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오래 있어본 사람은 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순간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빛이 넘치는 빛을 대신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둠이 증명하는 것은 빛의 부재가 아니라 대기와 대지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빛이다. 사물이 스스로 빛을 내는 어두운 밤, 자신이 가진 본래의 빛만 남고 다른 빛이 소멸하는 밤은 낮의 이면에 숨겨진 사물의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밤이 낮의 반대이거나 일상의 가장 비루하고 척박한 순간이라고 여겨서는 결코 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고통스럽고 힘겹다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밤과 같은 현실은 역으로 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밤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게다가 밤에도 사람의 일상은 고스란히 이어져야 하니 더욱 고단하게 꾸역꾸역 살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고단함과 척박함은 반드시 오늘의 현실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오늘의 어려움이 찾아오게 된 이유와 그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물으며 거짓 절망과 거짓 희망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오랜만에 발표한 EP [Nine Days Or A Million]에 수록된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깊은 밤 안개 속>은 어쩌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곡인지도 모른다. 깊은 밤인데다 안개까지 깔린 암흑과 '절벽을 넘어서 바다로 흘러가는 작은 불빛'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답이 따로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담담하고 처연한 남상아의 보컬은 밤과 안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이의 처절한 고뇌를 드러낸다. 깊은 밤 안개 속에서도 사랑을 노래하고, 사라지면 안된다고 버티며 밤과 안개의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절벽을 넘어서 바다로 흘러가는 작은 불빛 따라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이처럼 숨가쁘게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관록의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는 듣는 이의 해석과 무관하게 이미 아름답다. 철학적이고 탐미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어온 이들의 신곡 <깊은 밤 안개 속>은 나지막한 속삭임의 진정성이 서서히 상승하며 멜로디컬하게 폭발할 때 올해의 말미에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싱글을 만났음을 필연적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한국 인디 씬에 구축해온 3호선 버터플라이의 독특한 아우라와 허클베리 핀을 거쳐 3호선 버터플라이에 안착한 보컬 남상아의 파괴력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곡은 고요하며 절박하다. 시대가 새겨준 서정시이건 밴드의 역량이 잘 드러난 매력적인 싱글이건 어느 쪽도 부정하기 힘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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