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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세조시'로 개명해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이명박 대통령, 어떻게 말을 바꿨나

이른바 '세종시'를 둘러싸고 갈수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종시'는 애초에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수도'로 추진했다가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걸려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름을 바꿔서 추진했던 신도시이다. 이 과정에서 '관습헌법'이라는 희한한 편법 논리가 제시되어 세상을 경악하게 하기도 했다.

아무튼 노무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줄인말을 '행복도시'로 제시하며 이 신도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사회적 목표는 국가 균형 발전이었고, 그 공간적 목표는 생태도시였다. 두가지 목표가 다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극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도 '행복도시'에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도시'의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들을 이전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여기에 전국 11개의 '혁신도시'가 결합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들을 전국 각지로 분산시켜서 망국적인 서울/수도권 과밀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대상이 된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 서울/수도권의 기득권 세력, 그리고 이념적 보수 세력의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서울/수도권의 과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망국적 주장이 횡행했고, '노무현은 빨갱이'라는 빨갱이병 환자들의 망상적 주장이 난무했다.

'행복도시'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정치인은 서울시장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서울/수도권의 과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실상은 어떤가? 우리 국토의 크기는 약 10만제곱킬로미터이다. 서울의 크기는 약 606제곱킬로미터로 국토의 0.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은 약 1만1140제곱킬로미터로 국토의 11.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국토의 0.6퍼센트밖에 안 되는 서울에 전체 인구의 22퍼센트에 가까운 10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국토의 11.2퍼센트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30퍼센트에 가까운 1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울/수도권의 인구는 곧 전체 인구의 50퍼센트를 넘어서게 된다.
ⓒ통계청

서울/수도권의 과밀은 병적인 상태이다. 세계 어디에도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모여 사는 곳은 없다. 서울/수도권은 망국적 과밀 때문에 집값, 환경, 범죄 등에서 잘 보이듯이 내파하고 있고, 반대로 비수도권은 일부 대도시들을 빼고는 망국적 과소를 겪으며 처절하게 외파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서 '행복도시'를 더욱 우수한 '이명박표 세종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공언은 2년 만에 완전히 뒤집어질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용정책처럼 '세종시'도 그저 '정치구호'로 제기했던 것인가? 이제 누가 그의 말을 믿고, 이 정부의 말을 믿을까? 여기서 잠시 한 자료를 통해 '행복도시'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바뀌어왔는가를 살펴보자.

"행정도시에 대한 이명박 후보의 발언" (<청와대 브리핑>, 2007년 9월 21일)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 분할 작업인 만큼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 지난 2005년 3월 여야 합의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이 통과되자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했던 말이다. 당시 이 후보는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정말 통탄할 일"이라며 "수도 이전과 수도 분할에 정략적으로 담합한 정치권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후에도 "수도 이전이 위헌이듯 수도 분할도 위헌"(2005년 7월 18일), "내가 충남지사였어도 반대했을 것"(2005년 10월 13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역시 포퓰리즘"(2005년 11월 10일)이라며 비판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대선을 앞두고 180도 달라진다. 2007년 9월 12일 이 후보가 경선 이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도 충청권이었다.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이 후보는 건설 현황을 보고받고는 "훌륭한 계획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2007년 2월 16일 로이터통신과의 기자 회견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관련, "국가적으로 보아 낭비적"이라며 "오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5월 29일 광주정책토론회에서도 "혁신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그리고 또 무슨 신도시 만든다고 토지보상비를 쏟아 부어 부동산 투기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애꿎은 서민들에게까지 세금폭탄을 퍼부었다"며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을 싸잡아 비판했다. (…)

그래 놓고 7월 2일 다시 호남지역을 방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추진 현장을 방문해서는 "보다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언론과의 인터뷰(<문화일보> 2007년 7월 6일자)에서도 "수도권 규제 완화와 동시에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면서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골자로 하는 혁신도시 개발 사업 등을 승계할 수 있다"고 했다. (…)

서울시장 시절 이 후보는 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며 "서울의 과밀은 해소되고 있다"(2005년 3월 24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1970~80년대에는 인구의 과밀을 걱정했으나, 1990~2000년대에는 인구의 과소를 걱정할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 이 후보는 정말 지금 수도권 과밀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생각하는가. 1960년에 20.6%였던 수도권 인구가 지난해 48.7%까지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2011년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다는 통계가 나온다.


이렇게 강력한 비판을 이어가던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2007년 11월 28일 충남 연기군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과학기업도시 기능을 더해 '이명박표 세종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세종시'를 대대적으로 축소하려 하고 있다. '세종시'만이 아니라 전국의 11개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로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중앙정부의 부서와 공기업도 지방으로 이전되지 않을 모양이다. 그리고 서울/수도권 과밀은 더욱 악화될 모양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비수도권 지역의 애타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수도권규제완화를 강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 나라는 더욱 더 급속히 '서울/수도권 공화국'으로 바뀌고 있다.

'세종시'를 무력화할 것이라면 그 이름부터 바꾸는 게 좋겠다. '세종'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에 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며 우리 역사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세조시'로 개명하는 게 좋겠다. 국가 균형 발전을 무력화하고 서울/수도권 과밀을 더욱 악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면, 권력을 찬탈해서 숱한 문제를 야기한 세조의 이름을 붙이는 게 적절하지 않겠는가? '세종시'를 만들 것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것은 망국적인 서울/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신도시여야 한다.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들을 이전하는 것은 그 유효한 수단이다.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수도 분할'이라면, 서울/수도권 과밀을 악화시키는 것은 '국가 분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도 분할'이 큰 문제라면, '국가 분할'은 더욱 더 큰 문제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들과 공기업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은 '수도 분할'이 아니며, 서울/수도권 과밀을 악화시키는 것이 '국가 분할'일 뿐이다. 우리는 '수도 분할'이라는 있지도 않은 문제가 아니라 '국가 분할'이라는 엄중한 망국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좁디좁은 서울/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남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의 기능들이 대부분 모여 있는 것은 정말이지 안보의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은 '4대강'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토건국가의 토건정치라는 관점에서 더욱 충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 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수도권 지역이다. 여기서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면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 쪽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강행하고, 그 일환으로 '세종시'의 축소 내지 무력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정운찬 총리는 이에 따른 500만 명의 인구가 있는 충청에서 지지의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계의 인선이었다. 나아가 1300만 명의 인구가 있는 영남에서 가능한 한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낙동강 퍼주기'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망국의 '4대강 죽이기'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10개월 전에 무려 25억 원을 들여서 완공된 보를 헐겠다고 발표했다. 엄청난 혈세의 탕진과 토건족의 배 불리기는 이런 식으로 강행된다. '세종시'의 축소 내지 무력화에서도 얼마나 많은 혈세의 탕진과 토건족의 배 불리기가 강행될 것인가?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서울/수도권 과밀의 악화에 따른 문제보다 나쁠 수는 없다. 지금 이 나라의 곳곳에서 '세종시'는 망국의 길이며 '4대강'은 흥국의 길이라는 '선동'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다. 저 하늘 어디선가 세종께서 이곳을 굽어보시면서 참으로 한심해서 혀를 차고 계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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