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라면서도 법안은 유효하다? 헌법재판관들은 국회의원들이 평소에 일사부재의를 무시하면서 법안 처리하는 핫바지 취급을 한 거다."(민주당 이종걸 의원)
10.28 재보궐선거 승리의 기쁨도 잠시. 민주당은 29일 헌재의 미디어법 유효 결정에 웃다가 울었다. 의원총회에서 재보선 당선자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등 세레모니를 진행했지만 분위기는 이내 무겁게 가라앉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헌재의 결정에 "이날은 '헌치일'로 기록될 것", "민주주의가 우롱당했다"며 격한 분노를 나타냈지만, 이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이 좁고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아 허탈한 모습이었다.
민주 "언론악법 폐개정·김형오 사퇴" 1차 타깃
당장은 헌재가 대리투표와 재투표에 대해 위법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음에 민주당은 주목하고 있다. 절차적 문제 제기에 대한 정당성은 확보했기 때문에 원내에서 미디어법 개정과 김형오 의장 사퇴에 타깃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은 "헌재가 절차와 과정에 대해 확실하게 흠결을 인정한 것"이라며 "정치적 자율권을 갖고 재협상을 통해 원만하고 합리적인 절차로 보다 완성된 언론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정치재판소'로 개명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불행하게도 헌재가 최종심이어서 불복할 제도가 없다. 미디어법 폐지안을 내고 개정하는데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춘석 의원도 "헌재 결정의 취지는 국회 안에서 논의를 다시 해 개정하라는 것"이라며 "책임 자체를 헌재에 떠넘기기보다는 공론의 장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의원 공동 결의문을 통해 "민주당이 단결하고 국민의 여망을 모아 언론악법 폐지개정에 들어가겠다"며 "시민사회단체와 적극 연대하고 국민의 뜻을 국회에서 정확히 관철해내겠다"고 밝혔다.
또한 강기정 의원은 "김형오 의장이 본인의 책임은 분명히 지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논란은 오늘로 종결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며 "직권상정 날치기의 위법을 헌재가 확인했기 때문에 김 의장은 자신의 발언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어제 차기 국회의장도 당선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결의문을 통해 "헌재도 인정한 국회표결 절차상 위법은 그 원천적 책임이 김형오 의장에게 있다"며 "김형오 의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민주당은 10.28 재보선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여론전을 펼쳐나갈 가능성이 높다. 박병석 의원은 "이번 재보선 결과에는 세종시와 4대강에 대한 심판 의미도 담겨져 있지만, 미디어법 불법 처리에 대한 국민의 심판도 함께 담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정세균 대표는 "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때도 헌재는 절차는 위법이지만 법률은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그 때 경험을 추적해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야당과 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해 정부와 여당이 물러섰었다.
의석수와 시간은 한나라당 편
하지만 민주당의 전략은 '의석수'와 '시간'의 열세 상황에서 실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조배숙 의원은 "헌재는 국회 내에서 시정하라고 했다지만 여야 의석 분포상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벌써 "위헌시비 종결"을 선언하고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시간도 민주당에 불리하다. 11월부터 법의 효력이 발생되고 일부 언론사나 기업들이 방송사 지분인수 및 법인설립을 통해 미디어법 시행을 기정사실화 시켜버리면 미디어법 개폐정 시도는 소급입법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미 몇몇 거대 신문사들은 방송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10.28 재보선 승리로 얻은 좋은 분위기를 자칫 헌재 결정으로 다시 무기력한 분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다.
"돌아오라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민주당 김영진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은 이날 헌재 결정에 앞서 모임을 갖고 정세균, 천정배, 최문순 의원의 의원직 사퇴서 제출 철회를 결의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의원총회에 제안했다. 김 의원은 "재보선 민심의 바탕은 우리 대오를 새롭게 정비해 총진군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합심 단결을 위해 정 대표에게 제출된 사퇴서가 반려돼야 하고, 국회의장에게 제출된 정 대표와 천정배, 최문순 의원의 사퇴 철회 촉구하는 의원 총의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혜영 의원도 "재보선에서 3명의 의원을 우리 진영에 보강해 준 국민의 뜻은 모든 힘을 다해 원내외를 가리지 말고 투쟁하라는 지시였다"며 의원직 사퇴 철회를 제안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28일 화계사에 찾아가 2만 배를 하고 있는 최문순 의원을 만나 점심을 하고 천정배 의원과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중진들의 의원직 사퇴 철회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종걸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사퇴를 철회하라는 것은 개인적 결정에 대한 결례일 뿐 아니라 우리가 내걸었던 정치적 진정성에 대해 국민들이 역회전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결국 의총 말미에는 이 원내대표의 주도로 정세균 대표, 천정배, 최문순 의원 등에 대한 의원직 사퇴 철회 요구 결의가 이뤄졌다. 당초 계획과 달리 이날 오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의원직 사퇴를 발표해버린 장세환 의원도 추가됐다. 하지만 천정배, 최문순 의원 등이 당장 국회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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