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국내 생산현장으로 가보면 만만치 않은 쟁점이 숨어 있다. 총 생산량에서 국내 생산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10월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량은 151만2681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수치인 145만7255대를 이미 초과한 것이며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간 해외생산 150만 대를 넘어선 기록이다. 반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현대기아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한 자동차 대수는 130만1206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5% 줄었고 올해 해외에서 생산·판매된 대수보다도 21만 대 가량 적다. 해외 판매 전략이 국산차를 배에 실어 수출하는 방식에서 해외공장을 거점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중심축을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11월 3일자) |
아직 올해가 두 달 가까이 남았지만,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은 이미 지난해 규모를 넘어 150만 대를 돌파했다. 연말에 최종 결산을 해봐야겠지만, 이 추세라면 해외생산 180만 대 돌파도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 불황 시기에 현대기아차의 눈부신 성장 속도가 놀랍기도 하지만, 그냥 혀만 내두르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해외생산이 급증하는 대신 국내생산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현대기아차 측이 발표한 각종 보도자료 및 공시 자료들을 종합해서 재구성한 것인데, 놀랍게도 해외생산이 늘어나는 꼭 그만큼 국내생산 물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 자료와 공시 자료는 1000~2000대 가량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정도 차이는 대세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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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산 150만대 돌파의 이면…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 곧 뒤바뀐다?
위의 표와 같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생산을 합해 놓고 보면,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비율이 65 : 35에서 점차 60 : 40 으로 근접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차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심상치 않다.
아래 표는 현대차의 각종 보도자료 및 공시 자료를 토대로 2008년 한 해, 2009년 1~10월의 생산물량을 비교해 본 것이다. 이를 보면, 현대차의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비율이 60 : 40에서 점차 50 : 50 으로 근접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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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용히 국내물량을 줄이면서 해외물량을 늘리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인 2010년에는 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뒤바뀌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
현대차 체코공장이 연말부터 기아차 미니밴 '밴가'(YN)를 생산할 예정이고, 현재의 i30 생산물량도 늘릴 예정이다. 바야흐로 현대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혼류생산'하는 최초 사례가 나온 것이다. 현대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현재 노사가 맺고 있는 단체협약상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그룹은 각종 언론에 이 내용을 기정사실로 공표하고 있다. 일방통행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아차 조지아공장이 이달부터 쏘렌토R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내년에는 현대차 브라질·러시아 공장이 착공되어 내후년인 2011년부터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에 제3공장까지 추진된다고 한다. 내년이 아니라, 어쩌면 올해 연말에 가서 통계를 다시 낼 경우,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비중은 이미 역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해외생산 빌미로 한 고용 공격 본격화되나
국내 생산물량의 축소에 대해 현장의 노동자들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위기를 느끼고 있다.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국내 생산물량을 줄이면서 해외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 당연히 (국내) 생산물량 감축을 근거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공격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현대차 사측이 각종 홍보물을 통해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사측의 입장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초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계의 요구였지만, 최근에는 현대차가 이를 간절히 원하는 모양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생산물량을 지속적으로 줄이다 보면 어차피 잔업·특근 물량은 나올 수가 없다. 당연히 자본은 임금삭감이나 노동강도 강화를 전제로 한 주간연속 2교대 추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밀어내는 공격을 단행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이간질과 분할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높다. 완성차의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부품사 구조조정도 전면화되게 된다.
▲ 지난 12일 중국 공장을 찾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국내 생산물량을 줄이면서 해외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연합 |
해외공장에서의 생산 단가가 낮기 때문에 차라리 국내공장을 폐쇄하고 해외생산만 가동하겠다고 협박하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 이것은 아주 먼 얘기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여지는 일이다.
정리해고 공세가 한창이던 8월 말, 금호타이어 김종호 사장은 "중국 베트남 등 해외의 5개 공장은 점점 경쟁력이 올라가는 와중에 한국 공장은 제품을 만들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로 가고 있다"며 "현재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무노동 유임금 문화를 이번 기회에 바꾸지 못하면 수년 내에 국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헤럴드경제> 8월 27일)
280명 정리해고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광주의 에어컨업체 캐리어도 마찬가지다. 캐리어는 모기업인 미국 UTC 그룹 방침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 UTC그룹에 속한 한국오티스 엘리베이터도 창원공장을 분사하면서 지난 6월 300여 명을 감축했다.
프랑스계 자동차부품업체인 발레오공조코리아(옛 대한공조)는 지난달 말 폐업을 선언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지난 9월 희망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노조의 반대로 불가능하게 되자 10월 말 사업장 청산 발표와 함께 폐업에 들어갔다. 2004년 프랑스 발레오그룹에 인수된 발레오공조는 부채비율이 28%에 불과하고, 지난 4년 연속 순이익을 기록한 회사이기도 하다. 이들 다국적기업들은 "노조가 구조조정 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사업장 폐쇄나 철수를 추진하겠다"(<헤럴드경제> 11월 11일자)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싼 값의 자동차 만이 아니라 실업까지 함께 얻는다
이러다보면 언젠가는 현대기아차의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가 국내에 역수입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빅3'는 이미 자신의 해외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미국에 역수입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낮은 인건비와 생산단가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니냐"고. "역수입이 벌어지더라도 싼 값에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다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 대가로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희생해야 한다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고 싼 값에 자동차를 공급하는 대신, 국내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한다면?
미래에 벌어질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스토리가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미 연방정부는 '빅3'와 부실 금융기업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한 바 있다. 그 결과 주요 기업의 파산은 피했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며 마치 경제가 공황에서 벗어난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폐차 현금지원에도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하면서 자동차 판매시장도 회복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구제금융 재정투입으로 파산을 겨우 피한 기업들은 어김없이 20~30% 가량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으로 쫓아냈고, 해외생산을 늘리고 국내생산을 줄이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외관상 기업의 채산성과 수익률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로 미국 실업률은 26년 만에 최고치인 10%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미국 노동자들은 싼 값의 자동차만이 아니라 실업까지 함께 얻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미국 정부가 투입한 막대한 구제금융의 결과로 말이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업계 또한 일본 내 생산을 줄이고 해외생산을 늘릴 예정이어서 국내 고용을 줄일 것이라 얘기한다. 자, 그럼 중국에 제3공장을 추진하는 현대차와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지금은 신문 기사들을 다시 읽으며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동차와 부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시간이 있을 때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공격이 전면화 되었을 때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인(人)사이드 경제' 연재를 시작하는 오민규 씨는 전국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이다. 노동 운동가로 현장 노동자의 곁에 있는 그는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각 산업과 우리 경제의 본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노동자가 생존권을 위협받곤 하는 현실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과 함께 너무 쉽게 가려져 버린 진실을 찾아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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