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다황(北大荒) 취재와 발맞춰 기자를 포함한 취재진은 헤이룽장성 일대의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고 귀국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지 100년째 해인데다, 이곳의 동포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을 보낸 하얼빈시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哈爾濱市道裏朝鮮族中心小學校) 개교 100주년이라 헤이룽장성이 가지는 상징성이 컸다. 하얼빈(哈爾濱)은 헤이룽장성의 성도(省都)이다.
베이다황 취재가 끝난 4일 오후부터 10일까지, 일행은 헤이룽강과 만저우리(滿洲里) 등 중국과 러시아의 두 국경 지대를 살펴보고 내몽골자치구의 초원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제각기 펼쳐졌다.
▲헤이룽강. 국경을 가르는 이곳에서는 지금도 어로가 이어진다. 강 건너편에는 아마도 러시아 어부가 물고기를 낚을 것이다. ⓒ손문상 |
헤이룽강을 사는 사람들
일행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베이다황의 9개 분국 중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은 친더리(勤得里)분국을 흐르는 헤이룽강이었다. 4일 오후 5시경, 버스로 한 시간 여를 달리니 곧바로 도도하게 흐르는 헤이룽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강 한 가운데를 기준으로 남쪽은 중국, 북쪽은 러시아다. 러시아인들은 이 강을 아무르(Amur)강, 몽골인과 퉁구스인은 하라무렌강이라 부른다. 모두 검다는 뜻이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로 고기잡이에 나선 배들이 한두 척 떠다녔다. 이상고온으로 섭씨 32도까지 기온이 오른 탓에 무더위에 익숙지 않아 보이는 닭과 오리들이 그늘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과거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은 강물을 따라 오오츠크해로 사라진 듯 고요한 농촌의 풍경만이 한가득 펼쳐졌다.
강변의 한 식당에서 헤이룽강에서 잡힌다는 노루고기, 개고기와 함께 황어(皇漁)로 만든 요리를 먹고, 베이다황에서 만든 고량주를 곁들였다. 황어는 말 그대로 옛날 황제가 먹던 고기라서 붙은 이름인데, 큰 놈은 4m 가까이 자라나고 무게도 500㎏에 달한다고 한다. 일행이 먹은 요리는 이 귀한 물고기의 머리로만 만들었다. '어두육미'라는 고사성어가 더 이상 어울릴 수 있을까 싶다.
▲하얼빈과 만저우리를 오가는 열차. 내몽골자치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이 열차를 타야 한다. ⓒ손문상 |
몽골의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나
현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왔다. 시내를 잠시 둘러보니 또 하루가 그냥 흘렀다. 대륙이 넓긴 넓은가 보다. 웬만한 거리는 이동에만 하루를 꼬박 바쳐야 한다. 6일 새벽 6시, 곧바로 하얼빈역으로 향했다.
내몽골자치구로 들어가기 위해 만저우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국경지대인 만저우리까지는 14시간, 일행의 목표인 후룬베이얼 초원의 중심도시 하라얼(海拉尔)시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 하라얼시는 하얼빈에서 서북쪽으로 한참을 이동해 중국 동북부 최대산림인 따싱안링(大兴安岭)산맥을 넘어야 나온다.
후룬과 베이얼은 몽골어로 모두 수달을 뜻한다. 지역 사람들이 달라이(바다) 호수라 부르는 후룬 호에 수달이 많이 서식한 덕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후룬 호는 중국 북부지방 최대 호수로, 둘레가 448㎞에 달한다. 최근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후룬베이얼은 바로 몽골인의 영웅 징기스칸이 부족 통일 이전 군사를 조련시키고 말을 모았던 곳이다. 몽골인들은 예부터 "후룬베이얼을 장악하는 자가 초원의 주인이 된다"라고 할 정도로 이곳을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은 불행히도 중국의 땅이지만.
▲하라얼 역사. 초원 한 가운데도 도시는 세워진다. ⓒ손문상 |
하라얼은 후룬베이얼 맹(盟)의 행정관공서 소재지로, 예부터 지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도시였다. 동으로는 야커스(牙克石)시가, 서로는 어원커(鄂温克)족의 자치 기(旗)와 맞닿아 있다. 지역명이 외래어를 한문으로 음차해서 지은 데서 알 수 있듯, 이곳은 한족문화권과는 거리가 먼, 몽골의 냄새가 가득했던 곳이다. 만주를 통일하고 중국 본토까지 집어삼킨 청(淸)나라 때 이곳은 중국의 영토가 됐다.
하라얼시 거리의 풍경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상점 간판이 모두 몽골어와 한자가 병행표기 돼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 내몽골자치구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여관급 숙소에서 묵었는데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프론트에 불평을 하고 보니, 공동 샤워장과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뜨거운 물은 물론, 찬물도 수압이 높지 않았다. 아직 변방의 도시는 여러 모로 대도시에서처럼 편한 삶을 즐기기는 어려워보였다.
▲아직 초원에서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이곳 젊은이들은 말 위에서 인사하고, 말을 달려 양떼를 돌볼 줄 안다. ⓒ손문상 |
초원, 의리와 정이 황량함을 메우다
시내에서 양꼬치와 매미 애벌레 구이 등을 맛보고 고량주에 취해 밤을 보낸 다음 날, 하라얼시에서 약 40㎞가량 떨어진 후룬베이얼 대초원의 진장한(金帳汗) 몽고부락에 도착했다. 이곳은 국가 2A급 풍경구로, 지역 일대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라고 한다. 중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몽골인 오부스(鄂布斯)가 한국 돈으로 약 10억 원을 들여 만들어놓은 대규모 위락시설이다.
이곳은 추운 날씨 때문에 일 년에 단 3개월만 운영된다. 여름모기가 극성이긴 하지만 여름이 아니면 묵기가 어렵다. 일행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4륜구동 차량으로 대초원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이곳에서는 사냥이 불법이 아니다). 요즘에는 인기가 점차 많아져, 주말에는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러시아 사람들이 적잖이 보였는데, 만저우리와 후룬베이얼, 하얼빈을 잇는 관광코스가 그곳에서 인기가 아닌가 싶다. 러시아는 예부터 중국을 '황금의 나라'라고 해 동경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둘이 취재진 일행과 더불어 제사를 치렀다. 전통의상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손문상 |
자동차로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서 말을 탄 젊은이들이 일행 쪽으로 접근했다. 답답한 버스 안에 갇혀 있자니 드넓은 초원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과 현지인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역시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자유와 만나기 마련이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도시화가 진행되더라도 이 모습은 그대로 남아주기를'하고 바랐지만 이게 도시인의 이기적 마음인지, 현지인들을 위한 마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부락 입구로 들어서자 몽골민족문화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직접 초대의식을 치렀다. 하마주(말에서 사고 없이 내린 이를 축복하는 술)를 한 잔 마시고 우리네 성황당과 크기 외에는 차이를 찾기 힘든 제사터로 이동했다. 붉은색 띠를 현지인이 감아주었는데, 복을 부른다며 잘 보관하라고 했다. 제단을 세 번 돌고 소원을 비는 것으로 의식이 끝났는데, 제사를 이끈 교수는 일행에게 "이곳은 한국인의 뿌리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제사를 위해 부락 맨 꼭대기 돌무더기로 이동한다. 초원의 바람은 무척이나 거셌다. ⓒ손문상 |
일행의 가이드역할을 너무도 열심히 해준 한인희 대진대 중국학과 교수와 그의 십년지기 오부스 씨가 지난해 의형제를 맺은 덕분인지(마치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듯, 제사까지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의형제는 목숨을 같이하는 사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일행은 모든 식사를 공짜로 해결했다. 불행히도 오부스 씨가 영화촬영 중 부상을 당해 이곳으로 찾아오지 못했다. 그는 대신 베이징에 사는 여동생을 급히 이곳으로 보내 우리를 환대했다.
초원에서의 잊기 힘든 밤을 보내고 일출을 보기 위해 4시에 눈을 떴다. 불행히도 흐린 날 탓에 붉게 달아오른 해는 구름 한 무리를 힘겹게 밀어내고서야 하늘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저만치서 우리 일행에 앞서 초원의 아침을 걷는 한 여행객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을 가로막는 어떤 빌딩도, 자동차도, 전봇대도 없었다. 그와 일행 사이에는 바다처럼 넓은 초원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후룬베이얼 대초원 한가운데 진장한 부락이 있다. 중국에는 몽골인 약 400만 명이 살고 있다. ⓒ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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