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세상일에는 크든 작든 반드시 의미가 있고
학문에서는 특히, 구석구석 아주 작은 내용에서도
의미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왜 그런 이름이
무슨 원인으로 그러한 사건이
어떤 이유로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만 있다면
의문이 은근하게 다가와 주기만 한다면
잠깐의 고통 후에
괜찮은 재미가
솔솔 때로는 폭폭 그리고 푹푹
솟구칠 것이다.
고사성어의 의미를 과거 일어난 사건을 배제한 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옹지마'를 인생에 있어서의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라고, 이유도 모른 채 암기해서는 안 된다. '변방(국경지방) 새(塞)' '늙은이 옹(翁)' '관형격조사 지(之)' '말 마(馬)'라는 사실을 알고, 옛날 국경지방의 늙은이가 기르던 말이 달아났다가(재앙), 준마 한 필을 데려왔다가(복), 준마 타다가 다리 부러졌다가(재앙), 다리가 부러졌기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복)는 의미까지 알아야만 진정으로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앎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먼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스스로 연구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선생님이 알려 주었을 때에만
공부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정답이 확실한 단순한 문제를 푸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토론을 거쳐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박수 받는 시대임이 확실하다고 하는데……
의문 품는 연습 충분히 하여야 한다.
의문 품는 연습, 많을수록 좋다. 의문은 공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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