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로 입양되는 것을 통해 입양인들이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비록 각 부모의 계층에 입각해 비교하면, 성인 해외 입양인이 비입양인들에 비해 낮은 사회 계층에 머물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본 혹은 물질적인 풍요가 모든 것은 아니다!
아래의 글은 외면과 대등하지 않은 내면을 가짐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 남겨진 외면에 대한 느낌 그리고 여기 서구 사회에서의 해외 입양인들의 삶의 일부인, 매일 경험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개인적인 증언이다.
일어나라! 당신은 자고 있다, 꿈꾸고 있다. 꿈꾼다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Tjing-tjong! 뭐라고, 나? 무슨 말이야? 그 차가움. 나는 100% 몸 밖에 있으며, 100% 몸 안에 있다. 안에 갇혀, 밖, 어떤 몸, 나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100% 한국인임과 동시에 100% 스웨덴인이다. 그러나/그리고 0% 한국인임과 동시에 0% 스웨덴인이다. 모순이다.
나는 민족(학)적으로 스웨덴인이다, 한국인 몸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스웨덴인들만큼 스웨덴적이다. 나는 교육에 의해 생물학적 한국인의 모습을 한 채 서양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강제되었다. 나는 결코 또다른 내가 될 수 없다. '서구(Westernity)'로 운명지워졌기에, 나는 항상 스웨덴인이지,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와도 같이 말이다. 내가 스웨덴 공항에 도착한 날, 나는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거절당했고,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대신에, 서구적 내부, 서구인으로서의 나를 가져야 했다. 한국 몸은 철저히 고통스러웠다.
어린 아이로서 나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아이로 남겠다는 목적. 내 몸은 백인 아이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구의 본거지에 놓여진 나는 그들 중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갓난 아이였을 때 스웨덴에 도착했고, 그 나라의 대도시 근교의 백인 중산층에서 키워졌고, 학창시절을 우수하게 보내고 대학에서 과학과 예술을 공부했으며, 마침내 석사학위를 획득했다. 백색에 둘러싸이고, 포장되었다, 모든 외면과 나의 것들이. 어떤 학우들은 "중국인" "Tjing-tjong"이라 불렀다(스웨덴에서는 누구든 아시아적 외모를 가진 사람은 "중국인"이라 불린다).
혼자였다. 마음 속은 고독한 침묵의 길고 긴 시간과도 같았다. "Tjing-tjong". 뭐라고? 왜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할까? 이해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 침묵의 감정들을, 부모님께서는 보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나, 평범한 도시 근교 가정의 평범한 엄마와 평범한 아빠를 둔, 서양인. 나는, 스웨덴 이름을 가지고, 스웨덴 옷을 입고, 스웨덴어를 모국어로 하며, 스웨덴 음식을 먹는 - 나는 스웨덴인이며, 나는 서양인이다, 그러나 몸은 한국인이다 - 내가 그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어떤 선택적인 인식(체계)(selective perception)를 가지고 있었다.
▲ 스웨덴 광고의 한 장면. 아시아인들은 스웨덴 백인들의 웃음을 위해 광고, 영화, 연극 등을 통해 종종 조롱당하고, 모욕당하고, 희롱당한다. ⓒ프레시안 |
때때로, 가끔, 나는 백인이었다. 입장권을 얻었다. 내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들은 나를 서양인 취급을 해줬다. 내 몸은 다른 스웨덴 외관(appearance)들 속 하나의 외관(appearance)이었다. 다른 한 남자가 나에게 그것이 학교 뒤뜰에서 만자 십자장(불교를 상징하는 기호)을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 아니야, 나는 말했다, 왜냐면 그것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슷함 - 다름이 아닌 것. 이데올로기로서의 무차별(Colorblindness). 나의 어머니는 내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몇몇 친척들과도 마찬가지로, 어두운 머리카락색을 지녔다고 말했다(그들은 카프카스 사람(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머리카락색을 지녔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는 내가 정말 아시아인처럼 보이지만, "중국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것들이 무언가 긍정적으로 보였고, 그만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백색 환상은 깨어졌다. 눈내리는 풍경. 춥다. 무언가가 나를 내 몸의 현실로 깨어냈다. 넌 더 이상 백인일 수 없어! 어린 아이로 남겠다는 너의 사명은 완성되었어. 지금부터 너는 "중국인", 입양된 어린 아이야! 어린 아이다, 스웨덴 사회에는 성인 해외 입양인들을 위한 사회적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서양인의 몸이 아니라 한국인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였다. 카프카에서의 그 벌레 처럼. 나는 깊이 낙담하게 되었고, 도피와도 같이 학업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내 가치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내 몸 앞에서 전적으로 낯선자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람 내부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짧고, 푸른 눈도 아니며, 몸에 난 털도 충분하지 않고, 풍성한 턱수염도 없으며, 금발이 아닌 어두운 머리카락색을 가졌다.
내가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을 때, 누구도 서구적 외면이 아닌 채 서구적 내면을 지녀야하는, 해외 입양에 의한 정체성 위기를 겪는 경우를 다룰 능력이 없었다. 나는 스웨덴 의료 체계 속에서 정말 잘못된 취급을 받아왔다. 계속적으로 나는 과다한 약물 투약을 처방 받아왔다. 왜냐하면 스웨덴은 다른 인종이 다른 의학적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내 몸은 그로 인해 황폐화 되었다.
정신과 의사는 국가간 입양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또는 나에게 그들의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진술하거나 설명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내가 의학적 치료를 구할 때마다 나는 지속적으로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과다한 약물투여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 또는 어떤 면에서든 약이 남용되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할 때, 나는 보통 퉁명스럽게 "아니요, 민족성은 약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라는 대답에 직면했다. 그렇다, 나는 배우지 않았다면 나에게 어떤 기회도 돌아오지 않았을, 그들의 언어를 말하고,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사회의 실패는 "사적" 실패 - 나의 실패로 이전되었다. 정도 이탈은 바로 내 몸이었다. 문제가 발견된 것은 거기서였다, 왜냐하면 스웨덴 의료체계는 백인 남성의 경우를 전제하고, 오늘날은 때때로 백인 여성의 몸을 표준으로 하는 등 그들의 민족적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용 정량은 그들의 몸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정신 건강과 관련한 문제는 일반적인 스웨덴인에 비해 해외 입양인 그룹 사이에서 과대평가 되었다. 스웨덴의 한 연구에 의하면, 자살의 위험이 5배 높다.(Hjern, Anders och Allebeck, Peter: 2002, "Suicide in first-and second-generation immigrants in Sweden. A comparative study", Social Psychiarty and Psychiatric Epidemiology Vol.37 N0.9 s.427). 같은 논문에, 이런 수치가 나오는 이유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성인기 정신 건강과 관련한 문제는 삶 초기의 영양 부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며, 이런 영양 결핍이 아이의 뇌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신적 "나약함"은 우리 해외 입양인의 개인적인 책임이 된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보통" 사람들에게도 입양 그 자체가 정신 건강 문제 야기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우리가 지속적으로 서구 사회에서 부딪히는 매일 같은 인종 차별, 문화적 그리고 유전적 절멸 또는 서구적 내면과 한국적 외면에 의한 정체성 문제 등-을 인정하는 대신에 말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실패와 우리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책임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차원으로 전이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것"은 우리 개인 자신이 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내가 스웨덴어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은 내가 카프카스인(백인) 몸을 지니고 있지 않고, "중국 교자(Chinese Puffs)"가 캔디 선반(캔디 포장지엔 아시아인 얼굴의 캐리커쳐가 묘사되어 있다)에 매달려 동그란 얼굴에 구멍같은 눈을 가진 작고 웃기게 생긴 남자와 같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아시아인 이미지를 가진 한국인 입양인으로서 여기에 살고 있고, 예상외로 - 여기에 스웨덴의 가장 인기 있는, 아시아인들을 웃음거리로 다루는 TV쇼(allsang pa Skansen이 있다)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
나는 한 번도, 단 한번도 정상이 되는 것,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없었다. 나는 항상 타자(Les Autre)이다. 오늘 나는 외면적으로 스웨덴인이 아닌 만큼이나 내면적으로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몹시 슬프다. 어느 순간 나는 한국인 몸으로 사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그 후 그 몸이 소중함을 느꼈지만, 곧 나는 인종적으로 한국인이 아닌, 인종적으로 스웨덴인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스웨덴적인 것, 스웨덴 언어에 갇혀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거짓이고, 환상이다.
생물학적 한국인으로서 한국적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법을 영원히 박탈당했다. 나는 속은 것 같고, 내 삶은 온통 거짓, 내가 서양인이라는 거짓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내가 한국인이었어야 한다는 거짓인 것일까? 대학 졸업 증서가 있고, 꽤 유복한 편이지만, 내 삶은 길고 험난하며, 나라는 역설 속에서 내부의 평화를 찾는 고통스러운 사투 - 일생의 프로젝트와도 같다. 그것이, 깨어날 수 있는 악몽이길 바랄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아이작은 1981년 스웨덴으로 입양된 입양인이다. 한국에서의 성(姓)은 '장'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했고,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생물학, 철학, 신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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