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박광정 씨가 연출을 맡았던 96년 초연 및 재공연, 그리고 2003년 공연 당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던 <비언소>는 '변소'를 배경으로 세태를 풍자한 꼴라주 연극. 이번에는 극을 쓴 이상우 차이무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았으며, 문성근, 민복기, 강신일, 이대연, 이성민, 최덕문, 박원상, 김승욱 등 차이무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중 상당수는 96년 초연 당시에도 출연했던 배우들이다.
▲ 연극 <비언소> (사진제공 : 극단 차이무) |
<비언소>는 2월 5일 개관하는 극단 차이무의 전용극장인 '아트원 차이무 극장'의 개관기념작이기도 하다. 영화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극단 차이무 출신의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이 TV 광고에 출연한 뒤 받은 출연료 전액을 쾌척해 아트원 차이무 극장을 개관하게 된 것. (송강호 역시 96년 <비언소>에 출연했었다.) 오랜 숙원이었던 극단 전용 극장을 갖게 됨에따라, 차이무는 일년내내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하고많은 차이무의 작품들 중 굳이 <비언소>가 개관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상우 연출가 스스로는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다시 올리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통렬한 시대 비판극이자 세태풍자극이었던 이 극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면, 그건 "옛날엔 이런 일도 있었지" 정도의 회고조 코미디가 되어야 했다. 2003년 박광정 연출가가 류승범을 불러들여 다시 <비언소>를 무대에 올린 것 역시 그런 의미였다. 말하자면 한바탕의 '쇼'였던 것이다.
▲ 연습 중 이상우 연출가(왼쪽)가 배우 박지아 씨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프레시안 |
그러나 2010년 다시 무대에 오르는 <비언소>는 96년 초연 당시의 '현실비판과 풍자'란 성격을 다시 재현하게 됐다. 시대에 맞게 일부 장면들이 새로 쓰여지거나 수정됐다. 과연 이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1월 15일 기자가 참관한 연습공연 당시 대사에서 가장 많이 반복됐던 단어도 바로 "빨갱이"란 단어였다. 96년 공연에도 있었던 장면인 '빨갱이 배후론' 풍자 장면이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확장된 것. 이는 현재 사회 전반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소위 '좌파 척결론'을 풍자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간 풍자와 사회비판에 일가견이 있는 작품을 써온 이상우 예술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보다 따뜻하고 밝은 작품들이 좋아 그런 작품들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능력 중에서도 날카로운 현실 풍자라는 측면을 시대가 다시금 요구하게 된 셈이 됐다.
▲ 공연을 앞두고 한참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비언소> 배우들ⓒ프레시안 |
극단 차이무는 최근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상우 예술감독의 대답은 단호하다. "연극계는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 매 공연마다 극장을 임대하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차이무는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매우 뜸하게 공연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서울문화재단에서 받던 지원을 2년 전부터 받지 못하게 된 현실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까? 지원을 받던 시절 실적과 평가 면에서 1위를 도맡아 하던 차이무에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지원금이 끊긴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작금의 문화예술계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비슷한 일들을 보며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차이무는 올해 극장을 개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할 계획이다. 당장 극장 개관작인 <비언소>는 2월 5일 개막해 5월 2일까지 계속 무대에 올릴 예정. 이후 차이무의 대표적인 다른 작품을 계속 무대에 올리는 것은 물론, 일 년에 한 편 가량씩 신작들도 선보이며 일년내내 공연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비록 아직은 기존 극장의 한 관을 빌려쓰는 장기임대의 형태이긴 하지만, 차이무의 이같은 시도가 축적되고 성공한다면 극단 전용 극장을 직접 짓고 일년내내 차이무의 극을 보다 안정적으로 선보이고 싶다는 것이 차이무의 꿈이기도 하다.
베테랑 배우들과 젊은 배우들이 한데 뭉쳐 통쾌하고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게 될 연극 <비언소>는 2월 5일부터 대학로 아트원 차이무 극장에서 평일 1회, 주말 및 공휴일 2회씩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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