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당사자 간 협상 테이블에 의제로 오른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의 내용 중 '불법파견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 발생요건'을 놓고 22일 노동계와 노동부가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여기서 '불법파견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 발생요건'이란 '불법파견 근로를 사용하는 사업주가 어떤 경우에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느냐'를 규정하는 요건을 말한다.
'직접고용 의무 발생요건'에 관한 이번 노정 간 공방은 파견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지 무려 15개월만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시기상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이번 공방은 파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견도 많다.
특히 이번 파견법 개정안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공정 중 생산지원공정이 아닌 '직접생산공정'에서 위장도급 형태로 이루어지는 불법파견의 경우 해당 파견노동자에 대해 사용자가 직접 고용할 의무를 지게 되는지 여부와, 직접고용 의무를 지게 된다면 그러한 의무가 발생하는 시점이 언제인지가 매우 모호하게 처리해놓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공방을 통해 드러났다.
***노동계 "정부가 노동자와 국민을 속여 왔다" 주장**
이번 공방은 노동계가 먼저 시작했다. 22일 오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비정규직 전문가들은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9장 분량의 브리핑 자료를 돌리고 그 내용을 설명했다.
"정부 '불법파견 고용의무' 주장, 노동자 국민 속여 왔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이 달린 이 자료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파견법 개정안에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불법파견에 대한 제재조치가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을 핵심적으로 지적했다.
이 자료는 파견법 개정안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불법파견에는 고용의무가 발생한다"라는 식으로 법안의 내용을 왜곡 홍보하는 동시에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같은 왜곡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구체적으로 이번 파견법 개정안 중 '고용보장'과 관련된 조항들을 살펴보면, 파견이 금지된 건설, 항만, 운송, 선원 등의 업무 분야에서 파견근로의 사용(불법파견)이 적발되면 즉시 '원 사용자'가 해당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5조 1항, 6조 3의 1항)돼 있지만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경우에는 불법파견 노동을 사용했더라도 3년을 초과한 뒤에야 해당 사용자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영삼 한국노총 홍보실장은 "그동안 정부는 불법파견의 경우 즉시 고용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해 왔다"며 "하지만 실제 개정안 법조문을 검토해본 결과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불법파견이 일어나더라도 3년이나 지나서야 직접 고용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노동계가 이런 문제점을 이제야 제기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최근 2년여 동안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불법파견으로 인해 야기돼 온 사회적 갈등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번에 노동계가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노동부 "법조문 제대로 해석했나?" 반박**
하지만 파견법 개정안을 만든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노동계의 문제제기 소식을 듣고 긴급회의를 가진 후 이날 오후 5시경에 반박자료를 내놓으면서 노동계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노동부는 반박자료에서 "정부는 현행 파견법의 고용의제 규정을 삭제하고 파견근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 규정을 신설했다"며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고용의무가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특히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 대하여는 3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때에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다고 규정했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노동부의 주장은 노동계의 이번 문제제기가 법조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동안 정부가 법안의 내용을 왜곡 홍보했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파견법 개정안…위장도급에 대한 고용의무 명확히 해야**
노동계와 노동부 간에 벌어진 이번 공방에서 새롭게 드러난 또 다른 사실은 제조업에 만연해 있는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에 대해 입법예고된 파견법 개정안이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파견법 개정안대로라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위장도급 형태로 이루어진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관련 사용자에게 파견근로자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법원의 법해석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장도급이란 원청 사용자와 하청 사용자가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파견근로를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제공하는 것으로, 원청업체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불법파견의 한 유형이다.
이런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은 특히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사업장에서 최근 2년 동안 잇따라 적발된 불법파견 유형이다. 더구나 이런 불법파견의 경우 파견근로자가 같은 사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원청 소속 노동자)와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정규직에 비해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됨으로써 생산현장에서 극심한 노사갈등을 야기해 왔다.
그런데 이같은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된 파견법 개정안의 내용에 대한 노동부 설명과 파견법 개정안 자체의 규정이 매우 모호하거나 법리상 모순을 갖고 있다고 노동계에서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은 대부분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데, 노동부가 내놓은 '반박자료'에 따르면 이번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근로를 3년 넘게 사용한 뒤에야 파견근로 사용 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노동부는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파견법 개정안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파견법 개정안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의 '불법파견'은 '출산, 질병, 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도 파견근로를 사용할 수 있다'는 5조 2항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는 곧 파견법 개정안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불법파견 중 5조 2항에 적시된 규정의 위반에 대해서는 고용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고용의무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소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대상 업무인가?**
나아가 노동부는 고용의무 발생요건에 대해 건설, 항만, 운송, 선원 등의 업무는 '파견금지 업무'이기 때문에 파견근로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사용자에게 파견근로자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같은 설명은 역으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허용 업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현행 파견법은 물론이고 입법예고된 파견법 개정안에서도 '파견금지 업무'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5조 1항의 업무들의 경우는 파견금지 업무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한다고 한다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위장도급 형태로 이루어지는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동일한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런 논란은 파견법 개정안이 정식으로 입법되기 전이어서 법원의 판례가 아직 없는 상황이니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불법파견으로 인해 이미 수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불이익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파견법 개정안을 좀더 명확하게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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