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생 조카.
정사각형 모양의 한자(漢字) 노트에 정성스레 한자(漢字)를 쓰고 있었다.
'思'라는 한자를 아홉 번 째 정성들여 쓰고 있었다.
예쁘고 예뻤고 대견하고 대견했다.
갑자기, '혹시?'하는 생각이 들어
'思' 바로 아래에 적혀있는 '생각 사'라는 훈과 음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지금 쓰고 있는 글자의 의미가 무엇이고 음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각하는 표정도 짓지 않고 약간의 부끄러운 표정만으로 대답하였다.
"몰라요"
놀랐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슬픔이 몰려 왔다. 웃음도 안 나왔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그렇다면 왜 지금 한자를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
숙제이니까 쓰고 있노라고, 이것을 다 쓴 후 검사 맡아야만 컴퓨터도 할 수 있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노라고. 오히려 삼촌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의아한 표정으로, 결코 나직하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유를 알았다. 실력 향상 안 되는 이유를 알았다.
시간도 돈도 땀도 엄청나게 투자되었지만 실력은 제자리인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머리에 쓰지 않고 노트에 썼기 때문이었다.
숙제를 위한 숙제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알고 싶은 욕구에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공부였기 때문이었다.
노트에 쓰라 하지 말고 머리에 쓰라고 해야 하였었는데........
노트가 아니라 머리에 써야하는 것이라고 침 튀기면서 외쳤어야 하였는데.......
숙제가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학습하기 위한 것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학습을 위한 것이라면 노트에 적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머리에 적는 것이 목표이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도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노트에 적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님도 잘 정리된 노트를 보고 흐뭇해한다.
아무 생각 없이 숙제를 위한 숙제를 하여서는 안 된다.
잘 정리된 아이들의 노트나 연습장을 보고
동그라미 치면서 미소 지을 일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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