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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가야할 길 : 연합정치의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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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가야할 길 : 연합정치의 제도화

[정치개혁 강좌]<14> 합의제형 헌정체제 디자인

<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이번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선학태 전남대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정부형태를 보는 합의제형 헌정패러다임의 기본 관점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지난 8월 31일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대통령 권력을 국무총리에게 넘겨주는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부통령을 두는 4년 중임 대통령제 중에서 택일 하자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제에 여전히 애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제는 대한민국 헌정 이후 한국화로 뿌리를 내렸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욕망이 강렬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합의제형 헌정패러다임은 국정의 효율성보다는 사회갈등 조정이라는 관점에서 정부형태의 적합성 문제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과연 헌법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정부형태가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조정 관리하는 데 적합할까?

우선 이원정부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국가수반), 의회의 신임 여부에 의존하는 총리(정부수반)가 공존하는 정부형태를 말한다.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회 다수당인 경우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이 국정을 사실상 주도하는 대통령제에 근접한다. 반면에 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된 경우 다수당 총리와 소수당 대통령으로 구성되는 이원정부제는 국정 주도권이 총리에게 넘어가는 내각제에 근접한다. 이원정부제는 이처럼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형태가 달라지는 제도적 유연성과 탄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원정부제의 여러 문제점 중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권력과 돈줄을 거머쥐고 있는 쪽은 중앙정부다. 따라서 대선과 총선이 중앙정부 장악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지역정당들 간 피 터지는 사활 전으로 전개되는 정치적 양극화 시나리오가 재연될 것이다.

그렇다면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대안인가?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채택된다면 현행 중앙집권제와 포개질 것이고, 특정 지역 출신 대통령의 승자독식이 사실상 8년으로 연장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때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다른 지역의 정치적 상실감과 박탈감을 상상해보라.

물론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모두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덜어내는 데는 다소나마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 중앙집권의 틀 속에서는 지역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게 분명하다. 더욱이 그러한 두 정부형태 중 어느 것이든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 간, 그리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분출하는 계층 노사 간 갈등을 제대로 관리 조정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까 자못 의문이 앞선다. 물론 그런 갈등조정 문제는 법률적 정책적 차원의 관할 사항일 수 있다. 하지만 법률과 정책이 제아무리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만들어져 있어도 권력구조가 사회갈등 조정에 부적절하면 사회통합에 실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합의제형 헌정 패러다임에서 이원정부제냐 4년 중임 정·부통령제냐, 그도 아니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냐 같은 택일적 논쟁은 주요 변수로 떠오르지 않는다. 각 정부형태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합의제형 헌정 공학은 그 보다는 어떻게 정당 간 연합정치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갈등과 분열을 완화할 수 있느냐 하는 관점에서 정부형태 문제에 접근한다.
▲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8월 31일 헌법연구자문위 김종인 위원장으로부터 권력구조 개편,정보기본권 신설 등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고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 담은 개헌안 최종 보고서를 전달받고 자문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국회 차원의 연합정치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는 여러 분열과 갈등을 정당체제로 반영시키기 위한 독일식 '2표 연동형 혼합제'(제5편 참조)가 채택되면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크게 초과하는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정당지형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한층 더 다당제로 재편될 것이다. 이 경우 국회에서 정당 간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유지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처럼 대통령제 국가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거나 근소하게 과반 의석을 넘는 의회 구도가 발생할 경우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의회정치의 운영을 위한 해법은 정당 간 연합정치 외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 이 때 정당 간 연합정치가 형성되는 근거는 지향가치와 정책이 되는 게 순리이다. 연합정치는 정당이 자기조직을 유지하고 다른 정당과 경쟁하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연대 제휴하는 정치다. 정책 어젠다에 대한 협력과 합의를 전제한다는 의미에서 무원칙한 '야합'과 다르며 정당조직을 해체하고 다른 정당과 통합하는 '합당'과도 다르다. 국회에서의 연합정치는 정책 사안별로 '한시적'으로 이뤄지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중요 정책 과제를 해결하고 각기 따로 가는 정치이다.

연합정치에서 정당의 작동원리는 절제, 협력, 합의에 기초하는 정당 간 교차 파트너십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정치에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패권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다당제를 만들어 놓기 때문에 여러 정당들 간에 교차적 협조가 아니면 파국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의정활동 과정에서 정당 간에 상호 협상하고 타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수파가 반드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책 사안별로 다수가 유연하게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 특정 정당들 간의 무한 대결을 피할 수 있다.

우리 국회에서 이러한 정당 간 연합정치가 보편화되면 곧 시민사회와 시장에서 활동하는 여러 집단 계층 노사 간 파트너십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독일식 선거제도가 채택되면 사회적 기반에 뿌리를 둔 정당이 출현하고 이들 간에 이뤄지는 연합정치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와 시장의 여러 집단 계층 노사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역으로 시민사회와 시장의 여러 집단 계층 노사 간의 협력은 정당 간의 정책협의를 촉진하는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국회에서 이뤄지는 이런 정당 간 연합정치가 우리 정치의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정책 및 입법 능력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민주개혁 평화세력은 민주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각종 선거에서 지지표의 분산으로 민주평화 개혁세력의 패배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정당 간 연합정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실제 최근 미디어법 등 일부 정책사안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그들 간에 연합정치가 모색되기도 했지만 가치와 정책에 따라 보다 적극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이때의 연합정치는 정당통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 민주정당의 독자성과 정체성이 존중되는 제휴와 연대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유주의 개혁세력인 민주당과 탈지역주의 급진적 진보세력인 민주노동당은 적극적인 정책연합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정책연합은 단지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반MB정부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시키는 정책대안을 창출하는 데 기반을 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당 간 연합정치는 대선과 총선을 전후하여 정치 및 선거 공학적으로 이합집산하는 정당이 아니라,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과 정책적 지향을 가진 민주정당의 정립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정당체제의 제도화 길이 열릴 수 있다.

나아가 한국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간 '비적대적 공존과 상생'이 필요하다. 이건 가치와 정책에 따른 보수와 진보의 다원화와 더불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간의 연합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식 선거제도 도입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어느 정당도 패권정당이 될 수 없다는 대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이를 통해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all or nothing game)과 같은 '사생결단'식의 대결 그리고 모든 쟁점의 정략적 쟁점화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연립정부의 제도화

의회 차원에서의 정당 간 연합정치는 대통령제 하의 연립정부의 제도화로 이어지는 게 순리이다. 특정 정당, 특히 소수정당이라는 이유로 항구적으로 중앙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최다수당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정치시장의 경직성인가. 단일 정당 정부구성은 국정의 책임성을 분명히 한다는 장점이 없지 않지만 집권당과 야당 간에 정면충돌을 촉발하고 국가정책의 갑작스런 변경으로 국정의 일관성을 잃어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우리는 작금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원안 수정 기도' 대북 정책기조 변경 등에서 이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게르만유럽 국가들은 사회분열과 갈등구조에 뿌리를 박고 있는 각 정당이 의회 차원에서 연합하고 이를 토대로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다종교, 다계층, 다지역 등에서 비롯된 갈등관계를 조정 관리한다. 그들 국가의 연립정부는 중도우파 정당 간, 중도좌파 정당 간, 그리고 좌파정당과 우파정당 간에 성립되곤 한다. 가장 의석수를 많이 차지한 제1당이 연립정부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반드시 제1당을 중심으로 연립정부가 구성되지도 않는다. 이는 정치시장의 유연화를 의미하고 이를 통해 정당 간 무한 대결이 사라질 수 있다.

연립정부는 일반적으로 의원내각제에 '궁합'이 맞다. 그렇다고 언제나 의원내각제에서만 연립정부가 구성된 게 아니다. 만일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그건 '단세포적'인 발상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도 특정 정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경우에 정책적 거리가 가깝거나 국민통합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정당을 연정 파트너로 선정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대통령제 하의 연립정부는 또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원내 소수정당일 경우에 구성된다. 물론 대통령제 하의 연립정부 구성은 통상적이지는 않다. 내각제보다 유인이 약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제 하에서도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능하거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비록 정치적 상징 효과 수준이나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정당 출신 인물을 내각구성에 참여시켜 일종의 행정권의 공유를 실현하곤 한다. 예컨대 민주당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인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입각시켰고 민주당 출신인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상원 의원인 코헨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았던가. 브라질, 코스타리카, 우루과이, 포르투갈 등의 대통령제 하에서도 연립정부는 빈번하게 구성된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강화되고 다당제 하의 보수-중도-진보 정당체제가 수립되는 정치적 조건에서 원활한 정부운영과 책임정치는 대통령제 하의 연립정부의 제도화를 통해 가능하다. 대통령제 하에서 정당 간 연립내각을 구성할 경우 획일적인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정당후보 득표율에 따라 혹은 의회에 진출한 정당 간에 각료직을 배분하여 정당들에게 일정한 권력지분을 보장하는 방식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다만 연립정부의 구성을 위한 협상과정은 단순히 각 정당 간 각료배분이나 상호 정치적 이익의 교환 과정에 그치면 연립정부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다. 대신 경제정책, 사회정책, 노동정책, 한반도 평화정책 등의 진전을 위한 종합적 정책비전이 제시되는 게 연립정부의 정책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연립정부 사례 평가

단순히 지역주의를 극복한다는 발상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 1997년 DJP연합에 기반한 김대중 정부의 수립이 바로 그런 사례이다. 특히 DJP연합은 정당 간 정권교체라는 민주정치의 진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호남 출신 대통령과 충청 출신 총리의 등장으로 영호남의 갈등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DJP연합은 정치적 '혈통'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념적 지향성과 정책기조가 다른 지역정당 간에 오직 정권장악이라는 정략적 목표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한나라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어떠했는가? 그의 대연정 제안은 내각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수제에서 합의제로 정부구성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은 집권 초기, 아니면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을 때에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정치적 상징 효과도 국민들의 이해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지지율이 20% 안팎을 오르락 거릴 때 그것도 집권 중반기에 이러한 제안을 했다는 사실은 대연정으로의 전환을 하겠다는 정치적 진정성이 아니라 국정 책임 분산을 위한 정략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의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열린우리당-한나라당 간의 대연정 형태의 연립정부는 서유럽 국가들의 연립정부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나 가능하지, 평상시에는 그 구성이 좀처럼 쉽지 않다.

연립정부가 구성되는 근거는 각 정당의 이념적 가치와 정책이 돼야 한다. 한국 정당의 이념적 가치와 정책기조의 인접성과 유사성으로 고려 할 때 노무현 정부 당시 연합 내부의 정책갈등 소지가 적은 소연정(최소승리연합)은 당시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민주당간의 연립정부 구성이었을 것이다. 이 중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분당 이후 쌓인 정치적 앙금으로 인해 연립정부의 구성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의 연립정부가 정책조정에 있어서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했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지역통합 전략의 일환으로서 일시적으로 영호남 주민의 심정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계층 노사 갈등 해소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나라당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블루오션 전략의 한 해법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연정파트너로 선택했더라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다. 물론 급진 진보세력을 경계하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고려할 때 그것은 한국 국민에게 하나의 정치적 충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간에는 연정의 조건, 즉 일정부분 정책지향의 공유성 및 지지기반의 오버래핑이 존재했다.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진보세력간에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곤 했던 서유럽 국가들의 경험에서 비춰 볼 때 열린우리당-민노당 연립정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복귀시킴으로써 사회적 대타협을 유도할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연립정부 회의론과 가능성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과연 연립정부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이며, 설사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 작동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회의론이 정치권이나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연립정부의 원활한 구성과 작동은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문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존재할 때 연립정부의 필요성은 반감되거나 제기되지 않는다. 노르딕유럽 국가들은 온건다당제 하에서도 정당 간 연립정부를 수립하지 않고 단일정당에 의해 소수 정부가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래도 국정혼란과 마비는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가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 정당들의 경우 입으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하지만 대화와 타협, 관용과 포용의 행동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연립정부의 제도화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인들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연립정부가 제도화되면 정당 간 무한 경쟁과 대결 문화가 대화와 타협 문화로 바꿔질 수 있다.

게르만유럽 국가들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연립정부의 수립이 처음부터 대화와 타협과 합의 문화에 바탕을 둔 게 아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들 나라는 언어 종교 이념계급 계층 지역 간에 대화와 타협과 합의보다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이 분출했다. 특히 노사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 했다. 이러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관리 조정하기 위해 그들 국가의 정치엘리트들은 선거제도를 바꿔 연립정치, 특히 연립정부를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그 결과 분열집단 간의 '상생과 공존'을 위한 대화와 타협과 합의 문화를 점진적으로 창출해 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인들도 연립정부의 제도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면 이는 효율적이고 원활한 정치체제의 작동을 원활하게 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형성시켜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정치의 기대효과

연합정치는 의회정치 및 정부의 대표성을 높이고 효율적인 정책적 산출능력을 강화시키는 정치예술이다. 그것은 정당들에게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시민사회와 시장의 대립하는 이익과 가치들을 대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을 조정 타협하기 위한 균형된 정책 실행을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수세력 혹은 사회경제적 취약집단 및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정당이 중앙정부의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배제되고 정부 내각구성에 참여의 길이 제도화되지 못하면 그것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된다. 반면에 연합정치에서는 소수당도 언젠가는 내각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보장되기 때문에 선거를 전후해서 명멸해 가는 일이 없고 자신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견지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분열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각 정당이 의회 및 연립내각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입법활동과 정책을 통해 다양한 사회갈등 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하여 국민통합을 이룩해 낼 수 있다.

서유럽 국가들의 연합정치는 사회적 기반을 갖춘 정당 간 연합이고 이는 곧 시민사회와 시장에서 활동하는 여러 집단과 계층과 지역 간 연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자유주의 정당과 사민주의 정당 간의 연합정치를 통해서 계층 노사 갈등을 조정 해소하는 과정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분열과 갈등은 다양한 형태의 연합정치를 통해 그 조정 관리가 가능해 질 수 있다. 현행 한국 정치에서는 갈등과 분열을 보이는 다양한 집단과 계층과 지역에 각각 뿌리를 둔 다당제 요구가 존재하는 반면에, 대통령직 획득을 위한 경쟁력을 갖춘 거대 양당제 요구 압박이 강하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 정당체제는 형식적으로 다당제의 틀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정당 간 이합집산이 전개되는 등 끊임없이 불안정하다. 연합정치는 그 같은 정당체제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다양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정당체제를 제도화할 수 있다. 소수당도 연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해서 해체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정치에 참여하는 파트너 정당들은 각각 상이한 이념적 계급적 계층적 지역적 이익갈등과 가치갈등에 뿌리를 둔 당 정책을 조정과 타협에 의해 국가정책으로 산출해 낼 수 있다.

진보정당이 권력분점 공유의 형태로 내각구성에 참여할 경우 그 연립정부는 경제적 정치적 자원을 계층 노사 간에 보다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갈등과 분열을 조정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정당의 정치고객이 될 수 있는 노동대중과 사회경제적 소외계층의 이익이 연립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정책과 법률로 응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노동과 사회취약계층의 이해관계가 중도 좌파정당들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의 정책 협상테이블에서 대표될 수 있고 이는 노조의 전략적 행동에 영향을 준다. 즉 노조는 산업 현장에서 과격한 투쟁전략을 피하고 글로벌 시장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온건과 절제와 타협'의 전략을 택함으로써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곤 한다. 예컨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의 노사정 대타협은 정당 간, 특히 보수-중도-진보 정당 간의 협력체제에 기반을 둔 연립정부의 수립에 의해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경우도 진보정당이 선거에서의 득표율에 따라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는 노동대중과 사회경제적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표하고 부응할 수 있는 정부정책(복지정책, 노동정책, 교육정책 등)을 가능하게 하여 계층 노사 갈등과 이념갈등 완화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제효율성과 사회형평성을 조화시키는 노사정 거번넌스 시스템의 성공적인 작동은 진보정당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의 구성이 제도화될 때 가능하다. 노사정 대타협은 노조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당 간 연합정치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 동력

정당 간 권력분점 공유 형태로 나타난 연합정치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 계층 지역의 대표가 '동등하고 효과적'으로 정치참여를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또한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신장하는 정책콘텐츠를 산출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강화로 이어진다. 이런 선순환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의미한다. 특히 연합정치는 시장의 실패자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표하는 정당에게도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포용과 상생의 정치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사회통합 정책 산출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의 도정에 오르게 하는 동력이다. 연합정치의 우월성은 레이파트학파의 많은 경험적 연구로 검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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