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손 팻말을 들고 서 있다. 점심식사를 위해 오가는 학생과 교직원은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는 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까?
"2년 연속 강의 맡으면 정규직 채용?"…내쫓기는 강사들
고려대는 지난 12일, 시간강사 88명을 해촉했다. 4학기(2년) 이상 강의를 한 자, 박사 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자, 55세 이하인 자 등이 대상이었다. 해촉 이유는 비정규직보호법. 고려대 교무처 관계자는 "2년 이상 강의를 맡기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해촉했다"고 밝혔다.
성공회대도 지난 5월, 고려대와 동일한 기준을 내세워 시간강사 8명을 해촉했다. 성공회대 교무과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미연에 막고자 재계약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영남대 역시 지난 7월 22일 시간강사 100여 명을 해촉하려다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2학기 강의를 주당 5시간 이내로 줄이는 선으로 조치를 철회했다.
이밖에도 수많은 대학에서 비일비재하게 대량해고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수치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규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서울 지역의 경우 국공립대를 빼고 사립대는 거의 대부분 4학기 이상 강의를 한 시간 강사들을 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학교가 개인별로 해촉을 통보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대학교의 시간강사 수는 5만5000명. 이들 가운데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박사 학위 미소지자는 2만2000명 수준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피하려는 학교들이 이들을 대거 길거리로 내쫓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 모자를 눌러쓴 김영곤(61)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고려대 분회장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는 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프레시안 |
비정규직법 대상 아닌데도…"법적 다툼 소지 있어서"
김영곤 분회장은 "비정규보호법은 빌미일 뿐"이라며 "학교에서 시간강사들을 해고할 법적근거는 사실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보호법에는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근로자는 2년이 경과되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시간강사의 강의는 적으면 주 3시간, 많아도 주 9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에 이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하는 이유는 법정 분쟁에 휩싸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고등법원은 "시간강사의 근로 시간은 강의 시간의 3배로 산정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영남대가 시간 강사와 강의를 주당 5시간 이내로 배당하기로 합의한 것 역시 이 판례를 근거로 한 판단 때문이었다. 주당 5시간이니 세 배를 한다 해도 비정규직보호법에 적용될 수 있는 시간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판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고등법원 판례가 된 사건에서는 강사가 1년 단위로 학교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학기별로 계약을 맺는 시간강사와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대학 측은 "우려의 소지가 있다"며 일방적으로 해촉을 강행하고 있는 것.
김영곤 분회장은 "학교는 강사들에게 한 학기를 쉬면 다음 학기에 강의를 배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매 학기마다 강사 해고를 되풀이하는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사는 교권이 없어 학교가 부당하게 해고해도 아무 소리 못 한다"며 "강사가 88명이나 해고됐는데 아무 소리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박규준 사무국장은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하고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자른다는 것은 연구 인력에 대한 배려도, 자신의 학교 출신 학자에 대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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