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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 지사, 자네 해도 너무 하네"

[손호철 칼럼]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김 지사, 추위에 잘 지내지요.

몇 달 전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서점에 들렸다가 우연치 않게 마주쳐 안부를 물은 것이 마지막인 것 같네. 그러나 그 자리 역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계제는 아니었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눈 지가 꽤나 오래 됐네. 그저 지면을 통해 자네의 근황을 접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곤 했는데 최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과의 갈등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듣고 몇 번을 망설이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어렵게 펜을 들었네.

자네와 내가 70학번으로 같이 공릉의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에서 1년 위인 김상곤 선배를 만나 알고 지냈으니 이제 우리 셋의 인연이 어느덧 40년이 되어 가네. 참 세월이 빠르네. 특히 우리는 김 선배의 '꼬임'에 김 선배가 속해 있던 '후진국사회연구회'의 회원으로 들어가 같은 학회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해 같이 고민했고, 71년 박정희 정권이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발동한 위수령에 의해 함께 대학에서 제적을 당한 71동지회 동지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 같은 인연이 있는 만큼, 특히 자네가 지금은 한나라당의 밥을 먹고 있고 스스로 '자유주의'로 전향을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한 때 진보노선을 치열하게 추구했던 진보투사였던 만큼, 김 선배가 교육감이 됐을 때 자네가 김 교육감과 협력해 전국이 부러워할 모범적인 교육자치의 모델을 만들어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네. 그러나 나의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
▲ 김문수 경기도지사 ⓒ프레시안

이야기를 한 김에 우리 인연 이야기를 계속해 보고자 하네. 사실 71년 제적을 당한 뒤 나와 김 선배는 강제징집을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와 '비겁하게' 공부를 계속했지만 자네는 노동현장에 들어가 복학을 거부하고 노동자로 살며 치열한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리고 내가 졸업 후 기자를 하다 5.18학살에 대한 신군부의 보도지침에 저항해 제작거부 운동을 벌이다 언론사를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김 선배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자네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공안사건으로 구속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옥살이를 했어야 했네.

자네는 기억이 나는지 모르지만 88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서울대 시간강사 시절 자네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첫 강사료를 들고 서울대 근처의 자네 집으로 찾아갔었네. 특히 나를 보자마자 자네 특유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미국의 노동자들의 의식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봐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그 진지성은 여전하구만" 하고 감탄했던 것이 기억나네.

그러던 중 소련동구의 몰락이 전해졌고 자네가 지난날의 운동에 대해 자기비판을 하고 합법적인 진보정당운동으로 나가기로 입장을 정해 1990년 초반 민중당 활동을 하다가 실패한 것, 그리고 급기야 96년 총선 때 함께 민중당을 하던 이재오, 이우재 선배와 함께 현재의 한나라당의 전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행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네.

그리고 자네의 변절을 비판하는 주변의 비판에 대해 "변절자와 무절자"라는 글을 쓰기도 했네. 첫째, 신영복 선생처럼 자네보다 더 민주화운동으로 고생을 한 사람들이 자네를 비판을 하는 것은 좋지만 운동도 하지 않아 변절하려고 해야 변절할 건더기도 없는 '무절자'들이 변절 운운하여 비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둘째, 우리 사회가 자네의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자네보다 편하게 살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보수정치로 들어가겠다는 자체를 비판해선 안 된다, 셋째, 어차피 마음이 떠난 이상 자네 같은 사람이 진보진영을 떠나는 것이 운동의 방향이 왜곡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는 내용이었네.

다만 하나의 조건을 달았는데, 보수정치로 들어갈 때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운동을 비롯해 운동권을 매도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말고 겸허하게 "먹고 살라고 들어간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네. 그리고 변명은 말이 아니라 나중에 의정활동 등을 통해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네.

그러나 자네가 96년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자네가 평생을 싸워온 노동문제와 관련된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 신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기립찬성 투표를 한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네. 이후 자네는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씨의 핵심측근으로 잘 나갔지만 결국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네. 그러나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 전국적인 정치지도자로 성장해갔네. 그리고 자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듣기 거북한 충격적인 발언들이 전해졌네.

그 대표적인 예로 자네가 "일제의 지배가 있었기에 한국의 근대화가 있었으므로 이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는 언론의 보도이네. 자네가 자네와 나, 그리고 김상곤 선배와 함께 71년 함께 제적을 당하는 등 학생운동을 했지만 이후 뉴라이트의 기수로 변신해 지금은 이와 비슷한 입장을 앞장서 주장하고 있는 이영훈 교수와 친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같은 생각까지 갖고 있고 더구나 정치인으로 그 같은 생각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네.

그래도 김상곤 선배가 교육감으로 당선되자 나는 순진하게 "김문수가 기본이 있으니 둘이 협력하여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네. 그러나 자네의 태도는 너무도 실망스럽네. 경기도에 교육국을 신설해 교육감의 영역을 침해하고 들어가고자 한 것이 그 예이네. 아니 만일 지방자치의 취지가 도지사가 교육문제까지 다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도지사와 별개로 도교육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 도교육 문제를 총괄하도록 법을 만들었겠는가?

더욱 한심한 것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무료급식문제이네. 김 교육감이 선거공약에 의해 경기도내 초등학교에 대해 무료급식을 실시한다는 계획 하에 예산을 신청하자 한나라당 도의원들이 이를 전액 삭감하고 나섰고 그 와중에 자네가 "학교가 무슨 무료급식소냐"느니, "무료급식은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느니 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네.

자네의 생각이 '자유주의'로 변한 것은 잘 알고 있네. 그러나 그렇다고 무료급식을 이렇게 비판하고 나서다니 이해가 되지 않네. 무료 급식이 무슨 사회주의 정책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미 경남인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가 아닌가? 자유주의라고 무료의무교육도 폐지할 셈인가? "경기도가 무슨 무료 학원이냐"라며 경기도부터 의무교육도 폐지해보려나?

자네의 발언에 대해 현대자동차 사장까지 지낸 기업인 출신 정치인인 이계안 전 의원이 한 기고문에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중학교 1·2학년을 다닌 저는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키는 것이 싫어서 학교 급식 혜택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고향집으로 낙향해야 했습니다"라는 개인적 사연까지 실토하며 "그런 경험 때문에 '자기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혜택을 주는 방식의 복지제도보다 어린이면 어린이, 초등학교 학생이면 학생 그 자체 자격으로 혜택을 받도록 하는 보편적 복지제도", 즉 무료급식제도를 지지한다고 말 한 것을 한번 곱씹어보게.

그리고 "김 지사님! 지금 싸우고 계신 무료급식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소수라고 해도 가난을 입증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해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라며 "제가 아는 김 지사라면 분명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싶네.

최소한 자네라면, 그래도 한나라당에서 원희룡, 남경필 의원과 같은 '개혁파'가 되어야지 한나라당내에서도 '극우꼴통'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과거의 진보경력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오히려 극우적 노선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잘 이해가 되지 않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뉴스에 비치는 자네의 눈은 아직도 맑네. 사실 자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자네가 부패했다거나 정치에 오염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 즉 아직도 자네는 순수한 것 같네. 그러나, 아니 그래서인지, 자네는 무엇을 하든 극단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 노동운동, 진보운동을 할 때도 계산 없이 순수하게 극단적으로 했고, 이회창을 위해 일할 때도 '이회창 신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순수하게 극단적으로 했네. 이제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나아가 대권을 꿈꾸면서, 자네가 보수주의를 너무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이제 한 박자 쉬고 자네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균형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네. 그래야 더 큰 정치인으로 발전할 것이네. 경기도의 교육에 대한 자네의 태도가 그 첫 실험대가 될 것이네. 건투를 비네. 그리고 바쁘겠지만 28일 있을 71동지회 망년회에 얼굴 한번 비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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