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이곳저곳을 골목골목까지 오랜 시간동안 헤매며 다녔기 때문에
시내의 지리 및 상황을 완전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였었는데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기린봉 정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시내 전체의 모습을 잘 알고 있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였다.
부분을 아무리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의 구조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알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A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A라는 사건의 전후 상황이나 결과나 원인 등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A를 잘 알고 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B의 기능과 효능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작동 원리나 부작용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면
그 앎은 반쪽짜리 앎에 불과한 것 아닌가?
숲을 볼 때에는 나무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나무를 볼 때에는 숲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숲만 아는 것도, 나무만 아는 것도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개인기가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박수 받을 수는 없다.
경기장 전체와 경기 흐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더해져야
훌륭한 축구선수라고 박수 받을 수 있다.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운동 경기에서, 아니 세상 어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흐름의 이해 안에서만 부분이 지니는 의미도 가치가 있고
부분 부분의 이해가 가능했을 때 전체의 이해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멈춘 다음 여유로운 마음으로 부분을 보고
멈춘 다음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체를 볼 수 있어야만
그리하여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보고 전체를 통해 부분을 볼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보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숲과 나무를 함께 볼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분은 부분 자체로의 의미와 가치도 있긴 하지만
전체 흐름 속에서의 의미와 가치에 비하면 적어도 너무 적다.
나무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파악하되 숲까지 보려고 노력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