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내용은 다르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올해도 추수기를 맞아 성난 농부들이 논을 갈아 엎는 시위를 벌이는 등 쌀 값 폭락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2009년 역시 풍년이고 산지에서 쌀값이 14만6976원(80kg)으로 전년대비 9.5% 하락했다. 지역에 따라 14% 이상 하락한 곳도 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29일 쌀 매입 물량을 23만 톤 늘리고, 공공비축물량 37만 톤 중 18만 톤을 학교급식과 군수용으로 격리시키며 농협 및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가 매입량을 전년대비 15% 늘리면 매입자금 지원금리를 무이자로 인하하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들은 "현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조삼모사식 쌀값대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간에 책임 떠넘기기 조삼모사"
유선호, 최규성, 박지원, 김영록, 김낙성, 류근찬, 강기갑, 곽정숙 등 야당 의원들은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쌀 매입량을 20만 톤 가량 더 늘리고, 대북지원 40만 톤을 즉시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장 농협 및 민간 RPC에는 창고에 재고가 넘쳐나 재고 소진을 위해 덤핑출하를 하면서 쌀값 폭락을 가속화시키고 있고, 올해 수매량을 20% 정도 줄일 계획"이라며 "정부가 지원금리 인하라는 당근을 준다고 해서 이들이 정부 요구에 얼마나 호응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년간 태풍이 없어 풍년이 지속되고 있어 쌀 생산량이 늘었지만 쌀소비량이 줄고, 매년 40만 톤씩 소비되던 대북 쌀 지원량도 이명박 정부 들어 뚝 끊기는 바람에 민간의 쌀 재고가 많아졌다.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그런데 쌀 거래 손실만 한 해 816억 원에 이르는 농협과 민간 RPC가 수매량을 늘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농민의 마음으로 쌀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더니 조삼모사식의 눈속임으로 민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쌀값이 폭락할 경우 재정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지적됐다. 민주당 최규성 의원은 "생산비와 수매가 차이를 보상해주는 쌀직불금 제도에 따르면 현재 목표 가격은 17만8300원인데,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가 직불금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부담도 엄청나다"며 "재정부담 완화를 위해서라도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공공비축미를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는 뜻이다.
야권에서는 대북 쌀 지원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지난 2002년 쌀 40만 톤을 북한에 차관형태로 지원하기 시작해 2007년까지 매년 40여만 톤을 지원해왔지만 현 정부 들어 단 한 차례도 대북 쌀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러면서 정부는 동아시아 쌀 비축사업에 10여만 톤을 지원하겠다는데, 그 이전에 동포인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부족은 180만 톤으로 870만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 지원용 쌀을 매입하지 않아 양곡관리 특별회계에 여유가 있다"며 "이번에 추가 특별수매를 실시해야 나중에 가격이 안정되면 공매를 할 수도 있고 북한에 인도적 쌀 지원도 적절한 시점에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경기도 여주에서 농민들이 쌀값 대책 및 대북 쌀 지원을 촉구하며 논을 갈아 엎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
쌀막걸리, 쌀라면으로 성난 농심 달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부의 문제 해결 접근법은 다르다. 장태평 농식품부장관은 "쌀 생산이 조금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쌀값 불안은 심리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쌀막걸리, 쌀국수, 쌀라면 등 쌀 가공식품을 늘려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물 전환 등을 통한 쌀 생산량 축소에 대해서도 '식량 안보'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가공용 쌀이 밀가루를 대체하기에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고, 국민의 식생활을 하루 아침에 바꾸긴 어려운 것이어서 당장의 성난 농심을 달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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