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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관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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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관전법

[손호철 칼럼] '정념'과 '이해'의 정치학

<정념과 이해(The Passions and Interests)>. 정치경제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알베르트 허쉬만의 명저 중의 하나이다. 이 책에서 허쉬만은 자본주의의 성립을 정념과 이해라는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념이란 아무런 조건이 필요 없는 우리의 꿈과 욕망 같은 것이라면 이해는 특정한 상황에 따른 관심과 이해득실을 의미하는 바, 자본주의의 성립은 이해관계가 지배적이 되면서 정념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해에 의한 정념의 좌절의 역사라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허쉬만의 이 책 제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예상대로 원래 세종시에 예정되어 있던 9부2처 2청의 행정기관 이전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대신 국내최대 기업인 삼성을 비롯해 한화, 웅진, 롯데 증 유수기업들이 세종시에 투자를 하는 등 기업과 대학 등이 세종시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는 새로운 세종시 건설안을 발표했다.

물론 행정도시와 기업도시의 경제적 혜택을 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엄청난 투자의 규모와 혜택 등을 고려 할 때 순수한 경제적 혜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세종시의 현지민들과 충청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지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허쉬만의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이해'라는 면에서 충청에게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 수 있다.

▲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의 조감도

그러나 주목할 것은 정부의 수정안 발표에 대해 충청의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여론조사기관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정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는 수정안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충청권의 경우 수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 17-40%에 불과한 반면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51-73%에 달해 수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이 아직도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충남도의회의장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충남도의회 의원, 대전시의회 의원, 충북도의회 의원 등도 다수 한나라당을 탈당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행정도시 주민보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공용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한 뒤 당초 목적과 다르게 이를 사용하면 원래 토지소유자가 환매를 요구할 수 있다는 공공용지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는 등 충청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순수한 경제적 혜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세종시의 현지민들과 충청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지 모르는데, 다시 말해 허쉬만의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이해라는 면에서 충청에게 유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일 수 있는데, 왜 이처럼 충청은 수정안에 반발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세종시 문제가 충청민들에게 단순한 '이해'의 문제를 넘어서 '정념'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 세종시 수정문제는 충청민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해득실의 과소의 문제를 넘어서 자존심의 문제, 정부의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허쉬만이 주목한 이해에 의한 정념의 좌절과 달리 이해와 정념이 충돌하는 경우,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경우, 정념과 감성이 승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이 충청의 자존심임에도 불구하고 물량공세를 통해 행정수도를 압도하는 경제적 혜택을 주면 세종시 문제를 쉽게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계산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세종시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이다. 즉 박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부터 원안 고수가 아니라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해(수정안)냐 정념(원안)이냐가 아니라 정념(원안)과 이해(플러스 알파)를 모두 잡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세종시와 충청민심에 관한 한 박의원은 질레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텃밭인 영남에 이어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을 MB 덕분에 확실하게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2012년 대선이 벌써부터 암울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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