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스 앤 로지스의 '옛날'이란 그만큼 대단했다. LA메탈이 막 빌보드를 맹공하고 있던 1987년 툭, 등장한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은 LA메탈의 흐름에서 벗어나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흥청망청,이란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당시 음악과는 달리 거기에는 거친 퇴폐미가 있었다. 메탈과 펑크, 하드록과 블루스가 그 욕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뒤섞여 있었다. 세계적으로 1억장, 미국내에서만 1500만장이 팔린 이 앨범은 위험 그 자체와 쾌락을 향해 질주하던 80년대의 어두운 뒷골목이 록으로 형상화된 명반이었다. 1991년 공개된 <Use Your Illusion I>과 <Use Your Illusion II>는 스타덤안에서 부쩍 확장된 자아를 담고 있는 앨범이었다. 데뷔 앨범만큼의 파괴력은 없었다 해도 'November Rain' 'Don't Cry'같은 발라드는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액슬 로즈의 감성을 극단으로 드러낸 시대의 명곡이었고, 그 외에도 록의 본질적 야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들이 두 장의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같은 해 발매된 너바나의 <Nevermind>가 단숨에 부풀린 파마 머리와 레깅스로 무장한 LA메탈 세력을 역사의 뒤편으로 쓸어 보냈지만, 건스 앤 로지스는 본 조비(Bon Jovi)와 더불어 여전히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이한 존재였다.
다만, 그들이 스스로 몰락했을 뿐이다. 1993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The Spaghetti Incident?>이후 슬래시, 이지 스트래들린, 더프 매케이건 등 불량의 신화를 함께 쓴 멤버들이 모두 탈퇴했고 팀에는 액슬 로즈만 남았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새 앨범 발매 계획이 발표됐지만 15년간 건스 앤 로지스의 새 앨범은 세상에 등장한 적 없었다. 그저 열 명에 가까운 기타리스트가 팀에 가입했다가 떠나고 다섯명에 가까운 이들이 프로듀서의 이름에 오르내렸을 뿐이다. 다른 밴드들이 범작이든 졸작이든 앨범을 발표하며 그래도 팬들에게 존재를 알려왔다면, 건스 앤 로지스의 시간은 9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이번 내한 공연은 그 때와의 조우에 다름 아니었다.
▲지난 13일 열린 '액슬 로즈'의 건스 앤 로지스 내한공연.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
그러나 실망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공연이었다. 건스 앤 로지스의 공연이 아니라 액슬 로즈와 직원들, 이라 할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일단 사운드가 끔찍했다. 당연히 현지 사운드 엔지니어가 동행했고, 올림픽 체조에서 공연 본 게 한 두번도 아니다. 음향적 배려가 거의 안된 올림픽 경기장에서 공연 초반의 사운드는 대부분 좋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곡이 쌓여갈수록 상황에 맞는 소리를 잡아서 결국은 만족스러운 소리를 잡는다. 그런데 첫곡부터 끝곡까지 일관되게 듣기 힘든 소리였다. 보컬과 리드 기타와 드럼만 들리고 아무 것도 안들리는 소리. 음향 엔지니어의 불성실을 탓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더 슬펐다. 액슬 로즈의 '썩은' 보컬이 더욱 강조됐기 때문이다. 원래 액슬의 목소리는 그랬다. 기복도 심했다. 그래서 라이브에 대한 악평도 많았다. 늘 그랬다. 하지만 한 마리 들개같았던 야성도 사라지고 한 마리의 퍼그같은 외모와 가쁜 목소리로 돌아온 그의 모습과 노래는 한 때 건스 앤 로지스의 열혈 팬이었다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예고된 일이긴 했다. 건스 앤 로지스의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액슬 로즈가 현저히 쇠락해왔음은, 자기관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세월을 살아왔음은 종종 매스컴에 등장하던 그의 모습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공연이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뇌사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던 건 당연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일말의 기대를 품고 갔던 게 잘못이었다. 좌충우돌 록스타의 젊은 야성이 사라진 자리를 관록과 여유가 대신할 거라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까웠던 공연 내용에 비하면, 대만에서 두 대의 비행기를 흘려 보낸 끝에 뒤늦게 한국에 와서 공연을 두 시간 반 지연시킨 액슬 로즈의 변함없는 무책임한 성품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곡과 곡의 사이마다 쇠한 체력을 드러내려는 듯, 멤버들의 개인기에 시간을 맡기고 무대 뒤로 들어가는 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키보드를 맡은 디지 리드를 제외하고, 모두 새로운 얼굴들인 멤버들의 개인 기량은 훌륭했다. 다만 건스 앤 로지스의 그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정교한 악보와 구조도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공백이 절실할 뿐이었었다. 다시 말하지만 건스 앤 로지스의 시간은 90년대 초반에서 멈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Welcome To The Jungle'을 비롯해서, 'You Could Me Mine'이나 'November Rain' 그리고 엔딩곡이었던 'Paradise City'같은 명곡들의 전주가 흘러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은. 시종일관 실망스러운 공연 내용에도 불구하고 옛 추억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딱 전주까지였다. 막상 액슬이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들떴던 엉덩이에는 무겁디 무거운 추가 매달리는 듯 했다. 다만 <Appetite For Destruction>과 <Use Your Illusion>을 동시대에 들었을 때의 그 지울 수 없는 추억들이 일으켰던 몸을 다시 앉게 하는 걸 막아줬을 뿐이다.
저절로 비교가 됐다. 주다스 프리스트, 머틀리 크루,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최근 일년 사이에 접했던 왕년의 선수들의 공연과 액슬 로즈의 공연은. 그들의 공연이 잠시 잊고 있었던 명배우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만한 무대였다면, 건스 앤 로지스의 그것은 껍데기만 남은 옛 이름의 호명에 다름아니었다. 'November Rain' 의 기타 솔로를 세 명의 기타리스트가 번갈아가며 연주했음에도, 머리 속에는 기마 자세로 말보로를 꼬나문 채 그 절절한 솔로 멜로디를 연주하는 슬래시의 모습이 떠오를 뿐이었다. 건스 앤 로지스의 초기 곡을 대부분 썼던 이지 스트래들린의 부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LA메틀의 전성기에 펑크 록커의 존재감을 잇고 있었던 더프 메케이건이 마냥 그리울 뿐이었다.
함께 공연을 본 선배 평론가는 말했다. "그 정도 레퍼토리를 가진 밴드가, 이런 공연을 하는 것도 어찌보면 대단한 일이야." 해외에서 건스 앤 로지스의 공연을 세 번 본 음반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이번이 네 번째 본 공연인데, 가장 후졌어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느 평에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오늘 객석을 가득 메운, 공연 지연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환호를 보낸 이들 중엔 어쩌면 청소년 시절의 우상을 알현하러 온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처음으로 아레나급 록 콘서트를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성기의 건스 앤 로지스란 그토록 대단한 존재였으니까. 그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난 밴드의 공연이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아니라고 하나 하나 붙잡고 설명하고 싶었다.
생각해본다. 록 스타에게, 아니 스타에게 겸손과 성실은 필수적인 덕목은 아니다. 아무리 문란하고 난잡한 사생활을 하던, 음악외적인 부분에서 가십과 이슈를 양산하건 상관없다. 오히려 너무 모범적이고 착한 생활을 하는 아티스트는 재미가 없다. 연예인에게 도덕성까지 요구하는 풍토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왔다. '예술은 결핍에서 나온다'라는 격언은 대체로 참이다. 시대를 바꾼 아티스트들에게는 언제나 불만과 결핍이 있었다. 그것을 예술과 생활에 동시에 폭발시켜왔다. 그러니 논란을 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자신이 표현하는 영역에서만큼은 진지해야한다. 꾸준한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그래야 긴 인생의 잠깐 빛날 수 있는 재능의 유통기한은 연장된다. 그것이 철없는 스타가 자신의 세계를 인정 받는 중견, 또는 거장으로 자리할 수 있는 길이다. 역시 많은 이들이 증명해온 사실이다. 그러나 건스 앤 로지스는 1993년 <The Spaghetti Incident?>이후 15년을 그저 허송세월해왔다. 건스 앤 로지스, 아니 액슬 로즈의 첫 내한 공연은 그 허송세월에 대한 증거일 뿐이었다. 멈춘 시계 바늘이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지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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