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
컵라면도 통조림도 먹지 않는다.
봉지 커피도 티백 보리차도
드링크도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
물티슈도 내프킨도 종이컵도
나무젓가락도 볼펜도 쓰지 않는다.
(…)
KTX 여승무원이 되고서야 나는
이 세상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9일 문화예술인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김명환 시인이 쓴 '계약직 -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란 제목의 시를 KTX 여승무원 김성희(25) 씨가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KTX의 '일용품' 신세로 전락해버린 KTX 여승무원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비정규직 문제, 나아가 사회 양극화 현상의 첫 번째 피해자로 각인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입법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자회견장에서 배포된 자료에는 문학계, 미술계, 연극계, 영화계 등의 문화예술인 명단이 담겨 있었다.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노동만화네트워크 등 문화예술단체 회원 1800명의 명단이었다.
이들은 "양극화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비정규직 법안의 혁신적 제정이 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했다"며 "하지만 이번 법안은 비정규직의 유입 통로를 축소시키려는 의지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차별금지 내용은 추상적"이라며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이어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진다고 해도 분배의 골이 깊으면 그 골이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며 "그때는 이미 경제위기와 계층 간 위화감도 커져 돌이킬 수 없는 반목과 갈등이라는 극단적 사회양극화 현상으로 우리 사회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비정규직 법안이 그대로 입법화될 경우 우리 사회에 드리울 수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우려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지금종 문화연대 대표는 문화예술인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발언하게 된 이유에 대해 "사회는 유기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면 결국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게 돼 문화예술 역시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이 지 대표의 설명이었다.
사회가 유기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스스로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보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예술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을 하는 한 예술인은 "옛부터 문화예술인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었다"며 "극소수의 부르주아 예술가를 빼놓고는 문화예술인들은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맺힌 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날 선언에 동참한 문화예술인들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일반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로 했다. 그 중 하나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작가들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노래한 시 38편을 시화로 만들어 전국 순회 시화전을 연다.
또한 민족미술인협회 소속 화가들과 노동만화네트워크 소속 만화작가들은 우리 사회 양극화 현상을 그림과 만화로 풍자한 작품을 앞으로 1년 동안 전국에서 순회전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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