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국회에 찾아온 이들이 자리를 깔자 동료 의원들이 방문하며 의장실 입구는 야당 의원들 사랑방이 됐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이들이 피운 '이야기꽃'만 들여다봐도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KBS 문제는 명함도 못 내밀겠다"
오후 4시경 "오랜만이네" 하면서 김상희 의원이 찾아오자 최문순 의원은 "KBS 김인규 사장 문제도 큰 문제인데 (하도 이슈가 많아서) 명함도 못 내밀겠다"며 "4대강 때문에 정신없으시죠? 노조 탄압 문제도 심각하고…"고 인사했다. 김상희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다.
김상희 의원은 "방법이 없어요. 몸으로 막을 수밖에. 4대강 날치기 하고 돈 써버리면 되돌릴 방법이 없잖아요"라고 답한 뒤 최 의원에게 "법제처도 시행령 묶어놓겠다는데 재논의를 왜 안 하는 겁니까. 이러다가 이석연 법제처장도 짤릴까봐 걱정해야 되는 거 아녜요?"라고 '미디어법'으로 인사했다.
▲ 오후 4시경. 딱딱한 분위기의 농성 초반. 김상희 의원이 찾아와 최문순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
이어 찾아온 최철국 의원은 민주당 소속인 진해시 정영주 의원이 마산, 창원, 진해 행정구역 통합여부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단식하다 쓰러진 일을 전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가 창원. 권 의원은 최 의원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좌식 의자를 깔고 앉았다. 권 의원은 '사퇴 3인방'에게 "민주노동당도 공식적으로 농성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전하며 "내가 대표로 왔다"고 말했다.
단식 얘기가 나오니 권 의원은 KBS 노조 강동구 위원장이 떠올랐던지 곧바로 강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어디서 단식해? 민주광장. 며칠 째야? 단식은 3~4일 째가 가장 힘든데"라고 격려했다.
그 사이 장세환 의원은 뒤를 돌아보며 입구 현관문을 지키고 있는 국회 경위들에게 "앉아 있어요. 힘들 텐데. 우리가 쳐들어 갈 것도 아닌데"라고 권유했다. 경위들도 바닥에 앉았다.
오후 4시 30분에는 최근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진애 의원이 찾아왔다. 김진애 의원은 오자마자 "최문순 의원은 여기 오니까 볼 수 있네"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김진애 의원에게 권영길 의원이 "전문가 오셨네. '갑문' 지적하신…"이라고 칭찬하자, 김진애 의원은 "권 의원님도 오늘 '골재' 하셨잖아요"라고 답례했다. 김진애 의원은 1일 '갑문'과 운하가 표시된 국토관리청의 '다목적보 기본구상'이라는 문건을 공개했고, 권영길 의원은 2일 '4대강 준설토 처리 및 횡단 시설물 관계자 회의'라는 문건을 공개했다.(☞관련기사: 김진애 "4대강 보, 운하용 갑문 설치 염두에 둔 설계",정부, '준설토 대란' 우려…"골재업체 대량 도산 예상" )
▲ 힘들기는 국회 경위들도 마찬가지. 장세환 의원이 "앉으시라" 권유했다. ⓒ프레시안 |
"교육예산을 깎다니"
그 때 이종걸 의원이 등장했다. 이에 앞서 방문했던 안민석 의원, 권영길 의원 모두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천정배 의원은 이들에게 "교육예산이 깎였다면서? 어떻게 교육예산을 줄일 수가 있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인 이종걸 의원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3000억 원의 저소득층 장학금이 깎였어요. '취업 후 대학생 등록금 상환제'라고 한다는데 이게 장학재단 이름으로 9조 원의 채권을 발행한다는 거지 뭡니까. 학생들 장학금은 깎으면서 빚 내서 빚 주겠다는 거지. 전부 빚으로 하는 건데 자기 임기 3년 뒤에는 먹튀 하려는 거 아닙니까."
천정배 의원이 "자기 임기는 때는 넘기자는 발상인 것 같은데"라고 거들자 이종걸 의원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다른 이슈가 하도 많으니까 이게 이슈화가 잘 안 돼서…. 대학 다닐 때 3000만 원을 빌리면 25년 뒤에는 1억이 되더라고요"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도 찾아와 이들을 격려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등 발언 수위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강제퇴거 상황을 언급하며 마치 '내가 혼내줄께'라는 듯 "김형오 의장이 경위권 발동했어?"라고 묻기부터 했다.
천정배 의원이 "주거침입에 대한 자구행위라고 하던데요"라고 답하자 박주선 최고위원은 "농성하는 분들 관심과 격려를 보내달라고 문자라도 보내야겠어"라며 일어나더니 즉석에서 문자를 보냈다.
김상희 의원은 "작년에 로텐더홀 점거할 때도 외부에서 귀빈이 오면 신사협정하고 1시간 씩 비워주고 그랬는데"라며 "말로 잘 하면 알아들을 것을"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오후 4시47분 국방위원회 간사인 안규백 의원이 찾아오자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가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고, 곧이어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도착하자 '로봇 물고기'로 떠들썩해졌다.
"열 마리만 떠내려가도 3억이네"
김상희 의원이 로봇 물고기 이야기를 꺼내자 권영길 의원이 "한 마리에 얼마라던가요?"라고 물었고, 김상희 의원은 "3000만 원이 넘던데요"라고 답했다. 이에 추미애 의원은 "가격도 문제지만 아직 실험단계에 있는 걸 국민에게 다 된 것처럼 호도하는 게 더 큰 문제에요"라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권영길 의원이 속았다는 듯이 "나는 기막히는 (아이디어라) 생각했지"라고 말하자 추미애 의원이 "넘어가셨구나"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최문순 의원이 "로봇 물고기 크기가 1.5m라던데, 사람만하데요"라고 말하자 김상희 의원은 "그런 물고기가 강바닥에 돌아다니면 진짜 물고기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오죽하면 차명진 의원도 '낚시로 훔쳐가면 어떡하느냐. 홍수 나서 떠내려가면 어떡하느냐'고 지적했겠어요"라고 맞장구쳤다.
이 얘기를 듣던 이종걸 의원. "허 참. 떠내려가면 열 마리만 해도 3억이네…."
▲ '로봇 물고기'로 한참 수다를 떤 의원들. ⓒ프레시안 |
노동 문제는 권영길 의원이 주도했다. 권영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철도공사 상황실을 방문한 소식을 언급하며 "합법적 절차에 의한 파업권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규정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천정배 의원은 "'내가 곧 법이라는 생각'이죠"라고, 장세환 의원은 "이게 무슨 법치냐"고, 김상희 의원은 "노동연구원 노사분쟁은 거의 타결 직전이었는데 직장폐쇄 해버리는 것 좀 보세요"라고 한탄했다.
'사퇴 3인방'의 농성의 성격은 뭘까. 김상희 의원이 "장외투쟁인가?"라고 묻자 천정배 의원은 "원내에 있으니까 원내투쟁이지"라고 답했고, 장세환 의원은 "우리가 원외 인사니까 원외투쟁이다"고 답했다. 결국 "원내에서 벌이는 원외투쟁"으로 결론 내려졌다. 장세환 의원은 "다른 의원들은 상임위 활동 열심히 하시고 시간 날 때마다 잠깐 들르는 것만으로도 농성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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