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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래는 시대를 타고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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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좋은 노래는 시대를 타고 넘는다"

[현장] 여름의 시작, 지산 록 페스티벌

페스티벌이 같은 날 양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남들처럼 '토요일(25일)은 펜타포트, 일요일(26일)은 지산밸리'로 일정을 짜기는 어려웠다. 일단 저질체력이 문제였고, 이동수단도 변변찮았다. 따라서 데프톤즈를 놓쳐버렸으나, 김창완 밴드의 이름은 그마저도 상쇄할 힘을 지녔었다.

'자연속의 페스티벌'이라는 말보다 김창완 밴드와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오아시스(Oasis)의 이름에 이끌려 지난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1회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관객이 양분돼 아쉬웠으나 옐로우나인(공연기획사) 측이 만족할 만큼 많은 이들이 지산밸리를 찾았다. 옐로우나인 측은 사흘 간의 공연 참가자가 연인원으로 5만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펜타포트 역시 기사를 통해 살펴본 결과, 우려했던 관객 부족 사태는 없었던 듯했다. 펜타포트 측은 올해 페스티벌에서 최초로 적자를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까지 포함하면 이미 한국도 록 페스티벌을 십년 째 여는 나라다. 록 팬들 사이에 페스티벌은 이제 으레 찾아오는 연중행사다. 올해처럼 이상하게 갈라져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옐로우나인

흐르는 땀과 호젓한 여유로움 사이

일단 환경이 정말 좋았다. 기자처럼 '준비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맨몸으로 일정을 내내 버틸 수 있을 만했다. 잔디가 적당히 자라있어 어디든 드러누울 수 있었다. 특히 비가 오지 않아(걸핏하면 페스티벌 기간마다 비가 내려 보통은 진흙밭에 뒹굴기 십상이었다. 이제까지는) 담요 한 장만 챙긴다면 잔디밭에서 밤을 보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페스티벌은 여유로웠다. 미리 파라솔을 구해온 사람들은 공연 내내 햇볕을 마음껏 즐겼다. 기자는 그저 공연을 본 후 흐르는 땀을 잔디밭에 뒹굴면서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 기어들어가서 같이 좀 있자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시겠지만, 글쎄, 밤도 아니고 대낮에 음악 듣는 분들을 상대로 작업을 거는 건 조금 민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맥주 한잔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페스티벌은 만남의 장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셋을 페스티벌에서 우연찮게 만났다. 불행히도 셋 모두 여자친구를 대동하고 참여했다. 기자의 일행은 역시 쉰내 나는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 그저 부러움을 뒤로하고 같은 처지였던 더블린에서 온 맥모 씨, 영국의 어느 지명인 것은 같은데 '당췌' 지역명을 알아들을 수 없는 길모 씨와 함께 '소폭'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페스티벌에 온 외국인들 상당수가 폭탄주를 즐기고 있었다.

▲사진만 보고 "이 사람들 정신 좀 이상한가"하고 생각해버린다면 곤란하다.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즐긴다. ⓒ옐로우나인
페스티벌은 일탈의 장이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음악에 맞춰 마음 가는 대로 몸을 흔들면, 체력은 떨어지고 활력은 충전된다. 거대한 연애의 장이고 웅장한 우정의 맞교환터이며, 역시 준비성 없는 구린내나는 남자 둘에겐 신명나는 음악 축제이다. 평소 궁금했음에도 바쁜 일상을 핑계로 놓쳤던 수많은 국내 뮤지션, 라이브 무대를 보기 힘들었던 해외 유명 뮤지션, 완전히 새로운 음악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즐길 수 있다. 밤이라고 잠들지 않는다. 새벽에는 일렉트릭 세션에서 디제잉 파티가 열린다.

평생 예의바름과 친절함을 강요받고 살아온 자들은 페스티벌 기간만큼은 그 막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슬램(음악을 들으며 몸을 부딪히는 행위)을 해도 상대방은 허허실실, 아무나 붙잡고 인간서핑(관객의 머리 위로 대상자를 들어올리는, 말 그대로 인간파도)을 시켜도 알아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질을 하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김창완 밴드의 공연 때는, 아마도 왕년에 산울림의 팬이었음이 틀림없는 어머니 손을 잡고 온 한 꼬마가 언니오빠들의 머리 위를 마음껏 누볐다. 해외 뮤지션들이 으레 하는 "한국 팬들이 대단하다"라는 말들은 인사치례가 아니라 진심이다.

관록과 참신함 사이

참여 밴드들 모두가 좋았다, 라고 해버리면 영 특색이 없어진다. 특히 김창완 밴드와 패티 스미스가 좋았다. '관록이란 이런 것'이란 얘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무대를 휘어잡는 어떤 힘을 보여주었다.

25일 저녁 7시40분. 산울림의 데뷔년도보다 늦게 태어난 젊은이들이 "우유빛깔 김창완"을 연호하고 있었다. 드라마로 본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게 김창완이 "아 유 레디!"라고 의문사라기엔 차라리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육중한 퍼즈톤 기타음으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시작됐다. 관중 사이로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홍대신의 대들보와 같은 하세가와 료헤이(전 곱창전골 기타리스트)의 산울림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의상도 좋았다. 곡들 하나하나에서 젊은 인기밴드와는 다른 연륜의 무게가 느껴졌다. 관중들은 기껏해야 자기가 걸음마를 갓 떼기 시작할 때, 혹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나온 '아니 벌써' '개구장이' '지구가 왜 돌까' 등의 곡들을 열심히 따라 불렀다. 김창완 밴드의 새 곡들 역시 열성적으로 합창했다. 좋은 음악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펑크의 대모'라는 문구로는 패티 스미스의 압도적인 무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는 록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믿음이 가장 충만했던 시기, 록이 곧 정치였던 시대를 그대로 2009년의 지산에 가져왔다. 나이 예순이 넘은 그였으나 특유의 시적 감수성과 운동가적 날카로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록팬들에게는 일종의 성소와도 같은 뉴욕의 CBGB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아 유 익스피리언스드?(Are You Experienced?)' 커버 무대와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 '로큰롤 니거(Rock N' Roll Nigger)' '글로리아(Gloria)' '댄싱 베어풋(Dancing Barefoot)' '비코즈 더 나이트(Because the night)' 등의 곡들은 "우리의 무기는 기타"라는 그의 열성적인 말과 더불어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냈다. 물론, 이런 음악에 익숙지 않은 이들 몇몇은 지루함을 참기 어렵다는 반응도 보였지만.

▲국내 록 페스티벌의 상징 중 하나인 토끼인형. 올해도 이 인형은 쉬지 않고 공연마다 열심히 발길질을 해댔다. ⓒ옐로우나인
물론 빅 탑 스테이지(메인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들의 공연이 가장 볼만했다. (불행히도 보진 못했으나) 위저(Weezer)는 한국 무대를 열심히 준비했음을 보여준 듯했다. 피처링한 뮤지션을 모두 데려 올 것이라는 소문으로 기대를 모았던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의 퍼포먼스도 놀라웠다. 이제 일렉트로닉 음악은 어느새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한 자리를 매년 장식할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았다. 케미컬 브러더스(Chemical Brothers), 언더월드(Underworld) 프로디지(Prodigy) 등과는 또 다른 그들 특유의 드라마틱한 무대 연출과 흥겨운 리듬은 관중석을 순식간에 거대한 춤판으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니, 마지막 날 하루 종일 삭신이 쑤셨던 이유는 김창완 밴드 공연 당시 지나친 슬램과 베이스먼트 잭스 공연 때 체면을 망각해버린 막춤 때문이었던 듯 싶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이자 사실상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였던 오아시스(Oasis)의 무대는 역시 변함없었다.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 보컬)는 이날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흥분한 듯 했다. 탬버린을 바닥에 집어던졌고, 곡을 부르는 내내 마디 끝부분 마다 성난 듯 가사를 뱉었다. 모두 리엄이 정말 기분이 좋았다는 증거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공연을 진행하기 마련인 그들은 이날 "이 페스티벌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팬들은 끝내준다" 쌩큐 베리 머치" 등을 연발했다. 어설픈 발음으로 합장하는 포즈와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리엄과 노엘(Noel Gallagher, 기타 및 보컬)이 번갈아가며 들려주었다. 리엄은 공연 이후 트위터(블로그 사이트)에 "한국, 당신들 정말 끝내줬다. 당신들 나라를 사랑해(Korea, just wanna say you were absolutely fxxkin amazing, I love your country, my kinda people… Live forever)"라는 장문의 소감을 올려놓았다.

홍대 인디신의 모든 유명 밴드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록 페스티벌의 장점이다. 언니네이발관, 윈디 시티, 장기하와 얼굴들, 비둘기우유, 요조, 레이니 선, 바세린 등 이미 주류 무대에도 이름을 널리 알린 음악인들은 고정팬이 만만치 않음을 입증해주었다.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프렌지 등 새롭고 개성이 넘치는 피들도 계속해서 인디신에 공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아시스의 비틀즈 커버곡 '아이 엠 더 왈러스(I am the walrus)'를 끝으로 이번 페스티벌은 끝났다.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축제의 기간 동안 꺼져있던 직장인의 회로가 다시 들어왔다. "와… 저거 얼마 들었을까? 예산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스폰서료가 많았나? 펜타포트는 이번에 처음으로 적자를 안 봤다던데." 짧지만 길었던 공연의 여운을 되새김질하기도 전에 이런 기분부터 들다니, 하는 생각에 조금은 착잡해진 마음을 뒤로 지산 리조트를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에서는 역시나 이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아쉬움과 공연의 흥분을 채 가시지 못한 즐거움이 교차했다. 이렇게 여름은 시작된다.

▲산울림의 전성기 곡들을 라이브로 듣는다는 것. 김창완 밴드의 무대에는 유난히 아이 손을 잡은 관객이 많이 보였다. ⓒ옐로우나인
▲홍대신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하세가와 료헤이.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김창완 밴드, 델리 스파이스,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다. 산울림의 음악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옐로우나인
▲베이스먼트 잭스는 헤드라이너를 맡을 역량을 충분히 가졌다. ⓒ옐로우나인
▲홍대 인디신의 오늘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것도 페스티벌의 매력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연주하는 모습. ⓒ옐로우나인
▲대중음악은 정치, 사회와 별개의 세상에 있다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페스티벌 현장 곳곳에 'MB OUT'' '언론악법 철폐' 따위의 구호가 쓰인 피켓을 든 사람이 많았다. ⓒ옐로우나인
▲외국인들은 당연히(?) 페스티벌을 많이 찾는다. 영어공부가 필요하신 분들, 페스티벌로 오시라. 물론 그들이 술에 취해 있다면 발음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옐로우나인
▲헤드라이너의 공연은 밤 11시30분이 되면 끝난다. 하지만 축제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 일렉트릭 세션에선 밤새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딸자식 보내기 두려우시다? 당신 생각보다 훨씬 안전하다. ⓒ옐로우나인
▲펜스(관객석 맨 앞)를 잡는 이들은 이런 수고를 거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텐트가 있는 편안한 잠자리보다 뮤지션과의 조우다. 오아시스의 리엄 갤러거는 공연 말미 무대 오른편으로 내려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퇴장했다. ⓒ옐로우나인
▲오아시스는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에 오를만 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거의 모든 곡을 모든 관객이 목이 터져라 따라불렀다. ⓒ옐로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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