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장기저축성 예금(예치기간 1년 이상)은 올해 9월말 현재 103조763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78조9233억 원)보다 24조8405억 원(31.5%)이나 늘었다. 증가액과 증가율은 모두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기업들이 투자는 기피하고 벌어들인 돈을 예금으로만 묶어둔 것이다. 실제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의 올해 투자실적은 지난해보다 평균 12.3% 감소했다. 특히 대기업(9.5%)보다 중소기업(13.2%)의 감소율이 높았다.
이처럼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로 재계와 보수언론은 여전히 내년 경기전망이 불확실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 규제완화 등으로 기업들의 투자유인을 늘려야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래프 1, 2, 3번이 공통적으로 외환위기 직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가 급락한 후, 다시 최근에는 외환위기 직전 수준모습으로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기업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커진만큼, 대기업의 투자과잉 현상도 심화됨을 뜻한다. ⓒ경제개혁연대 제공 |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내 투자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경우, 더 이상 투자를 늘릴 여력 자체가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중소기업 투자는 유인하되, 대기업은 더 이상 규제를 완화시켜줘도 투자할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진단에 따르면 설사 경기가 지금보다 살아나더라도 기업 투자는 늘어나기 어렵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경제위기 이전인 지난 2000년대 초반 지속된 '저성장' 국면에서 이미 입증된 현상이다. 민간소비가 더 이상 주요 기업의 생산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기업의 생산 자체가 과도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경제개혁연대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재벌의 GDP대비 자산 비중, 매출액 비중, 투자 점유 비중, 부가가치 비중은 모두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해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말 현재로 보면 30대 재벌의 투자는 국민경제 전체 투자의 47.0%, 5대 재벌은 30.5%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과잉투자가 극에 달했던 지난 94~96년 수준과 같다. 대기업만 따지면 더 이상 투자할 공간 자체가 없는 셈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재벌의 투자 부진에 있다는 진단 하에 재벌 규제를 완화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잘못됐다"며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투자 양극화가 저성장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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