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폴란드 내에서 비밀수용소 운영한듯

유럽평의회 "CIA가 테러용의자 납치해 유럽서 인권유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폴란드에 비밀수용소를 설치해 사용해 왔다는 정황증거가 포착됐다고 독일 시사 주간지 〈슈테른〉이 14일 보도했다.

***독일 〈슈테른〉이 폴란드 정보 당국자 발언 인용해 보도**

〈슈테른〉은 익명의 폴란드 고위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 폴란드 북동부 키예쿠티의 폴란드 정보기관 캠프 부근에 5~6년 전부터 미국인이 수개월씩 머물렀고 3m 높이의 장벽과 철조망이 설치된 이 캠프의 일부 구역에는 폴란드 정보기관원조차 접근을 할 수 없고 미국인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잡지는 CIA 비밀수용소로 추정되는 일부 구역에는 CIA 항공기가 기착하는 공항에서 목격된 것과 동일한 트럭이 가리개로 덮인 채 주차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의혹의 대상인 키예쿠티는 시마니 공항과 10Km 떨어진 곳으로 냉전 종식 이전에는 구 소련군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그간 언론들과 인권단체들은 CIA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일대에 비밀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미국 법을 뛰어넘어 '테러용의자'들을 심문하기 위해 관타나모 기지를 이용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라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은 해외에서 붙잡힌 테러용의자들에게는 고문 등을 금지하는 미국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높아지는 진상공개 압력…EU의회도 특위 구성할 듯**

폴란드 정부와 루마니아 정부는 의혹을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CIA의 유럽 내 불법수용소 운영 정황이 드러나며 진상공개 요구와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 내 46개 국으로 이뤄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CIA가 테러용의자를 불법 납치해 유럽 내 여러 나라로 끌고 다니며 인권유린 행위를 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유럽평의회는 다음 달 말 긴급총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와 함께 유럽의회도 의혹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태세다. 유럽의회는 현지 시간 15일, 조사 착수를 위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유럽의회 내 사회당 그룹의 부의장인 하네스 스워보다는 "우리는 진실을 알기 원한다"며 "그런 경우에만 테러는 물론 고문에 대해서도 진실하게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당혹스러워 하는 각국 정부**

한편 CIA 비밀수용소 의혹에 대한 〈슈테른〉의 보도와 함께 칼레드 엘 마스리 불법 구금 사건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레바논계 독일인인 칼레드 엘 마스리는 지난 2003년말 마케도니아에서 CIA에 체포돼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수용소로 이송돼 5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으며 지난 주 미국 법원에 불법감금 관련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주 독일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마스리 불법 구금 사건, 비밀수용소 설치 의혹 등에 대한 언론의 질문 공세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독일 정부 역시 마스리 불법 구금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지난 14일 연방의회에 출석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마스리가 CIA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 "독일 정부는 이 사건과 절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