주로 들어온 이들의 여행을 다룬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주 안에서 또 다른 제주를 여행하는 일종의 '내면의 여행'을 그린다. 안과 밖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 <여행> 중 세 번째 에피소드인 <외출>의 한 장면. <러브스토리>, <정>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배창호 감독의 부인인 김유미 씨가 출연했다.

당연히 에피소드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서툴게 머뭇거리는 이십대 초반 청춘들의 이야기는 풋풋하고 싱그럽다. 십여 년 만에 엄마를 찾게 된 소녀의 이야기는 좀 더 짠하지만 따뜻하다. 얼결에 가출했다가 작정하고 제주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주부의 작은 일탈(!) 이야기는 귀엽고도 유쾌하며 여유롭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삶에 대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와 따뜻한 시선이다. 에피소드들이 외부의 이 시선과 서로 맞물리면서, <여행>은 삶에 대한 찬가이자 제주 찬가가 된다. 제주가 너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어서? 글쎄, 오히려 어깨 위의 무거운 삶의 고난을 내려놓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그 고난을 기꺼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창호 감독이 90년대 말부터 만들어온 '작은' 영화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번뜩이고 깊이 있는 통찰 사이로 유머와 해학을 드러내면서 일종의 '구도'적인 특징들을 드러내왔다. <여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유쾌한 작은 섬 같은 작품이다. 인생과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그 자체를 들여다보며 잠시 쉬어가는 듯, 말하자면 이 영화 자체가 '여행'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을 하게 될 듯하다. <여행>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장면들을 불현듯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짓게 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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