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회복 속도는 경제지표로 보여지는 것만큼 빠르지 않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문제는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의 향상이다. 올해 취업자수는 전년 대비 7만 명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소득도 줄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2명 이상 전국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1년 전보다 1.4%, 실질소득은 3.3% 감소했다.
따라서 '고용 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8일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고용사정의 개선 폭이 크게 확대되지 못하면서 '고용 없는 회복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면서 "2010년 경기회복기에 '고용 없는 회복'이 가시화된다면 소득감소로 인한 소비위축과 내수 위주 기업들의 투자부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2010년 한국경제 성장세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위 20%, 95년 월소득 119만 원…2005년에도 119만 원
이런 고용 불안정과 소득 악화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계속된 문제다. 그리고 이런 고용 불안정과 소득 악화의 문제는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밤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광고에 나왔던 '욕쟁이 할머리' 강종순 씨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재래시장 등을 방문했다. ⓒ청와대 제공 |
일자리 수 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숫자는 지난 2001년 이후 계속 증가해 2008년 8월말 544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3.8%에 달한다.
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이후 실질임금의 상승률이 매분기 5%를 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오히려 감소했다. 조 교수는 "소득 수준 하위 20%의 실질소득은 1995년 월 119만 원에서 2005년에도 119만 원으로 그대로"라면서 "중위 60%의 실질소득은 95년 월 246만 원에서 2005년 월 290만 원으로 매년 평균 1.6%씩 증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고용의 불안정과 소득 악화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수 밖에 없다. 상대적 빈곤율(전체 가구 중위소득의 5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는 가구의 비율)은 97년 9%내에 머물고 있었는데 2008년에는 15%에 달했다. OECD 국가 중 터키(18%), 멕시코(18%), 미국(17%), 일본(15%)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교육비 사적 부담 75.7%, OECD 평균의 3배
이런 빈부격차는 대물림되고 있다. 개인의 (경제적) 성장과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교육, 금융, 의료서비스 역시 한국에서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영역이다. (부모의) 직업, 소득, 거주 지역에 따라 접근의 기회조차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비 지출 중 사적부담은 75.7%(2005년 기준)에 이른다.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 부담으로 떠넘겨져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기 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OECD 국가 중 1위로 2위인 일본(66.3%), 3위인 미국(65.3%)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OECD 평균(27.0%)의 거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금융서비스에 있어서도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금융권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사람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었고, 이에 따라 사금융 이용자도 증가해왔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사람의 숫자는 2007년 4월말 760만 명에서 2008년 4월말 816만 명(전체의 22.6%)으로 증가했다. 이들 저신용자들은 제도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해 사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08년 4월 사금융이용자는 189만 명에 이르며, 이들이 부담하는 금리는 평균 연 72.2%에 달한다. 결국 높은 금리로 소득 창출은 커녕 기존 자산마저 잠식당하게 되고 계층간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의료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비교적 양호하지만 의료비의 공적 부담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민들의 의료비 중 공공재원으로부터 지불하는 의료비 비중은 우리나라는 54.7%(2006년 기준)로 OECD 평균인 73.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MB정부 들어 복지지출이 늘었다고?
서민경제는 지난해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터지기 전부터 '위기 상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래로 급속하게 들어온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는 '고용 없는 성장'을 야기했고, 그 결과 사회적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됐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한 이번 세계경제위기의 대응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기존의 문제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조복현 교수는 "고환율정책, 대대적인 감세, 재정지출 확대 정책 등은 당장의 순수출 증가, 부자들의 소득증대, 토목건설업의 활황은 이끌었지만 사회전체의 고용, 소비, 설비투자의 증대는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재정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세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통해 2008-2012년까지 총 99조 원의 국세수입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국회예산정책처)도 나온다. 오 실장은 "규모로 따지면 4대강 사업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가 감세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감세의 혜택은 부유층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정책이다.
오 실장은 이명박 정부가 "내년 복지지출 증가율이 8.6%로 총지출 증가율 2.5%에 비해 3배 높고, 총지출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27.8%로 역대 최고수준"이라면서 복지지출이 늘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오 실장은 "내년 복지지출 비중이 역재 최고로 보이는 것은 분모인 총지출이 올해보다 10조 원 줄어들기 때문"이라면서 "또 내년 복지지출 81조 원은 올해 최종지출 80.4조 원에 비해 0.6조 원 증가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은 "제도적 자연증가분과 보금자리주택 관련 융자성 비복지사업 5.6조 원을 감안하면 다른 복지사업에서 5조 원이 삭감됐다"고 밝혔다.
오 실장은 또 "한국의 올해 복지지출 규모는 OECD 기준으로 GDP 대비 9%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OECD 평균은 20%로 우리나라보다 11%포인트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GDP 대비 복지비중은 90년 2%대에서 꾸준히 상승해 2000년 5%에 육박해 올해 9%에 이르렀다"면서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역대 처음'으로 GDP 대비 복지 비중이 낮아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잡은 명목경제성장율은 평균 7.3%, 복지지출 증가율은 6.8%로 GDP 대비 복지비중은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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