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있는 아이 스물 하나, 멍 하니 앉아있는 아이 넷
교실 구석에서 잡담하는 아이 셋, 매점이나 화장실 가느라 비어있는 자리 다섯
그리고 공부하는 아이 넷
2009년 10월,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교실 문을 연 내 눈에 비추어진 교실 안의 모습이다.
쉬는 시간에 공부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쉬는 시간에
잠을 자야만 되는 아이들의 몸 상태가 심히 안타깝고 염려스럽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속이고 있다. 어른들을.
속이려는 의도 없이 그냥 속이고 있다.
아니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이 스스로 속고 있다.
바보라서 속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속고 싶어서 속고 있다.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 내내 학생들이
공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부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야만 되는 컨디션으로 어떻게 효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선생님이 교단에 선 다음에야 엎드렸던 아이들은 부스스 일어나 책을 챙기고
잡담하던 아이들도 매점 간 아이들도 자리를 메운다.
친구가 세차게 흔들지 않으면 엎드려있는 자세가 그대로인 아이도 있다.
수업 진행 5분 경과, 눈 감은 아이들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고
10분 경과, 눈 감은 아이 다섯, 꾸벅이는 아이 넷, 눈뜨고 있는 아이 스물여덟이다.
15분 경과. "모두 일어 섯"이라는 외침에 역도 선수보다 힘들게 일어서서
잠깨기 스트레칭에 연체동물 되어 허우적거리는 아이들.
지친 아이들 본받아 지쳐버린 선생님.
조는 아이들 본받아 졸고 싶어지는 선생님.
깨우고 또 깨워도 졸고 또 조는데 깨워놓는다고 해도 제대로 수업을 받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는데
계속해서 깨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괴로운 생각이 파고드는데
깨우고 깨우다 보면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까지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데
한숨, 난처함, 무기력, 무능력, 회의, 자괴감
잠에게 완전하게 포위되고 결박당해버린
2009년 10월,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실.
정말로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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