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10년전 민주노총이 건설될 당시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을 갈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감격했다. 하지만 꼭 10년 만에 그들 중 다수는 민주노총에 희망을 버리고 또다른 대안을 찾아 안개 속을 헤메고 있다.
비단 올해 노조 간부들의 잇단 취업청탁 비리와 뇌물수수 비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보수 언론들의 '노조 때리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 오늘날 위기는 10여 년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겨난 혹은 지적된 '위기요인'들을 그때 그때 처리하지 않은 민주노총의 게으름과 불철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기 원인 몰라서 지금 이 모양이 됐나"**
이는 11일 민주노총 창립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도 확인됐다. 토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노조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내부에서 찾았다. 소위 △대표성의 위기 △계급성의 위기 △자주성의 위기 △정파의 위기 등으로 개념화된 것들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같은 '위기론'은 이날 처음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진행된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비롯해 민주노총 안팎에서 수 차례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같은 내용들이 제기됐었다. 또한 학계·현장 활동가들은 논문이나 언론 기고를 통해 유사한 주장을 전개했었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조돈문 교수가 "민노총 정책연구원 개원 기념 토론회 때 했던 이야기를 또 반복하려니 난감하다"며 "과연 민주노총 내에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요컨대 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이미 나와 있지만, 위기가 '극복'되지 않고 '논쟁'만 반복되고 있다는 데에 위기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진정성 없는 노동운동은 희망없다"**
해답의 실마리는 이날 토론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토론자로 나선 조건준 금속산업연맹 조직부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정파를 다들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정파에 속해 있다", "비리척결을 주장하는 사람이 비리의 주범이었다", "현장이 죽었다고 말하는 노조 간부가 현장을 죽였다."
노동운동가들의 이중성에 대한 통렬한 질타다. 그는 이를 '진정성의 위기'라고 이름 붙였다. "말과 구호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천은커녕 진정성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 국장의 지적이었다.
노동운동 세력들은 기득권 세력의 이중성을 비판해 왔다. 양지에서의 행동과 음지에서의 행동이 다르며, 겉과 속이 다른 행태를 보며 '믿을 수 없는 세력'이라고 규정해 왔다. 똑같은 형식의 비판이 노동계를 향하고 있다. 그것도 노동계 내부에서 말이다.
***"참여연대가 10점이면, 우리는 5점도 안돼"**
민주노총의 한 고위 간부로부터 "영향력으로만 볼 때 참여연대가 10점이라면, 우리는 5점도 안된다"고 자조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70만 조합원을 갖고도 사회적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자탄인 것이다.
이 간부의 말처럼,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작은 위상과 힘을 갖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폭은 훨씬 넓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노총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 5점보다 더 못한 미래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1500만 노동 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우리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지루한 '위기논쟁'만 반복 상영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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