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선4구역의 모습. |
삼선4구역, 그리고 성북대안개발프로젝트
삼선4구역은 위로는 서울성곽에 둘러싸여 있고 아래로는 삼군부총무당(성북구 지역문화재)을 끼고 있는 동네다. 이렇게 문화재를 아래위로 끼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개발에 제한이 있어 2004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추진이 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개발 지역이 그렇지만 삼선4구역 역시 주택들이 노후화되어 있어 정비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러나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 차례 건설사들이 기웃거리다가 빠지고 당장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어떤 대안도 나오고 있지 않아 주민들의 속은 답답하기만 하다. 60퍼센트 이상 되는 국공유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경우 매달 내야 하는 토지이용료때문에 걱정과 부담이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동네로 이사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고 몇 십 년을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기도 막막하다.
개발은 주거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개발 후 원주민들의 정착률은 매우 낮다. 그리고 본래 동네가 갖고 있던 사회문화적 특성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구역 전체의 집을 부순 뒤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몇 배로 오른 고가의 집값으로 임대·분양하는 것이 현재 개발의 모습이다. 주민들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고 민간 사업자들에게 개발수익을 무한정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개발. 이러한 개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성북주거복지센터, 녹색사회연구소, 한국도시연구소, 주거권운동네트워크가 모였다. 그렇게 성북대안개발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삼선4구역 주민들과의 첫 만남
성북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재개발 사업이 예정되어 있는 지역이다. 프로젝트팀은 성북구에서 대안적인 개발 사례를 만들어보자는 목적을 갖고 삼선4구역 주민들을 만나왔다. 2008년 9월 처음으로 주민 설명회를 준비하면서 '대안개발이라는 낯선 단어가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전단지와 현수막으로만 홍보를 했는데 과연 얼마나 올까' 등 참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70여 명의 주민들이 설명회장을 가득 메워 동네와 집의 환경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첫 인연을 맺은 후 좀 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프로젝트팀의 고민과 계획을 나누며 다양한 사례와 개발사업 방식 등을 함께 공부하기 위해 워크숍을 몇 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워크숍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상당수가 고령층이고 이런 워크숍에 익숙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일부 주민들만 주로 이야기를 하고 많은 주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고민과 의견이 모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주민조직이 없던 삼선4구역에서 주민총회가 열리고 주민대표자들이 선출되었다.
▲ 2008년 10월 삼선4구역 주민들과 함께 한 1차 워크숍 '살만한 집을 꿈꾸며 떠나는 숨은보물찾기' |
살만한 동네, 그 변화의 지점을 향해 한 발짝 더
올해는 주민들과 함께 삼선4구역의 주거환경 개선 방안을 만들어 성북구와 서울시에 전달해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총회를 통해 주민들을 만나왔다. 초반에는 공공이 개입해서 진행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전환하여 전면 재정비 방식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 비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에스에이치(SH)공사와 해비타트에서 짓는 것을 가정했다. 그러나 비용을 산출해보니 구릉지에 위치해서 보다 많은 공사비가 예상되고 이후에 분양할 수 있는 주택이 나오지 않아 개별적으로 부담해야 할 임대료 혹은 분양가가 너무 높게 나왔다. 이렇게 재정비를 하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주민들의 관계와 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개성있는 모습으로 형성된 집,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한 골목길…. 역사·문화적으로 동네가 갖고 있는 특성들을 보전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해보기로 했다.
물론 프로젝트팀이 제시한 방안으로 주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았다. 주민들의 욕구가 너무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민들과 자주 만나면서 솔직한 이야기까지 꺼낼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도로 프로젝트팀은 얼마 전 구역 내에 상시적으로 주민들을 만날 장소를 마련하였다. 바로 삼선4구역 295-4번지. 광주에 있는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비어있던 집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프로젝트팀이 구상하고 있는 그림을 이곳에서 시도해보려고 한다. 당장 주민들이 친근하게 오갈 수 있도록 집의 내외부를 공공미술팀과 함께 정리하고 꾸며볼 계획이다.
삼선4구역의 또다른 이름, 장수마을
개발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각종 갈등과 비리, 대립의 소음들이 터져나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개발사업에서 주민들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과 프로젝트팀은 삼선4구역을 '장수마을'이라고 부른다. 주민들이 원하는 동네의 느낌과 이미지를 살려 이름을 지어보자고 했더니 고령층이 많은 동네 특성상, 그리고 앞으로도 주민들 모두가 장수하자는 의미에서 장수마을로 불렀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주소체계가 변경되면서 삼선4구역의 길에는 '장수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삼선4구역과 장수마을의 인연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대구 삼덕동으로 답사도 다녀왔다. 주민자활사업, 벽화 그리기, 그리고 사회적 기업까지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천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10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동네였다. 그 시작은 담장 허물기였다고 하는데 그 에피소드가 참 인상적이다. 한 주민이 이사온 집의 마당을 동네 주민들과 나누고 싶어 집주인을 설득해 담장을 허물고 골목정원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동네가 변화하는데 있어 그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성북대안개발프로젝트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발 광풍과 함께 땅값이 치솟을 대로 오른 서울. 서울에서 가장 많은 개발사업이 예정·진행 중인 성북구에서 150세대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동네의 변화는 한없이 작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신의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하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자신의 고민을 동네 주민 공동의 고민으로 엮어내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주체가 된다면 그 변화는 정말 대안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이 좀 더 쌓이고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들리는 소음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런 두근거림을 안고 프로젝트팀은 삼선4구역 장수마을 블로그(http://samsun4.tistory.com/)를 만들었다. 앞으로 여기에 채워질 내용들이 무엇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도 숨을 헐떡이며 삼선4구역을 가보려 한다.
(이 글은 "인권적인 재개발이 가능할까"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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