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1999년, 미국 시에틀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장을 에워싸고 펼쳐졌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은 '시에틀 투쟁'으로 회자될 정도로 국제 사회운동에서 한 획을 그었다. 10년이 지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의 '기후 정의' 운동은 어떻게 기억될까? 훗날 역사가 평가할 그 투쟁의 첫 행진이 12월 12일 시작됐다.
기후 운동의 질적 도약, 기후 정의
매년 COP 총회 기간에 맞춰 벌어지는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은 전 세계 단체의 동시다발적 기후 운동을 상징한다. 이날은 회의 개최 도시에 집결한 각국의 운동가들이 기후 변화 문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입장을 표출하는 전시장이다. 올해 코펜하겐은 회의의 중요성만큼이나 기후 운동도 질적으로 도약하고 있다.
"세계 67개국, 515개 단체" 소속의 약 6만 명(주최 측과 경찰 측 추산의 평균값)이 코펜하겐 회의장 밖에서 기후 운동을 벌였다. 셀 수 없이 나부끼는 각종 구호가 적인 깃발과 현수막, 그리고 각종 퍼포먼스. 일부에서 우려 혹은 기대했던 '과격 시위'는 거의 없었다(600명이 연행된 것을 제외하고). 투쟁의 방식에 급진성이 없다고 투쟁의 내용에 급진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일부 제3세계 운동 단체 중심으로 제기되던 기후 정의 운동을 올해부터 거의 모든 기후 운동 세력이 수용하였다. 코펜하겐에 모인 모든 환경단체, 노동단체, 농민단체, 진보정당은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 정의'가 환경운동의 주도권을 한 번도 잡아 본적이 없는 것을 상기하면 '기후 정의'는 정말로 뜻밖의 성과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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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정의의 아래로부터의 전략
유엔(UN)은 형싱적으로는 NGO를 이번 회의의 한 주체로 배려하고 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등록을 하면 회의장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회의장 내 특정한 장소에서의 의견 개진, 퍼포먼스 활동도 보장된다. 공개된 회의에서 발언권까지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사정 탓에 14차 회의까지 환경단체 등은 협상장 내의 활동에 주력했다.
그런데 왜 코펜하겐에서 이러한 기후 운동의 전략이 수정되었을까? 우선 기후 정의 주도 세력들(CJN, CJA)이 UN 협상장 활동에 등을 돌렸다. 다른 많은 사회단체도 협상장 밖에 둥지를 틀었다. 바로 '전 세계 민중의 기후 정상 회의'인 '클리마포럼(Klimaforum09)'이라는 근거지를 만든 것이다.
이들 기후 전사들은 무엇보다도 '호펜하겐(Hofenhagen)'이길 포기한 이번 회의를 보이콧하고 있다. 그들은 UN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질타하면서 아래로부터의 기후 협상을 제정하려는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클리마포럼의 '기후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시스템을 변화시키자!'이다.
기후 정의의 좌·우의 날개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기후 정의의 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12일의 코펜하겐 투쟁을, 과연 한 묶음으로 여기는 것은 정당할까?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개념 규정이 천차만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 정의'를 놓고도 다양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선진국의 배출 책임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태도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중도적인 입장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일부 정부도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다. 이들의 주장은 선진국과 주요 배출 국가의 의무 감축과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 강화로 끝난다. 이것은 현 체제의 구조에 결박된 제한적 기후 정의라고 볼 수 있다.
클리마포럼의 선언은 이런 관점을 넘어선다. 이들은 현재의 위기를 경제적, 환경적, 정치적, 문화적 문제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당연히 그 대응도 사회, 정치, 경제 구조, 즉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성, 계급, 인종, 세대를 둘러싼 불평등과 부정의를 극복하는 전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선진국의 기후 부채를 전제하면서 한 발짝 더 딛는다. CCS(탄소 포집 및 저장), CDM(청정 개발 체제), REDD(개발도상국의 삼림 감소와 파괴 방지를 통한 온실가스의 감축)와 같은 주류의 시장 지향적이고 기술 중심적인 대응에 반대하고, 에너지, 토지, 물 주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정치를 기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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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킬로미터로는 6도 상승을 막을 수 없어
코펜하겐 시내에서 협상장이 있는 벨라 센터까지의 6킬로미터 행진만으로는 파국적인 6도 상승을 막을 수 없다. 독일, 호주, 인도네시아, 한국 등 100여 개 국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후 정의의 행진 거리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부족할지 모른다. 화석 자본에게 빼앗기고 정치인에 위임된 권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떠한 희망도 없다.
당장 행동하고(Act Now), 기후가 아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1부가 끝난 코펜하겐,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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