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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도 과열되면 정비하는데…"

[인권오름] 대형마트 파견직 노동자에겐 프라이버시는 없다

요즘 어느 동네를 가도 네모반듯한 건물의 대형 할인마트를 볼 수 있다. 수많은 소비자들은 각 코너마다 앞치마, 머리에 흰 수건, 위생장갑을 끼고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고객을 불러 모으는 멘트를 멈추지 않는 판촉사원들, 물품 진열대 앞에 끊임없이 박스와 자루를 내려놓고 나르는 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주치게 된다. 흔히 그냥 지나치지만 바로 그 공간, 즉 자신의 작업장에서 유통 서비스 노동자들이 하루 10시간 이상 머무르면서 하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저 혼자 세 명 몫의 일을 했어요. 시간 외 근무해도 돈 안주고 최저급여도 안 지키면서 업계 최고의 대우라고 선전하지만 우리끼리는 최악의 대우라고 말해요. 얼굴이 노랗게 뜨고 눈이며 온 몸이 퉁퉁 부어서 5일 동안 일을 못나갔어요. 기계도 과열되면 정비를 하는데…."

지독하게 착취하기로 유명한 마트를 일터로 삼고 있는 현수 씨(가명)는 무엇보다 노동 강도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일 시작한지 3일 만에 손목 인대가 늘어났고, 파스를 붙이며 조금 더 버텼더니, 이제는 작은 아이 머리를 받쳐도 저절로 손목이 뒤집힐 될 정도로 심해졌다. 산재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루에 평균 3000여 명의 고객, 많으면 5000명까지 상대해요. 이제는 사람이 싫어져요. 대인공포증이죠."

발 달린 카메라, 파고드는 감시의 눈

'고객과 눈을 마주치고 일일이 답해줘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쉴 틈 없이 노동을 강요당하는 기계 같은 삶을 노예 같은 삶으로 만드는 건 바로 철통같은 감시체제 때문이다. 우선 근태감시를 목적으로 설치한 CCTV가 계산대 안팎으로 대여섯 대가 한 직원을 향해있다고 했다.

"카메라 달아봤자 우리는 아무 잘못 안하니까 떳떳할 뿐이에요. 하지만 잠깐 안보이면 근무태만으로 찍히고 망신당하거나 잘리기까지 하기 때문에 화장실, 창고에 갈 때도 동료직원에게 다 얘기하고 갈 정도죠. 심지어 물건 다듬는 일도 창고 아니라 카메라 있는데서 하게해요. 하지만 그런데도 자리비우고 불성실하다고 해고하고는 CCTV기록을 공개하지도 않아요."

한때 숨어있던 카메라는 언제부턴가 현수 씨의 뒤통수와 손짓을 대놓고 겨냥했다. 건물 밖, 식당 안 뿐 아니라 사무실 입구의 정수기와 커피자판기 앞까지 노동자들의 동선을 따라 촘촘히 매달려 있다. 노동자들이 잠깐 작업대를 벗어나는 곳, 모여 있을 만한 곳에는 예외 없이 카메라가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안 보이는데 달아놓더니 이제는 노골적이에요. 화장실에까지도 카메라설치 공사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문제제기하니까 오히려 나를 정신병자로 몰았어요."

비록 일하는 공간이지만 현수 씨에게 사생활이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작업행위 뿐 아니라 사적인 행동,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 감정까지도 회사의 레이더망 안에서 분석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료들과 앉아서 수군대는 내용을 관리자들이 다 알고 있어요. 음성녹음장치까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설치기사한테 물어보니까 돈만 주면 다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화장실에서 잠깐 얘기한 것도 다 알고 있어요."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업장 등에서 CCTV, IC칩 카드 등을 통한 전자감시를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과 근로자의 인격과 사생활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현행법에 명시할 것을 권고한바 있다.

판매량이 지배하는 상호감시의 작업장

동의도 없이 설치되고 작동하는 감시 렌즈는 노동자들 사이에로 파고들어 활동영역을 철저하게 침범한다. 기계보다 더 정밀하고 의식적인 감시 장비는 바로 옆자리 동료다.

"회사에서 우리들 사이에 스파이를 심어놔요. 그럼 서로를 못 믿게 되요. 판촉하는 게 참 힘들어서 서로 의지하고 싶은데….엄청난 스트레스죠. 조회시간에는 서로 고자질 하라고 시켜요. 그 스트레스 때문에 또 동료들끼리 싸우고…."

그것은 단지 불쾌한데서 멈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 사이의 관계까지 파괴시키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이런 일터에서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CCTV와 '동료스파이'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쓰인다고 했다. 비밀리에 작성되고 유통되는 블랙리스트는 국제사회가 금지한 노동감시에 해당한다.

"한번은 사장이 건들건들거리며 다가와 제가 일하는 판매코너에서 음식을 가지고 도망갔어요. 저를 골탕 먹이려는 비열한 짓이죠.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업체들 사장들끼리 짜고 다른 업체로 이전하는 것도 방해하니까요"

부당한 업무에 관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는 현수 씨는 이미 불순사원 목록에 올라 사장이 매장까지 쫒아올 정도가 된 것이다. 한번 찍히면 수시로 판매량을 체크당하며 수모를 겪는 한편, 가혹한 노무관리로 정신적인 고통을 줘 어떻게든 그만두게 만든다고 했다.

"고객을 가장한 모니터 요원들이 30분 간격으로 체크할 뿐 아니라, 점장과 부점장이 매장을 돌면서 나 같은 요주의 인물한테 다가가 물건 바코드 찍어서 상품을 몇 개 나갔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해요. 판매개수가 적으면 무능력한 인간이 되는 거죠"

'얼마나 팔았느냐'로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는 '마트의 세계'에서 휴식은 곧 게으름이다. '고객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가해지는 노동통제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최소비용으로 쥐어짜내서 매출과 이윤을 늘리는 거다. 물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격은 개의치 않아도 된다.

"화장실도 못가, 잘 쉬지도 못해, 매출액 맞추느라 퇴근도 못하지, 밥 먹고 있는데 마이크로 방송해서 불러대고…. 그런데도 '점심시간은 왜 10분밖에 안 돼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다음 날이면 안 보여요. 잘리는 거죠."

90%이상이 파견직, 일용직이다 보니 권리에 대한 요구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바로 해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침묵하거나 스스로 그만둔다고 했다. 한 달은 버텨야 살리고, 그게 아니면 빈손으로 내보내겠다는 회사의 협박에도 못 견디고 그만두는 노동자들이 태반이다.
▲ 2004년 삼성 노동자에 대한 감시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 모습(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인격이 허물어져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는 상태

회사는 작업효율을 얻었을지 몰라도 현수 씨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었다. 극한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과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데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은 가족에게조차도 이해시킬 수 없다.

"구부렸다 펴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하고, 물건 천 개를 바코드로 일일이 찍고, 복통이 오면 배를 잡고 울면서 일하는데…. 해뜨기 전에 출근해서 캄캄해진 다음에야 집에 들어와서 말 한마디 하면 식구들은 몰라요. 그저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하길 바라요. 그런 상황을 직접 접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럼 제가 박차고 나갈 수 없어요, 그래서 다음날 지옥 같은 데를 또 나가는 거에요."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일해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은 없고 다른 업체로 옮긴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안디. 인격적 대우는 고사하고 도덕과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지만 '스스로를 지켜낼 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장할 뿐'이다.

오늘도 또 내일도 다른 수많은 현수 씨가 감시의 눈길아래 자율적인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작업장에서, 무너지는 사회적 자존감을 강요된 웃음으로 숨기며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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