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기념하고자 전 세계 천문학자는 올해를 '세계 천문의 해'로 정해서 갖가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마침 지난 7월 22일에는 개기 일식이 있어서 흥을 더욱 돋웠다. 이런 상황을 갈릴레오가 직접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우여곡절 끝에 갈릴레오와의 '불가능한'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 400년 전 당신이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해 전 세계에서 온갖 행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도 내가 처음 망원경으로 달의 표면을 처음 보면서 느꼈던 흥분을 잊을 수 없어. 당시에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중간에 놓인 달은 "천상의 천체를 닮아 지상과 달리 표면이 매끈하고 희미하나마 스스로 빛을 낼 것으로" 여겨졌어.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본 달 표면은 지구 표면과 다를 바 없이 울퉁불퉁"했어. 이는 내가 기존 우주론을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
▲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태양계의 그림을 새로 그리다>(오철우 지음, 사계절 펴냄). ⓒ프레시안 |
아주 반갑다. 그간 나와 교회 사이의 갈등은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그 갈등의 원인이 된 1632년에 나온 <대화>는 중요한 과학 고전임에도 소수의 역사가 외에는 거의 읽지 않았지. 이번에 나온 오철우의 책은 <대화>의 핵심 내용을 지금의 시점에서 요령 있게 정리하고, 더 나아가 그 책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짚었어.
특히 이 책은 <대화>를 "종교와 과학의 충돌"로 보는 기존의 관점에 더해서, "새로운 과학과 낡은 과학의 충돌"로 읽는 관점을 새롭게 제시했어. 내가 애초에 <대화>를 쓴 이유도 "지구 중심설을 주장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그것의 이론적 바탕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비판하면서 당시 태동하던 새로운 과학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지.
- 그러나 종교 재판과 같은 교회와의 갈등은 여전히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물론 내가 말년에 교회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오철우의 책도 정확히 지적했듯이 나는 생전에 한 번도 신을 부정한 적이 없어. 오히려 나는 "신이 자연에 아름다운 수학 질서를 수놓았다고 여겼고, 그 질서를 찾으려" 했어. 그리고 "그러한 일은 자연을 창조한 신의 전지전능을 높이는 일이 될 거라 생각"했지.
내가 1616년 교회로부터 경고를 받고도 1636년에 <대화>를 펴낸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었어. 물론 나중엔 그런 행동이 아주 순진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 하지만 그런 갈등의 중심의 선 덕분에 당신은 "종교에 맞선 과학 정신의 지킴이"로 칭송되고 있다.
그렇지. 그렇게 '과학의 순교자'로 여겨진 덕분에 나를 상징하는 신화도 만들어지고. 내가 종교 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는…….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그런 말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어. 만약 내가 '진실'을 억압하는 교회의 '권력'에 맞서고자 했다면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고문에 맞서다 화형을 당했어야 마땅했지. 그러나 나는 <대화>를 통해서 세상을 훨씬 잘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을 주장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만한 용기가 없었어.
- '권력과 과학의 대립'으로 당신의 삶을 읽는다면?
내가 살았던 때는 교회가 최고 권력이었어. 나는 교회, 귀족과 관계를 잘 맺으면서, 연구를 진행했지. 하지만 결국은 바로 그 권력의 강요에 못 이겨, 그 연구 결과를 스스로 부정했어. 이런 부분이야말로 내 삶에서 오히려 더 부각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비록 나는 더 이상 과학의 순교자로 칭송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이를 테면, 내 삶이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라기보다는 '권력과 과학의 대립'으로 다시 읽혔으면 해. 오늘날의 최고 권력은 무엇인가? 바로 기업 등으로 상징되는 자본이지 않은가. 실제로 오늘날 많은 과학 연구가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고.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지.
과연 오늘날의 과학자는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시 자본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 진행하거나, 때로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건 아닌가?
- 실제로 그런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지. 또 나 같은 전철을 밟는 과학자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에 오철우의 책을 읽으면서 <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런 점까지 꼭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나저나 이젠 일어나서 출근할 때가 되지 않았나? 벌써 7시라네!
눈을 떠보니 갈릴레오와의 인터뷰는 꿈이었다. 옆에는 잠이 들기 전에 다 읽은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태양계의 그림을 새로 그리다>가 놓여 있었다. 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갈릴레오와 만나서 과학과 세상을 논하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를. 아차, 갈릴레오가 평생 믿었던 신이 과연 있는지, 묻는 걸 깜박했다.
갈릴레오가 더 궁금하다면 이 책도… 국내에서 갈릴레오에 관한 책은 어린이,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그의 삶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 대다수다.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태양계의 그림을 새로 그리다>가 반가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책과 더불어서 읽을 만한 갈릴레오에 관한 책을 더 소개한다. 오철우의 책에서 간략하게 소개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삶을 더 자세히 알려면 <갈릴레오>(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읽을 만하다. 이 책은 갈릴레오를 둘러싼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다만 이 책은 원제 'Galieo Antichrist'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초점을 맞췄다. (☞관련 기사 : 과학의 순교자? 혹은 과학의 변절자!) 화이트의 책이 '과학자' 갈릴레오를 부각한다면 <갈릴레오의 치명적 오류>(웨이드 로랜드 지음, 정세권 옮김, 미디어윌M&B 펴냄)는 교회, 귀족과의 관계를 이용해 명성을 쌓는 '인간' 갈릴레오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갈릴레오도 자유롭지 못했던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논평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 중 한 사람(마리아노 아르티가스)이 신학자인 <갈릴레오의 진실>(윌리엄 쉬어·마리아노 아르티가스 지음, 고중숙 옮김, 동아시아 펴냄)은 갈릴레오의 삶과 종교 재판 등을 당대의 정치, 사회 맥락을 중심으로 살펴본 책이다. 특히 이 책은 갈릴레오의 여섯 번에 걸친 로마 여행을 통해서 그와 교회 '권력'과의 관계 변화를 추적한다. 갈릴레오의 삶에서 이른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부각한 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차경아 옮김, 두레 펴냄)이다. 브레히트는 이 희곡을 세 차례에 걸쳐서 개작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친 후에는 권력에 굴복한 과학자로서 갈릴레오의 모습을 더욱더 또렷하게 제시했다. 갈릴레오가 직접 쓴 책 중 번역된 것도 있다. 우선 <대화>의 주요 부분은 <과학고전선집,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홍성욱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에 실렸다. <대화>를 쓰는 계기가 된 달을 비롯한 밤하늘의 관찰 기록을 책으로 묶은 그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장헌영 옮김, 승산 펴냄)도 2004년 동명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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