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사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시행 의지를 밝힌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제도 개편안이 관치금융을 보다 강화하는 핑곗거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 등 금융권의 기존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현 개편안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당국의 입김을 더 강화하는데 불과하다는 우려가 담겼다.
8일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와 같은 의견을 내고 "사외이사의 권력화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감독당국이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제시안은 실효성 없어
이와 같은 논란은 지난 3일 KB금융지주의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전원 찬성으로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회장후보로 뽑으면서 불거졌다(☞ 관련기사 : 'KB 강정원 체제' 출범 신호…암초는 '정부').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던 일부 인사들이 공정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사퇴한 것을 두고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공교롭게도 강 행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된 이날,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국회에서 사외이사제도 개선 추친 의사를 밝혔다. 감독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안은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 분리, 사외이사 연임 제한 및 자격요건 강화 등과 더불어 사외이사후보 및 회장후보 선출 시 주주대표 참여 방안을 담고 있다.
일부에서 '행장 위에 사외이사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한 권한을 가진 사외이사들에 비해 주주들의 권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개편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주주대표의 회장후보 선출과정 참여는 이미 과거 은행법에서 도입됐으나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주주대표의 참여는 진정한 의미의 주주대표성 실현 수단으로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부작용이 이미 입증돼 폐기된 제도"라고 했다.
현재 제도로도 주주권 보호 가능
또 현실적으로 주주들이 자신의 입장을 후보추천 과정에서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현행 상법 제542조의8(사외이사의 해임) 제5항은 1%(대형 상장사는 0.5%) 이상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반드시 사외이사후보추천위가 주총에 추천하도록 돼 있다"며 "대부분 금융지주회사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자신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할 수 있고, 그를 통해 후보추천 과정에도 주주권을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는 소수 지분을 가진 투자자 권익 보호를 위해 마련됐다. 1주당 여러 표의 의결권을 제공해 그 표를 소수주주가 특정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예를 들어 1주당 의결권이 3표인 회사에서 이사 3명을 뽑는 이사회가 진행될 경우, 일정 지분(1%) 이상의 주주는 자신이 가진 의결권 전부를 한 후보에게 몰아줘 그 후보의 이사 당첨 가능성을 높이는 식이다.
즉, 주주들이 권익 보호를 위해 굳이 최종투표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는 사외이사를 통해 감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의 주요 주주인 기관투자자들이 이 제도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현실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주주대표를 강제로 참여하게 하는 방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특히 국내 기관투자자가 감독당국의 의사에 반하는 후보를 추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관치금융 강화 수단 전락 우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도 관치금융의 통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김상조 소장은 "기관투자자가 감독당국의 감독을 받는 처지인데, 후보로 퇴직 관료가 선임된다면 직접 추천위에 참여한들 정부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나"며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은 오히려 관치금융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사외이사제도가 여러 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은 낙하산 인사로 대표되는 금융권 관행과 법제도 등을 개선해 해결해야 하며, 감독당국이 직접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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