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31일 예결위 회의장을 변경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으나, 이는 한나라당이 만든 '날치기 방지 조항'을 스스로 무력화시킨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표결할 때에는 의장이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한다'(110조), '의결이 끝났을 때에는 의장은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한다'(113조)고 규정돼 있다.
지난 2002년 3월 개정된 이 조항은 '의장석에서'라는 표현이 삽입된 것이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를 견제하기 위해 법 개정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이 31일 예산안 처리를 위해 예결위 회의장을 변경한 절차가 적법했느냐는 논란과 함께 스스로 법 개정 취지를 유명무실화시켰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물론 개정된 국회법에도 회의장 변경 절차를 명시적으로 설명한 조항은 없으나, 다수당의 날치기를 방지하자는 법 개정 취지상 최소한 위원회 의결에 의하거나 교섭단체 간사간 합의에 의해 지정된 회의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지난해 발간된 국회법 해설서에는 '의장석에서' 표결 선포 규정은 상임위원회에도 준용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법 개정 이후 회의장이 변경된 두 번의 선례도 이에 부합한다.
지난 2005년 신행정수도건설대책특위는 '간사간 협의 후' 충남도청 대회의장으로 회의장을 변경했다. 또한 지난해 2월 통외통위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이 민노당 의원들의 회의장 점거로 난항을 겪자 '교섭단체 간사위원과 합의해' 245호로 회의장을 변경해 상정한 바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민주당 등 야당은 이날 예결위의 예산안 처리를 불법과 원천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우제창 원내대변인은 "장소변경에 대한 자문을 구해본 결과 두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위원회에서 의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간사간 합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오늘은 단지 김광림 의원이 얘기하고 간 것이 전부"라며 "이것은 명백한 국회법 위반이자 한나라당이 만든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지정된 회의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회의를 하려고 하면 마땅히 예결위원 전원에게 변경된 회의장소를 통보해야 한다"며 "그런 통보도 없이 여당 의원만으로 예결위 회의장이 아닌 곳에서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힘을 보탰다.
그는 또한 "제대로 된 회의장소 변경 통보가 없었다면 예결위원, 특히 야당 예결위원으로서는 그 회의장에 참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효력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나라당 측은 "국회법 규정에 회의장 변경을 금지한 조항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회의장 변경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광림 의원이 회의장 변경을 구두 통보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이날 오전 7시 경 민주당이 점거 중이던 예결위 회의장을 찾아 구두로 "현 상황으로는 회의가 불가능한 만큼 245호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겠다"고 공지한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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